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주(삼국지) (문단 편집) === 서무산에 은거 === 전주는 헌제의 답서를 받아 유주로 돌아갔지만, 유주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유우가 [[공손찬]]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에 유우의 묘를 찾아 눈물을 흘리며 곡을 했으며 제사를 지내고 떠났다. 이에 공손찬은 크게 노하여 포상금을 걸고 전주를 사로잡았으나, 오히려 전주는 포악한 공손찬 앞에서 한치도 흔들리지 않고 의연했으며 은근히 그를 비판하였다. 공손찬은 전주가 용기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 죽이지는 않았으나 군영 안에 감금해 놓고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여론이 나빠질 것을 우려해 곧 전주를 풀어주었다. 전주는 유우의 원수를 갚을 것을 다짐하며 자신의 일족들과 식객 수백 명을 데리고 서무산에 은거했고, 산지를 깎아 농사를 지었다. 유주가 혼란스러웠기 때문인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수천 가구가 전주에게 의탁했고 따르는 무리가 많아지자 전주는 자체적으로 법령을 제정해 효율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며 [[오환족|오환]], [[선비족]]과도 교역했다. 유우의 고리로서 공손찬에게 복수를 다짐했으며 상당한 세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다른 유우의 고리들과 달리 [[원소(삼국지)|원소]]에게는 협력하지 않았는데, 원소가 예를 갖추어 다섯 차례나 전주를 정중히 초빙했음에도 이를 모두 거절했으며, 원소가 죽은 뒤에도 후계자였던 [[원상]]이 전주를 재차 초빙했으나 전주는 끝까지 따르지 않는다. <전주전>에서는 전주가 과거 오환이 전주의 고향인 우북평군에서 다수의 고관들을 살해한 일(=삼군오환의 난)을 항상 원망하여 오환을 토벌할 뜻을 가졌지만, 전주 자신의 역량만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는 기록을 덧붙이고 있는데, 전주가 원한을 품고 있던 삼군오환의 수장은 [[답돈]]이었고, 답돈은 원소의 사위가 되고 원소에 의해 오환 전체의 지도자로 인정받는 등 무척 잘 나가고 있었다. 유우에 대한 충성심과는 별개로 오환족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고, 삼군오환의 수장들과 긴밀히 유착하는 원씨의 대 오환 정책에도 불만을 품으면서 원소와 원상의 초빙을 거절했던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