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주(삼국지) (문단 편집) === 이후 === 일이 성공되자 조조가 전주를 정북장군(靖北將軍) 유정후(柳亭侯)로 봉하고 5백 호의 식읍을 내렸으나, 전주는 자신이 유우의 원한을 갚기 위해 서무산 속으로 달아났지만 뜻을 세우지 못한 채 오히려 사적인 이유로 그것을 이용하게 되었는데 봉록까지 누리는 것은 본래의 뜻한 바가 아니라며 강력히 사양했다. 한편 추격을 피해 달아난 원상은 요동태수 [[공손강]]에게 살해되었고, 공손강이 조조에게 원상의 머리를 보내 오자 조조는 원상의 머리를 효수하며, 곡을 하는 자가 있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참수한다는 엄명을 내렸으나 견초의 주관으로 장례식이 진행되었고, 전주는 일찍이 원상에게 부름을 받았다는 이유로 장례식에 참석해 원상을 조문했다. 조조는 이를 못본 척 불문에 부치며 이 일을 전주에게 말하지 않았고, 전주와 전씨 일족 3백 명을 업성에 거주하게 하며 많은 재물을 내리나 전주는 이를 전부 친족과 옛 친구들에게 나눠준다. 이후 형주를 정벌하고 돌아온 조조는 전주의 공이 특별히 중요한 것이라 여겨 전주가 분봉을 거절한 것이 한 개인의 뜻을 완성하는 것일지는 몰라도 왕법과 대의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원망했고, 다시 전주를 제후로 삼으려 했으나 전주는 여러차례에 걸쳐 조정의 공식적인 책봉을 공개적으로 거절하여 조조의 체면을 깎아내린다. 이에 조조의 부하들은 전주의 본성이 오만하고 교활해 작은 절개를 내세워 도리를 어지럽히니 모든 직위를 박탈하고 처형해야 한다며 조조를 거들었지만, 순욱, 종요와 같은 거물들이 문제를 크게 만들지 말고 전주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자며 두둔했고 조비도 전주의 편을 들었으므로 조조는 전주를 죽일 생각을 그만두었고, 전주가 평소 [[하후돈]]과 친했기에 하후돈을 시켜 마지막으로 전주를 설득한다. > 그대가 먼저 가서 우정으로 그를 설득하오. 이것은 모두 그대의 뜻이라고 말하고, 나의 뜻이라고 말하지는 마시오. 하후돈은 전주의 숙소로 가서 조조보다 먼저 권하는 것처럼 했다. 전주는 하후돈이 찾아온 뜻을 알고 그와 얘기하지 않았다. 하후돈은 떠날 때, 전주의 등을 치며 말했다. > 전군(田君), 주군의 뜻이 이토록 간절하니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는 없겠소? 전주는 대답했다. > 장군은 나 전주의 사람됨을 잘 알면서 오히려 이렇게 재차 말하고 있소. 만일 반드시 부득이 받아들여야 한다면, 나는 당신 앞에서 머리를 잘려 죽기를 원하오. 전주는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하후돈은 이런 사정을 모두 조조에게 보고했다. 조조는 전주의 뜻을 끝내 굽힐 수 없음을 알고 깊게 탄식하며 그를 의랑으로 임명했다. 전주는 4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으며, 전주의 아들은 전주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 대가 끊긴다. 나중에 [[조비]] 대에 이르러 그의 덕과 절개를 높이 여기고 전주의 종손 [[전속#s-3]]을 후사로 삼아 대를 잇게 하고 관내후를 내려 주었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은 인물이었으나, 명예와 절의를 숭상하던 고대 중국인의 관점으로도 전주의 외골수적인 행보는 유난스럽고 정도가 과하다고 여겨졌는지 배송지는 저럴 거였다면 전주는 조조를 도와 원상을 핍박하지 말아야 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