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쟁 (문단 편집) === 전쟁 낭만주의 === 국가의 선전과 사회 분위기에 이끌려 나라와 민족과 정의를 위해 전쟁에 참가하는 것을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여러 시대에 걸쳐 존재했다. 그들은 전쟁에서 맹활약하여 역사에 이름이 남고, 설사 죽는 한이 있어도 명예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구상의 수많은 전쟁과 수억명의 사상자들 중에서 이름이 남은 것은 극소수였다. 전쟁은 귀족과 평민을 막론하고 수많은 아들딸들을 전장에서 죽였고 대다수가 식별조차 안되어 이름 없는 시체 신세가 됐다. 당장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죽이고 또 누군가 나를 죽이는 참혹한 전장에서 명예와 낭만은 실종됐다. 인용된 김품일의 말마따나 폼~나게, 비~장하게, 장~렬하게 죽은 사람은 없었다. 무기에 잘리고 뚫리고 불타고 폭사하고 생화학 무기에 숨막혀죽고 식량 부족으로 굶주림과 추위에 얼어 죽었을 뿐이다. 화려하게 꽃피운 젊음을 누려야 할 젊은이들은 전장에서 허무하게 졌다. 그걸 누릴 본인이 죽고 없는데. 유가족인들 그걸 기꺼이 즐겁게 누리겠는가. 남은 것은 전사자 통지서와 몇몇 운 좋은 유가족들이 위로거리로 훈장을 받았을 뿐이다. > There is many a boy here today who looks on war as all glory, but, boys, it is all [[hell]]. > 오늘날의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을 영광스럽게 보지, 그러나 젊은이들이여, 전쟁은 다 지옥이야. >---- > 미 육군 원수 [[윌리엄 테쿰세 셔먼]][[https://www.brainyquote.com/quotes/william_tecumseh_sherman_166811|#]] 셔먼은 미국 [[남북전쟁]]에서 남군을 수도 없이 없애는데 공헌한 전쟁영웅이지만 그 역시 전쟁은 영광과 한참 동떨어져 있음을 역설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애국심이 불타올라 군 입대를 자원했던 수많은 젊은이들과, 오랜 평화로 마땅히 전쟁을 겪어 본 적 없는 [[벨 에포크]] 시대 유럽의 중장년층 사람들이 실제로 이런 비스무리한 생각을 했었는데, 실제로 당대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대해 명예, 영광 따위의 [[일리아스|낭만적인 서사시적 인식]]을 품고 있었다. 지금껏 알고 있는 전쟁은 소설에 나오는 멋진 전쟁영웅 주인공의 일대기나 당시 영화에 나오는 영광스러운 조국 군대의 돌격 장면에 패퇴하는 적군들 따위의 수준이었기 때문. '''[[참호전#s-5|물론 그 입대한 젊은이들이 꿈도 희망도 없는 잔혹한 전선에 도착하자마자 그 환상은 완전히 박살났다.]]'''[* 동부전선, 발칸, 캅카스, 중동 등의 지역에서는 말, 기차, 장갑차를 이용한 기동전이 주가 되었고 서부전선 역시 초반에는 참호전 외 형태의 전투도 벌어졌다.] [[제2차 세계 대전]]과는 달리 후방의 민간인 지역에 대규모 전략폭격을 하는 개념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가끔씩 포격이나 폭격이 있긴 했어도 비교적 평화로웠던 후방의 민간인들은 여전히 전쟁터의 지옥같은 시궁창에 대하여 모르고 있었고, 심지어 도시에선 공원에서 참호전 놀이까지 즐길 정도였으나, [[총력전]]이 길어지며 후방 역시 경제난을 겪고, [[비행선]]과 [[폭격기]], [[파리 대포]] 등이 등장하며 때때로 후방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기도 하고 종전 후 지옥 같았던 전쟁터에서 살아돌아온 사람들에 의해 전쟁의 현실이 알려지면서 이러한 인식은 서서히 사라졌다.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의 [[뮌헨 협정]]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의 도발에도 머뭇거렸던 이유가 흔히 [[네빌 체임벌린]]의 잘못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 여론주도층이던 중장년층 대부분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행위를 반대했고 체임벌린 역시 그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섣부른 행동을 하기가 힘들었다. 알다시피 당시의 여론 주도층들의 연령대는 과거 [[1차 세계 대전]] 참전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끔찍한 일을 아들 세대가 또다시 겪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임벌린의 결정 역시 독단적으로 내린 것이 아닌 딜레마 속에서 그나마 취할 수 있었던 절충안이었다. 하지만 히틀러의 야욕은 체임벌린의 결정을 한참 뛰어넘어서 전쟁을 원하는 자들[* 전쟁을 일으킨 히틀러가 정작 전장에서 죽다 살아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 인간의 광기가 얼머나 무서운 건지 잘 보여준다.]로 인해 전쟁을 원하지 않았지만 나라를 지키기 위해 결국 전쟁터에 다시 나가 지옥을 보아야 했다.[* 그나마 영국은 지원자 한정이었지만 소련은 청년층이 거의 갈려나가다 보니 1차대전 참전용사들 상당수가 2차대전 때도 40대가 넘어간 나이에 더욱더 잔혹해진 전쟁터로 끌려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 그럼에도 전쟁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다. 베트남 전쟁이 터져 남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하에 미군과, 한국군을 포함한 연합군이 파병되었지만, 베트남전은 그냥 단순한 냉전 시기의 이념 싸움이 아니라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고자 한 베트남에 미국이 엮인 복합한 전쟁이어서 누구도 함부로 끼어들어선 안 될 전쟁이었다. 결국 베트남전은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났고 거기서 참전용사들이 얻어온 것은 그들이 생각했던 참전의 목적이 아닌, [[PTSD]]와 [[고엽제]] 후유증이었다.[* 베트남전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은 미국에게서 국군 현대화와 외화벌이, 전투 경험과 베트남 관련 사업을 획득하긴 했다. 그러나 그것을 대가로 한 참전용사들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다. 참전용사들의 피해는 지금도 유공자 관련법으로 국가가 책임지는 중이지만, 물가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탓에 굉장히 애매해졌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군들 역시 이전처럼 영웅 대접은커녕 명분 없는 전쟁에 가서 베트남인들을 죽이고 온 자들이라고 미국내 언론과 시민들에게 비난받았고, 많은 불운한 미군 참전자들이 PTSD와 비난 여론으로 삶에 허무함을 겪거나 심하면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러시아 지휘부는 러시아군에게 우크라이나의 나치화를 막고 친 러시아 동포들을 구하러 가는 것이라며 선동하고 기만하였다. 그러나 실체는 우크라이나를 병합하여 러시아의 속국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침략전쟁의 실체를 모르던 평범한 러시아 군인들은 여느 때처럼 일상적인 훈련인 줄 알거나 러시아 지휘부의 선전을 그대로 믿고 엉망진창인 수준의 장비 그대로 전쟁에 돌입했다가 그것이 영웅적인 우크라이나 해방이 아닌 일방적인 학살과 전쟁범죄, 강제 수탈 행위에 불과한 것을 알게 되었다. 러시아군은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크고 작은 오만가지 피해를 누적하고 있고 러시아 정부가 심어놓은 낭만은커녕, 확증편향의 광기와 증오만이 있는 그릇된 전쟁에 질려 징집병 지원병 할 것 없이 우크라이나군에 속속 죽고 항복하고 전향하며 전쟁에 낭만 따윈 없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나마 항복하여 목숨이라도 건진 자들은 다행이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전우들이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고 도망치는 바람에 차가운 대지에 그대로 방치되거나 최악의 경우 벨라루스 등으로 실려가 화장[* 당연히 러시아군의 정확한 피해를 감추기 위해서이다. 고대 전쟁에서조차 시신의 부패를 막기 위해 현지에 가매장을 하는 경우는 많았어도 적군도 아니고 아군 시신을 전사자 은폐를 위해 태우는 짓은 안 했다.]되거나, [[체르노빌|우크라이나 북부 지역]]에 투입된 일부 병력의 경우 전투에서 살아남았어도 [[방사능 피폭|핵을 맞은 것과 같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숱한 전쟁범죄와 학살을 일으킨 러시아군의 입장도 이러할진대, 침공받은 우크라이나의 수많은 민간인들은 [[부차 학살|더 끔찍한 꼴]]을 겪었고, 겪고 있다. 그리고 그 처참한 광경을 본 전 세계 사람들은 21세기에도 전쟁이 비참하고 어리석고 그릇된 것인지를 보고 들어 알게 되었으며, 일부는 전쟁 피해자나 종군 기자, 자원 봉사자, 국제의용군의 형태로 직접 느끼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