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지전능 (문단 편집) === 전능하니까 모두 가능하다? === 전능성의 정의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논리적 허점 때문에, 그 정의와 범위에 대한 여러 논의가 촉발되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논리적으로 가능한 모든 것이 가능'이라든가 '스스로 만든 법칙을 스스로 어기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모든 것 가능' '논리에 속박되지 않고 모든 것 가능'이라는 식으로 전능성을 정의하기도 한다. 아니면 아예 '인간의 이해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논리로 따질 수 없다'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1. [[C.S.루이스]]는 그의 저서인 '고통의 문제'에서, "논리적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를 조합하고 '신은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덧붙인다고 갑자기 그게 말이 되는 건 아니다"고 주장했다. 단, 전능한 존재가 말이 되는 것만 할 수 있다고 해서 신이 전능하지 않다는 건 아니라고 말을 덧붙인다. 2. 성 [[아우구스티노]]는 "전지전능하다 함은 논리적으로 가능한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면 성립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대부분의 창작물에서 [[신]]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전지전능하니까 만들 수 있다고 치고, 만들고 나면 더이상 전능하지 않은 것이다.'란 농담도 있지만 '능력'의 측면에서 보면 이런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위에서 나온 "들수 없는 돌을 만드는 것"을 예로 들면 전능한 자는 모든 능력을 갖고 있지만 이 돌을 만드는 순간 하나의 능력 (방금 만든 돌을 드는 능력)이 없어지는 셈이므로 전능하지 않게 되는 셈이다. 중요한 것은 전능해지지 않게 된게 본인의 선택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전능한 자는 "본인의 선택에 따라 전능해지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인데 전능하다는 것이 반드시 가능한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지 않기 때문에 모순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들 수 없는 돌을 만들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돌을 만들어야 하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전능한 자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선택이 가능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능력이 있어도 하지 않는다면 그만이다. 사족으로 [[기독교]]와 관련되는 경우가 많다. 당장 위의 반론한 인물들도 모두 기독교인들이다. 기독교를 보자면 가령 요한 묵시록 19장 6절.[* 또 나는 큰 군중의 소리와도 같고 큰 물 소리와도 같고 요란한 천둥 소리와도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느님 '''전능'''하신 분께서 다스리신다." 그리스어로 παντοκράτωρ(전능함)라고 써있다. 고로 오역도 아니다.] 또한 비슷하게 보이는 [[악의 문제]]와 함께 다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전능자' 자체는 비종교적이고 도덕과 관련 없는 개념일 수 있으므로 굳이 이들 사이에 연관성을 찾지 않아도 된다. 3. 또한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cartoon&no=280106&page=1&search_pos=&s_type=search_name&s_keyword=%EB%B0%98%EB%B0%94%EC%A7%80.|만화]]처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굳이 우리가 사는 차원에 국한되지 아니하고, 전지전능한 존재가 자기의 의지대로 세계의 축을 새로이 삽입하거나 평행우주를 만들어버린다면 들어올리면서 들어올리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4. 이 순환오류의 문제점은 전지전능이라는 '전체'를 수렴한 형태를 하나의 개별 '상태'로 인식하기 때문에 나오는 모순이다. 이는 '''하나의 상태가 아닌 전체의 이념'''으로써 생각하면 이 순환오류는 되려 인간의 인식적 확증편향의 문제점 및 개인의 인식적 한계점을 잘 드러낸다. 다시 말해, 전지전능의 순환오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대로 이 모순을 인식하는 인간의 정의에 한계점이 없어야 한다. 1 + 1 = 2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1, 2, 그리고 +의 정의와 관계성이 확증이 되어야 하는데 애초에 수학이므로 어느 부분부터는 확증이 아닌 정의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신의 존재 여부, 전지전능의 여부는 상관 없이 인간이 정의한 상대성 전지전능에 대한 순환오류라고 볼 수 있다. 5. 기독교에서는 '신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같은 예처럼 의외로 신이 못하는 일은 많다. 이에 관한 논리는 '할 수 잇는데 하지 않는다'는 아우구스티노의 논리와 동일. 보통 전지전능은 신을 찬양할 때 쓰이는 수사 같은 것으로, 신을 바라보는 인간의 입장에서 그렇게 여겨지기도 할 것이다. 만약 전능자가 "거짓말을 못한다"라고 한다면, 그 전능자는 거짓말을 할 수 있고 거짓말을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며 진실이다. [[신어|그것은 거짓말이며 진실이다. 또한 거짓말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다.]] 전능 자체가 이미 '''논리를 초월한 영역이므로'''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다. 애초에 전능하지 않은 인간의 두뇌로 전능한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전능자가 1+1=3이라고 하면, 3=2인 것이다. 그리고 3은 2가 아니기도 하다. 아니면서 맞는 이중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3은 2가 맞으므로 이중성도 없다. 하지만 3은 2가 아니다. 따라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연출되지만, 가능하다. 전지전능하기 때문이다. 즉 전능하다는 개념 자체가, 구현하는 사람이 전지전능하지 않은 한 인간의 두뇌로는 구현할 수 없는 개념이다. 애초에 전지전능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간이 창조한 굉장히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관념이기에 그 개념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추상적이고 불확실한 관념을 어떻게 완전히 이해하고 구체화 시키겠는가? ---- 그런데, 결과적으로 위에 답변들은 전지전능과 행동을 회피함으로서 문제가 해결되는 셈이다. 이렇게 해도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니여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데, 1. C.S 루이스의 답은 논리적으로 가능한 것만 행할 수 있으므로 전능을 부인하게 된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노의 답은 질문을 좀 바꿔서 2.'자신의 전능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자신이 들 수 없는 돌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는가'라고 묻는다면 문제는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굳이 행동을 포함하거나 '전능성을 잃지 않고 전능성을 잃을 수 있는가'라는 형태가 되므로 문제에 내포된 논리적 모순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3. 또한 그렇다. 이건 전지전능은 논리를 초월한다와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이런 저런 편법을 동원해 한다해도 자세한 제약을 넣으면 그만이다. 어차피 전지전능하다면 무슨 제약이 있어도 성공할 테니까. 이는 대표적인 딜레마인 [[신정론]] 등과 관련해서 고찰해 볼 부분이 많은데, 완벽한 전지전능함을 논한다면 모든 인간의 고통은 신의 [[계획대로]]이고 신의 잘못이 되며, [[악의 문제]]로 이어져 골치를 썩히기도 한다. 무신론적 관점에서는 기독교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고등종교의 경우 그 신이 [[투명드래곤|열라 짱세서]] 믿으라고 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종교단체 입장에서 자신들의 신이야말로 다른 신들과 차원이 다르게 우월하다는 것을 내세우는 것이 포교에 중요한 역할을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강조되온 것이기도 하다. 사실 완벽한 전지전능함은 기독교 등의 현실 종교들보다는 철학(특히 형이상학.)이나, 신비주의 계통, 혹은 SF적 상상력의 사유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코스믹 호러|헌데 이러한 사유는 전지전능이 인간의 인식을 벗어난 개념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4. 사실 위의 주장에는 오류가 여럿 존재하는데, 순환 오류를 가지고 인간의 확증편향의 문제점을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과대 해석이다. 또한 순환오류가 성립하기 위해서 인간의 정의에 한계점이 없어야 하는 것 또한 아니다. 5. 애초에 인간의 인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면 그 전능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실존한다고 믿는 종교적인 관점에서는 상당히 괴랄한 존재들인데 [[악의 문제]]나 모순 그 자체인 전지전능 등의 능력을 살펴본다면 인간의 이해를 벗어난 존재이기 때문. 그래서 이해할 수도 없고, 모든 논리마저 바꿀 수 있어 통하지 않는 존재기 때문에 비판하는 사람들은 [[크툴루]]와 다를게 뭐냐고 질문을 던지는 경우도 있다. 논리를 벗어난 존재라면 인간이 이해할 수가 없다.[* 굳이 비판의 의도가 아니더라도 구약 성서를 보면 오히려 러브크래프트의 신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불가해한 상황을 의인화한 듯한 신의 면모가 여기저기 대놓고 묘사된다. 가령 욥기에서 야훼는 처음부터 사탄의 계획을 허가했으며, 욥이 겪은 재앙의 이유에 대해 후대 신학자들처럼 정당화를 위한 변증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저 길게 전능함을 어필하고 "애초에 세상의 이치든 정의든 내가 만들고 내 뜻대로 하는데 피조물 따위가 뭐래. 꼬우면 덤비시든가."라며 힘의 논리로 뭉개서 욥을 굴복시킬 뿐이다. 그래서 욥기의 결말이 크툴루스럽다는 감상평을 이따금씩 접할 수 있다.] 5-1. 예를 들어 단적으로 '○○은 나쁘다' 같은 명제도 신이라면 악하다고 인식 못할지도 모른다. 논리를 벗어난 존재이므로 그것을 도리어 선하거나 아무 문제 없다고 인식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인간의 인식선상에서는 악한게 맞는데 논리를 벗어난 존재니까 그래도 믿어야 하는가? 같은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현재까지 신이 직접 현현하여 (전능하고 전지하므로) 인간이 이해하게끔 자신을 설명하고 변명한 적이 없으므로 신이 스스로 해결법을 가르쳐주기 전까진 이러한 질문들은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설명하는 신이 종교에서 하나도 없다는 걸 보면 인간에게 알려줄 의지가 없다는 의미로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5-2. 위와 비슷한 맥락인데 논리를 벗어났으므로 우리 인간의 모든 상식이 통하지 않게 된다. 이 전제는 기본적으로 선악에 대한 개념은 물론이고 신이 정말 인간을 돕기를 원하는 건가부터 의심해야하는 실정이다. 논리도 통하지 않는 존재인데 우리가 그 전능자를 신뢰할 수 있는가? 물론 애초에 크툴루라는 관점에서 보면 해결될 문제지만 이 전능자의 모순을 해소하려는 유일신 계열 종교라면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부터가 문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