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쟁론 (문단 편집) == 개요 == > 전쟁은 1) 자국의 의지를 상대 국가에게 강요하기 위한 폭력적인 행위이며, 2)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다. > 전쟁은 경이로운 삼위일체이다. [[나폴레옹 전쟁]]을 겪은 [[프로이센]]의 장군이자 군사학자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쓴 책이다. 하지만 그는 이 책을 미처 완성하지 못한 채 [[콜레라]]에 걸려 사망했고, 사후에 그의 아내 마리 폰 클라우제비츠와 처남 프리드리히 폰 브륄 그리고 부하였던 프란츠 아우구스트 오에첼 소령이 클라우제비츠의 노트와 메모를 보고 보완하여 펴냈다. 말하자면 미완성 유고 묶음집.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시대의 전법을 학문적으로 일반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에서 강조한 것은 '무게중심(重心; center of gravity)'의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전력을 분산시키는 것을 지양하고, [[적]]의 중심을 공략하는 데 집중해야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동 시기에 각광받던 [[앙투안 앙리 조미니]](전쟁술의 저자이자 나폴레옹의 군사 참모 역임)의 저술은 '결정적 지점(decisive point)'을 강조했다. 적이 결집하거나 지형상 우세를 점하기 이전에 결정적 지점을 확보하는 것으로 군사 운용에서 제약 조건인 병력과 보급, 화력 규모, 지형 같은 여러 변수를 나폴레옹의 용병 방식으로 해석, 설명했다. 이는 나폴레옹의 전법을 실제 전장에서 구현하기를 원했던 유럽 군사 전문가들에게 실용적인 연구로 애용되었다. 그러나 클라우제비츠는 이런 식으로 전쟁을 계량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재단하는 것은 '''노력의 낭비'''라고 평가절하했다. 클라우제비츠는 철학적인 방법론을 이용해서 전쟁을 설명하는데, 전투라는 것은 수천 또는 그 이상 인간이 벌이는 '단체 결투'나 다름없다고 정의하며 전쟁의 3요소[* 삼위일체(trinity)라고도 표현한다. 기독교의 그 삼위일체에서 따온 것이 맞다.]로 '정치적 목적'(이성),[* 국가/정부의 결정 영역으로 규정했다. 전쟁이 단순히 '아방의 의지를 상대에게 강요하려는 무제한적 폭력행위'가 아닌, '또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 되는 것도 국가/정부가 군부를 지휘하며 국익과 이성에 근거한 명확하고 한정적인 전쟁 목적을 수립하고 지도해야 가능해짐을 뜻한다.] '폭력'(열정),[* 일반 국민, 민중의 영역이다. 클라우제비츠는 프랑스 대혁명, 나폴레옹의 점령에 대항한 스페인 국민들의 게릴라전으로 국민 다수의 열정이 전쟁을 얼마나 폭력적이고 무제한적 양상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주목하여 전쟁의 3요소로 포함시켰다.] '''우연성'''(불확실성)[* 이른바 '[[전장의 안개]]'(fog of war)라는 개념으로도 불린다. '제복 입은 전문가', 즉 군부(軍部)의 영역으로 규정했다.]을 들었다. 이 '''우연성'''이 전쟁을 일반화/이론화를 위한 '과학'보다 경험, 직관력에 바탕을 둔 '기술'에 더 가까운 영역으로 규정하고, 이를 계량적으로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여기는 근거다.[* 그래서 클라우제비츠가 보는 명장은 통제하기가 힘든 우연성에 강한 [[임기응변]]이 능숙한 장군이다. [[곽거병]]이나 [[율리우스 카이사르]], [[에르빈 롬멜]] 등이 클라우제비츠가 생각하는 명장인 셈.] [[파일:external/www.artnstudy.com/PV_080225_msKim01_08.gif]] 이런 서술 방식은 발표 당시와 상당 기간 후에도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군인이 읽기엔 너무 철학적이고, 군사 분야와 관련없는 일반인이 읽기엔 너무 전문적이라 누가 보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에 [[헬무트 폰 몰트케]]가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뒤 그의 애독서로 알려지면서 전 세계에 널리 퍼지게 되는데, 알아먹기 어려운 난해함 때문에 타국에서는 물론이고 본국에서조차 저자의 의도를 다르게 받아들이거나 요상하게 확대 해석하는 폐해가 있었다. 하지만 클라우제비츠가 전쟁의 본질을 다룬 집필 방식은 처음에 의도했던 대로 그가 죽은 지 수백 년이 지난 현재까지 유용하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과학기술은 진보하고 전쟁 방식은 바뀌었지만 전쟁의 본질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훗날 후학들 사이에서 [[제1차 세계 대전]]의 [[참호전]]과 [[소모전]]을 넘어설 수 있는 이론으로 각광받았으며, 이후 [[독일]]과 [[소련]]은 1920-30년대 공군, 기갑부대 이론과 결합하여 새로운 교리체계를 개발하였다. 단, 여기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문리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전쟁의 규모와 양상이 이전과 달라지면서 '정치적 목적성'이 매우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전선에서 싸우는 기존의 전쟁 방식에서 적 종심지[* 종심(縱深, Depth)은 전선에서 떨어진 적이나 아군의 깊숙한 지역을 의미한다. 러시아(소련)가 종심을 목표로 규정함으로써 타격 교리를 완성도 있게 만든 바 있다.]를 타격하여 전쟁수행능력 자체에 타격을 주는 양상으로의 변모는 클라우제비츠가 예견했다기보단 그의 책을 읽은 후학들이 당시 전장 현실을 클라우제비츠 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당시 [[전쟁]]은 그저 군주와 군대와의 싸움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전쟁론은 '[[총력전]]'의 도래를 예언했으며, 결과적으로 그의 예언대로 맞아 떨어졌다. 즉, 국력의 결집 유무가 전쟁의 승패에 영향을 끼친다는 예상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는 현대의 [[베트남 전쟁]]과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군과 현지의 친미정부의 패배로 증명 되었다. 현지 정부의 부패와 무능, 의지 상실로 인해 국력이 엉뚱한 곳으로 줄줄 세어나간 것이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읽기 힘든 책이다. 저자인 클라우제비츠가 "2, 3년이면 다 읽히고 잊힐 책을 쓰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못한다."라며 학문적 각오로 자신의 반평생을 들여 집필한 데다가 그가 집필 도중 생각을 바꿔서 다시 쓰던 도중 콜레라로 갑작스럽게 사망해 책 자체가 미완성인 상태인 것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사후 원고를 정리한 아내 마리는 당대 여성으로서 상당한 수준의 고급 교육을 받은 사람인 데다가 남편의 사상적 이해자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기에 그녀가 정리한 지금의 전쟁론이 단순한 '미완성 원고'가 아닌 '완성된 책'의 가치를 지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원고에선 보이지 않는 커다란 맹점이 있다. 그건 바로 클라우제비츠가 책을 쓰던 중에 전쟁의 정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크게 바꾸고 그에 해당하는 1, 2, 3장을 완전히 다시 썼다는 점이다. 전략과 전술에 대한 4장 이후의 내용들도 고쳐진 정의에 기반을 두어 다시 써져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클라우제비츠가 이 작업을 하려는 시점에 사망해버리는 바람에 이 부분은 이전 원고 그대로 남게 되었다. "전투 의지"를 [[정신력]] 드립, 즉 [[엘랑 비탈]]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으나, 1970년대 이후 영미권의 번역은 '전투 의지'를 '전투에 필요한 지성'으로 번역하는 경향이다. 현재 제일 최근판 한글번역(김만수 대전대 군사학 연구소)에서도 '국가의 의지'는 '정치적 목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클라우제비츠는 "공격은 적극적이지만 약한 수단이고, 수비는 소극적이지만 강력한 수단이다(클라우제비츠는 방어가 공격보다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공격은결전 또는 충돌의 장소와 시간을 정할 수 있는 우위의 입장에 서 있고, 양측이 정지상태일 때 먼저 군사적 행동을 개시하므로, 적극적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1812년 자신이 직접 참전한 러시아 전역에서처럼 대규모의 적군은 국경 안으로 깊숙히 끌어들여 소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