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인범 (문단 편집) === 장군 시절: (2) 특수전사령관 === [[파일:external/breaknews.com/2014031346542906.jpg]] 2013년 10월 중장 진급과 함께 특수전사령관에 임명되었다. 그가 특전사령관에 취임하면서 다음과 같은 여러 변화들이 생겼다. [[파일:external/img.bemil.chosun.com/2015040111082594792.jpg|width=800]] 전인범 중장이 특전사령관에 부임한 뒤 특전사 베레모는 이렇게 바뀌었다. 특전사 베레모의 모표도 그동안 [[장교]]는 [[계급장]]만 달고 특전휘장을 달지 않던 것에서 특전휘장 아래에 계급장을 달도록 바꾸었다, 특전훈련을 이수하지 않은 인원은 베레모에 특전휘장을 달지 못하도록 했다. 또 기존의 [[특전병]]들이 특전사 부사관과 휘장을 공유하던 것을 특전병 전용 휘장을 달도록 바꿨다. 전인범 장군 자신도 사령관이긴 하나 해당 훈련 미이수자였으므로 특전휘장을 재직기간 동안 달지 않았다. 장경석 장군이 후임으로 온 뒤 전인범 장군의 정책 상당수가 환원되었으나, 이 복제 규정은 유지됐고 장경석 장군 본인도 재직기간 내내 베레모에 계급장만 달았다. 특전사령관 취임 1년차에 접어들면서 부대의 장비 구입을 위한 예산 확보, 새로운 장비의 개발, 부대원들의 여건 개선 노력 등 특전사의 전투력 강화와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476150|서울신문 기사]] 이 기사에 의하면, 특전사에 근무하다가 전역해 현재는 보안 관련 업계에 종사하며 후배들에게 자문활동을 해주고 있는 한 예비역 중사는 “지금과 같은 사령관이 있었다면 전역 안 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장기복무|장기복무자]]들에게 불필요하게 반복적이고 지나친 육체적 소모와 부상을 가져오던 기존의 정기적인 [[천리행군]]을 자대배치 전에 특전교육단에서 한 번만 하고 이후에 자대에 가서는 하지 않는 것으로 바꾸었다. 천리행군의 방식도 바뀌었는데, 마치 지옥주처럼 7일간 잠을 안 자는 무박으로 강행군하고 중도 포기자는 모두 퇴교시키는 일종의 살아남기식 자격 훈련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전인범 사령관이 물러나고 [[장경석|새 사령관]]이 부임한 이후론 전처럼 자대에서도 천리행군을 계속 하고 있다. 이것 외에도 전인범 사령관 시절 바뀌었던 사항들이 새 사령관 교체 후 대부분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특전사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며 스스로 말하기를 "세종시에 달려가서 관료들 만나 빌고, 울고, 협박도 했어요"라고 할 정도. 그 결과 강하 수당이 15년 만에 50,000원에서 70,000원으로 40% 인상되었다. 전투력을 올리면서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기회를 많이 보장해줘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한달에 250㎞를 뛰면 휴가 하루를 주는 제도도 만들었다. 또한 예전엔 [[싸제|사제]] 택티컬 장비 (비인가 장비)의 사용 가능 여부가 각 대대의 대대장의 마인드 성향에 따라 저마다 달랐었는데, 전인범 사령관은 모든 예하 부대에 사제 장비의 사용을 정식으로 허용하였다.(이것 역시 다음 특전 사령관때 없어짐) [[파일:/image/001/2013/11/19/PYH2013111908710001300_P2_59_20131119170605.jpg]] 2013년 11월 한미연합방위체계 구축과 한미동맹 강화, 상호 유대관계 증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정부로부터 공로훈장을 다시 한 번 수훈하였다. 이로서 그는 한미 양국으로부터 총 8개의 훈장을 받아 대한민국 현역 장성들 중 최다 훈장 수상 기록을 세웠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6605771|연합뉴스 기사]] 그가 지시한 특전사 포로 체험 훈련 중 [[제13공수특전여단 훈련사망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당한 사건에 대한 처벌이 서면경고를 받는 데 그쳐 비난 여론이 있었다. 인권활동가들에 따르면, 전인범 사령관이 영화 브라보 투 제로를 특전사령부 참모들에게 보여주며 “이런 훈련과정이 왜 한국에는 없느냐”라며 훈련 수행을 지시해서 졸속으로 시행된 훈련이라고 주장하였다. 문제의 훈련은 5인 1조를 기반으로 실시됐으며, 사고 발생 30분 전에 훈련을 받던 하사가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교관은 훈련의 일부로 여겨 중단하지 않았다. 질식증세가 나타난 인원을 충청북도 청주시의 성모병원으로 후송하였으나 하사 2명이 숨졌고 1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화려한 수훈과 커리어, 인맥에도 불구하고 대장으로 진급하지 못하고 중장에서 예편했다는 주장과, 이리저리 튀는 편인 전 장군을 탐탁찮게 보던 장성들이 이걸 기회로 대장 진급을 막아버린 것이란 주장이 있다. 일단 육군의 입장은, 전인범 당시 특전사령관은 도의적 지휘책임은 있으나 법적 책임은 없다는 것이다. 2016년 10월 장성 인사에서 당시 2차 지휘책임이 있던 13공수특전여단장 [[정재학(군인)|정재학]] 준장이 소장으로 진급해 [[제50보병사단|50사단장]]으로 영전한 것은 육군의 이러한 판단에서다. 신동아 2016년 5월호 225페이지에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관련하여 그의 이름이 언급된다. "드라마에서처럼 부하를 아끼는 사령관도 실재한다. 전인범 사령관이 그런 사례이다. 보급품 확충, 수당인상, 사제품 허용, 간결한 훈시 등 여러 면에서 부하들을 꼼꼼하게 챙겼다... 국회의원들을 초대해 특공무술 시범을 한 적이 있는데, 그날 식사시간에 전 사령관이 의원들에게 전투식량을 건네보이며 '우리 애들이 이런 대우 받을 애들 아니다, 더 잘 먹여야 훈련도 더 잘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그 후로 정말 전투식량이 좋아졌다. 군에 그런 분이 많으면 나도 유(시진) 대위 같은 군인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부사관 출신 A씨)라는 글이 실려 있다. 이를 볼 때 일선 특전사 대원들에게 상당한 신망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