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전차 (문단 편집) === 전간기 말기 ~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 [[다포탑 전차]] 붐이 끝나면서(몇몇 국가는 동시에) 중(中, 重)전차의 주류는 [[보병전차]](보병과 합동작전)와 [[순항전차]](기병 기동교리) 체계로 이어졌는데, 영국과 프랑스는 같은 대전차주포를 장착한 대신에 '''장갑'''과 기동성을 기준으로 기동성을 중시한 순항전차와 방어력을 중시한 보병전차로 둘을 구현하려 했고, 독일은 가벼운 무게에 '''주포와''' 기동성을 기준으로 소구경포와 기동성을 중시한 주력전차(3호 전차)와 대구경포를 장착하고 신뢰성[* 이미 독일이 토션바 서스펜션 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기동성이 떨어져도 신뢰성과 싼 가격, 유보수 편의성을 위해 판스프링 서스펜션을 4호 전차에 장착했고, 3호 전차와 달리 전면 변속기 커버를 통해 변속기를 교체하도록 하였다.] 높은 보조전차(4호 전차)구현하려 했으며, 소련은 같은 대전차주포와 가벼운 무게에 '''생산성'''과 기동성을 기준으로 생산성이 좀 떨어져도 기동성이 좋은 쾌속전차와 생산성이 매우 좋은 경보병전차를 구현하려 했다. 결국 전간기 동안에도 무기개발에 손을 놓지 않았던 강대국들은 이런저런 전차들을 만들고 [[스페인 내전]], [[겨울전쟁]], [[폴란드 침공]], [[할힌골 전투]] 등에서 시험하면서 전차에 대한 경험을 축적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교리를 만들면서 전간기 말기에서 전쟁 초기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독일은 주포 이원화의 해답으로 생각했던 다포탑 전차인 [[노이바우파초이크]]를 포기하였으나, 소구경포 탑재 [[3호 전차]], 대구경포 탑재 [[4호 전차]], 보병근접 지원용 [[3호 돌격포]]의 비슷한 체급의 전차를 3대나 사용하는 모습이 되었다. 거기다 생산마저 원활하지 못해[* 이는 독일의 생산력과 자원이 부족했다기보다는 독일이 총력전 태세로의 전환을 너무 늦게 한 것이 문제였다. 독일은 전쟁 중반까지 시민들의 기성품을 생산할 정도였다. 때문에 전쟁 내내 생산한 4호 전차보다도 나중에 생산을 시작했지만 총력전 태세로 전환된 시점에 생산된 [[5호 전차 판터]]의 평균 연간 생산량이 더 많다. 자세한 것은 [[알베르트 슈페어]] 문서 참고.] 2차대전 개전 시점에서 2호 전차와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면서 획득한 [[LT vz. 38|38(t)]]를 주력으로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며, 전쟁이 장기화되면서도 노획한 전차들을 버리지 못하여[* 2차대전의 전쟁 규모가 너무 커 독일의 생산력으로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서 '''좋든 싫든''' 이 노획전차들을 버릴 수 없었다.] 보급과 유지보수에 지장이 가게된다. 게다가 주력으로 삼으려던 3호 전차는 작은 크기로 인해서 개량의 한계가 오게 되어 보조였던 4호 전차를 주력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후 독소전쟁에서 T-34와 KV-1을 마주치면서 순항전차, 보병전차 개념에서 나왔던 3호, 4호 전차 체계를 버리고 판터와 티거 전차로 대표되는 중형전차, 중전차 체계로 넘어가게 된다. 소련은 다포탑 전차인 [[T-28]]와 [[T-35]]를 양산하는 등 전쟁 초기까지 전차 컨셉에서 갈팡질팡하지만, 겨울전쟁에서의 경험으로 다포탑 전차를 포기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히자 다포탑 중전차를 단포탑 중전차로 발전시켰으며, 할힌골 전투에서의 경험으로 쾌속전차 체계를 T-34 중형전차로 발전시켜 대보병과 대전차전이 모두 가능한 대구경 주포를 가장 이른 시기에 [[T-34-76]]와 [[KV-1]]에 도입하고, 소품종 대량생산 체계로 현대적인 전차 운용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대숙청으로 인한 부대 혼란 상황과 함께 신형전차에 대한 훈련도 부족과 독일보다 생산량이 많았어도 여전히 구식전차가 태반인 상황에서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독일군이 침공하자 속절없이 밀리게 된다. 하지만 소련은 포기하지 않고 공장을 전선 뒤쪽으로 옮기기로 결정하며, 이 전차 공백기를 생산이 쉬운 경보병전차 대량생산으로 버텨내는 데 성공한다.[* 전차 공백기를 자력으로 버틴 건 미국(셔먼 VVSS → HVSS)과 소련(공장이전)밖에 없었다. 독일은 실패하여 3호전차 공백기를 체코의 35(t)와 노획 전차들로 버텨내야 했으며, 이후에도 4호 전차를 판터로 완전히 전환하지 못하여 4호 (구축)전차를 전쟁 끝까지 생산해야 했다. 영국의 경우도 순항전차의 낮은 신뢰성으로 인한 반공백기(?)를 렌드리스(M4 셔먼과 M3 그랜트)로 버텨낼 수 있었다. 물론 [[T-34-76]] → [[T-34-85]]로의 과정은 소련도 무기대여법 덕을 많이 보았다.] 영국은 다포탑 전차의 기관총 포탑들을 떼어내며 점점 현대적인 전차의 모습을 갖추어 갔으나,[* 영국은 전면 기관총을 선호했는데, 전면장갑을 수직장갑으로 만든 이유가 전면에 기관총을 달기 용이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출처: Inside The Chieftains Hatch - Get Inside the Black Prince Pt.1)] 보병전차의 완성과는 반대로 순항전차의 완성이 늦어져 프랑스 전투에서 순항전차 대신 Mk.6 경전차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보병전차와 순항전차로 역할을 나눈 것이 유연한 활용을 방해하여 [[보병전차]]는 기동력이, [[순항전차]]는 방어력과 신뢰도가 부족하게 되었다.[* 여기서 방어력이 부족했다는 것은 영국의 순항전차들이 미국과 소련의 중형전차에 비해서 방어력이 부족했다는 뜻이지 처음부터 경장갑을 상정한 독일의 3, 4호 전차와 비교했을 땐 비슷한 수준이었으며, 신뢰도에 문제가 생긴 것도 커버넌터부터였다.] 또한 전차의 주포는 기본적으로 대전차포를 탑재하고, 동형 전차에 CS(Close Support)형으로 [[QF 3인치 곡사포]]와 [[QF 3.7인치 산악 곡사포]]를 장착하다, 후기에는 [[QF 95mm 곡사포]]를 장착해 혼합 배치함으로써 대보병전에 대비하기로 하였지만, 주포 이원화에 집착한 나머지 [[2파운더|대전차포]] 탑재 전차에 고폭탄을 지급하지 않아, 대보병전에서 피해를 보게 된다. 이에 영국은 처칠 Mk.I 차체에 CS용 포를 달기도 하고, [[6파운더]]에는 고폭탄을 지급하는 등 해결법을 모색했지만, 결국 미국의 [[75mm 전차포 M2–M6|75mm 전차포]]와 포탄이 호환되는 [[QF 75mm]]를 자체 생산하여 해결하게 되었고[* 미군과 영국군의 포수와 장전수의 자리가 [[좌측통행|운전수의 위치]] 때문에 반대였기에 미국 전차포를 사용할 수 없었다.], 순항전차의 장갑도 점점 두꺼워져 중형전차와 차이가 없어지며, 보병전차도 소련 렌드리스 용으로 생산한 발렌타인 전차를 제외하면 처칠만 생산하면서 사실상 중형전차, 중전차 체계가 된다. 프랑스는 전간기 동안 보병지원에 유탄발사기 수준의 주포를 사용하는 등 보수적인 개념을 고수하며 다포탑 전차에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때문에 개전 시점에 1인용 포탑을 유지하면서 그 여유 용적만큼을 방어력에 투자하여 훌륭한 방어력을 가진 전차들을 생산했지만, 기동 능력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데다[* 엔진 출력 부족, 연료 적재량 부족, 유보수 시 특수 윤활유 필요 등 프랑스 전차는 기동 능력에서 많이 부족했다.], 1인용 포탑으로 대응 능력이 형편없었다. 그나마 대[[벙커]]포와 대전차포를 두꺼운 장갑과 함께 장착한 [[르노 B1]] 전차가 [[돌격포]]와 비슷한 지휘, 운용이 가능해 활약했으며, [[G1 전차]]와 [[AMX-40 기병전차]]를 개발하면서 2~3인용 포탑을 본격적으로 채용하려고 했으나 독일에 항복하면서 전차 발전이 멈추게 된다. 미국은 대서양 넘어의 전운을 감지하고 [[M3 스튜어트]]와 [[M6 전차]]를 개발하면서 전차 개발의 시동을 걸고 있는 와중, [[전격전]]의 소식을 듣고 [[대전차 자주포]]를 준비하면서, 타 국가들이 전간기 동안 쌓아올린 기술력을 전쟁 기간 동안 엄청난 공업력으로 따라가고 있었으며, 오히려 전간기 전차 개발을 소홀히[* 어느정도였냐 하면 M3리의 초기 75mm포탄이 실전에 문제를 일으킬 정도였다. 고폭탄은 사막의 모래에서 폭발하지 않았고, 철갑탄은 장갑에 충돌하면 붕괴되었다. 이를 병사들이 임기응변으로 탄두를 갈아끼워 해결해야했다. 고폭탄은 프랑스의 75mm 것을 사용했고, 철갑탄은 독일의 75mm를 사용했다고 한다.] 하였기 때문에 순항전차와 보병전차 체계에 영향을 받지 않고, [[무기대여법|적절한 전차를 전 세계에 보급]]하기 위해 적절한 성능에 수송 능력을 중시한 M3 리와 M4 셔먼 중형전차를 생산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전차의 주포보다 전차의 방호력의 증가가 두드러지는 시기였는데, 전간기 전차개발에 가장 영향력 있었던 영국의 순항전차가 전간기에 14mm에서 신형이 개발될 때마다 장갑이 두꺼워지다 중형전차와 차이없는 전면 최대 100mm, 측면 46mm가 되었고, 폴란드 침공 시기에 15mm의 장갑을 가지고 있던 3호, 4호 전차는 아프리카 전선에서 후퇴할 때 70~80mm의 전면장갑을 가지고 있게 되었으며, 소련은 BT 쾌속전차를 T-34 중형전차로 발전시켰으며, 영국과 프랑스의 두꺼운 장갑을 가진 보병전차들이 고평가를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