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원일기 (문단 편집) == 특징 == 차범석, 김정수 등의 집필을 통해 1980년 10월 21일부터 2002년 12월 29일까지 22년 2개월 동안 총 1088회[* 초반 방영분 1/5 정도는 현재 남아있지 않다. 자료를 보관할 곳이 없어 폐기하거나 테이프를 재활용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에 걸쳐서 방영되었다. 전원일기 제1~49화 중에서 42편을 집필하며 초기 등장인물과 배경 등을 설정한 차범석 작가는 ''''왜 TV드라마는 도시인들만을 대상으로 하는가?'''', ''''왜 TV드라마는 천편일률적인 사랑타령만 하면서 서민층이나 지역사회와는 담을 쌓는가?''''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인천 문학동에서 목장을 경영했던 김성제가 본인의 농촌 체험을 쓴 수상기 <이 영원한 순간들(1971)>, <별과 흙의 대화(1972)> 등을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81042100209212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1-04-21&officeId=00020&pageNo=12&printNo=18320&publishType=00020|토대]]로 하여 시작되었다. 줄거리는 농촌마을의 유지인 김회장네 집과 복길네로 대표되는 그 이웃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식으로 진행되는 내용이다. 초기에는 흑백 화면이었으며, 오프닝에서 젊은 [[최불암]]이 지게를 지고 다니거나 마지막에 [[나레이션]]을 하기도 했지만 차차 없어졌다. 전원일기의 시작이 농어촌의 훈훈한 정서를 소개하는 다큐성 드라마였기 때문에 나레이션은 필수적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농촌 현실에 대한 고발을 주로 했던 탓에 없어지게 되었다.[* 마지막회에서 재현했다.] 첫 방송을 시작으로 화요일 오후 시간대에 방영하다가 96년 3월 6일부터는 수요일 저녁 7시 30분으로 바뀌었으며, 그 해 10월 27일부터 종영할 때까지는 일요일 오전에 방송되었다.[* 김혜자는 자신의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에서 전원일기의 방송 시간이 계속해서 변경되어 어느 순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반면 촬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매주 월요일마다 했다. 22년간 방송된 전원일기는 1088회를 끝으로 종영했는데, 사유는 소재 고갈. 김혜자는 자신의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에서 전원일기 방영이 10년이 지나면서 소재 고갈로 작가가 집필을 거부했으며 본인도 한계를 느끼고 제작진에게 여러 번 하차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차라리 본인이 죽으면 그 죽음을 통해 새로운 소재가 나올 것이라고 설득할 정도였으니 출연 배우로서 당시 전원일기에 대한 매너리즘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흑백TV 방송을 하던 시절부터 인터넷이 등장한 시대까지 방영한 드라마이며, 방영되던 22년의 시간동안 농촌도 꽤 많은 변화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방영기간 내내 작가가 여러 차례 바뀌면서 캐릭터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상황은 종영 때까지 계속 되었다.[* 전원일기 출연진들이 임성훈 토크쇼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배우들도 모르게 아역 탤런트들이 성인 탤런트로 바뀌었다고 한다. 특히 수남 엄마 역할의 박순천은 수남이는 10개월 때부터 10년 이상을 함께 했는데 갑자기 고3 장성한 아들의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게 배우로서 당혹스럽고 화가 났다고 한다. 이때 배우들 모두 동의한 부분이, 전원일기는 자연스럽게 지내는 모습이 좋은데 갑자기 5년 후라는 설정으로 변화를 준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진짜 이유는 출연료 부담이었다는 설도 있다. 방송 출연료라는게 배우들 경력에 따라 등급이 나눠지는데 전원일기는 워낙 장수 프로그램이다 보니 지나가던 할아버지 1도 짬밥이 장난 아닌지라 "여어, 김영감!" 한마디만 하고 들어가도 출연료가 높았다고 한다.] 한편, 시간대 변경에서 생긴 시청률 부진도 이유였는데 1996년 10월 27일부터 일요일 오전 11시에 방송되다가 2002년 4월 7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신설에 따라 오전 8시 50분으로 옮겼으나, 2000년 10월부터 시작한 SBS 오락 프로그램 [[도전 1000곡]]의 아성을 넘지 못한 것도 있었다. 이와 함께, 금동 역으로 나온 [[임호]]는 2002년 4월 7일부터 9월 29일까지 <전원일기>와 같은 시간에 방영된 KBS 2TV 일요아침드라마 <언제나 두근두근>[* 2001년 11월 11일부터 채널을 옮기는 한편 시간대도 10시로 바뀐 [[학교 4]] 후속.]에 겹치기 출연을 해 결국 따끔한 눈초리를 받았다. 이렇게 되자 <언제나 두근두근>은 29회 만에 단명하는 수모를 당했고 <전원일기>도 얼마 후 없어졌다. 공교롭게도 1980년 10월 21일에 첫 방영된 1회 제목이 '[[박수칠 때 떠나라]]' 였는데 마지막회는 '[[수미상관|박수 칠 때 떠나려 해도]]' 라서 뭔가 오묘한 의미를 자아낸다. 그래도 장수 드라마로서 메리트는 있는지 12월 31일 <토크쇼 임성훈과 함께>에서 종영기념 스페셜 무대를 마련했고, 출연진들은 동년 MBC 연기대상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후속 드라마로 2003년 1월부터 <기쁜소식>이 방영되었으나, 전원일기만큼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방영 시기가 시기인 만큼 현재 기준으로는 방송에 부적절한 요소가 많다.[* 가부장적인 가정, [[가정폭력]], [[꼰대]] 캐릭터, 성 차별, 살인, 성폭력 미화, 흡연 장면, 아동학대, 지역감정과 세대갈등을 부추기는 전개.][* 또한 지역감정과 세대갈등을 부추기는 전개는 극중에서 서울 사람들은 십중팔구 예절 교육 제대로 못받은 사람으로 묘사되거나 사기꾼으로 등장한다. 종종 캐릭터들의 입으로 도시에 사는 젊은 사람들은 유행에 맹목적으로 추종고 어른에게 무례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게다가 지금 시점으로 보면 '''성범죄적인 요소'''도 나온다.[* 복길엄마와 개똥엄마가 밤에 농약을 치다가 몸에 묻은 농약을 씻어내려고 겉옷을 벗어놓았는데 응삼과 명석이 이를 몰래 지켜볼 뿐만 아니라 옷가지를 훔쳐다가 양촌리 동네방네 소문을 다 내고 다녔다. 극중에서는 응삼과 명석의 이런 행동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고 복길엄마와 개똥엄마만 행실 더러운 여자라며 비난받았다. 지금 시점에서 생각하면 굉장히 황당한 내용전개다. 그외에도 저질 야동 수준의 내용이 상당히 많다.] 남편의 상습 도박과 구타로 인해 가출한 아내를 아내로서의 도리를 못하는 여자라며 비난하는 에피소드도 있었고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밤새도록 안마시켜서 코피 터뜨리고 혼절케 하는 올가미같은 고부잔혹사 에피소드도 있다. 또한 여자는 일만 한다든가 남자들이 주로 신문을 보고, 딸들은 출가외인이라는 등 가부장적인 소재의 문제점은 해당 드라마 홈페이지의 시청자 게시판을 달구기도 했는데, 1999년 9월 8일자 <한겨레>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90800289121003&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9-09-08&officeId=00028&pageNo=21&printNo=3602&publishType=00010|'최보은의 화면깨기' 칼럼]]은 물론, 2000년 8월 19일에 자사의 시청자 옴부즈맨 프로 에서 해당 문제점을 다룬 바 있다. 물론 936회 '퀴즈의 여왕(1999년 11월 28일)'과 937회 '그들만의 선거(1999년 12월 5일)', 961회 '신세대 며느리(2000년 5월 28일)' 등처럼 여성의 역할을 신장시킨 에피소드들을 내보내 달라진 면을 보여주었으나 이걸로도 부족했다. 농촌 드라마인 만큼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촬영장을 여러 번 바꿨는데 첫 촬영지는 [[경기도]] 양주군(현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였고[* 전원일기마을에서 촬영됐다. 이 드라마가 종영된 이후 현재의 양주시로 승격되었다.] 이어 [[양평군]] 강하면 성덕리(단, 읍내는 1998년 이후 종영할 때까지 양서면 양수리에서 계속 촬영)→[[청원군]](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동업자 편에서 현재 청남농협으로 통합한 문의농협 간판이 있었다.]→[[남양주시]]([[조안면]] 조안리와 진중리, 읍내는 1996년 11월부터 1997년까지 마석에서 촬영)로 옮겨갔다. 작중 배경이 '양촌리'이다보니 [[김포시]] [[양촌읍]]과 연관짓는 경우가 은근 있는데 양촌읍은 물론이고 김포에서 촬영된 적은 전혀 없다.[* 다만 [[고촌읍]]에서 역시 농촌을 소재로 한 드라마인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를 촬영한 적이 있긴 하다.] 뿐만 아니라 양촌읍에는 양촌리가 없다![* 양촌읍은 2021년 7월 현재 누산, 석모, 흥신, 양곡, 유현, 구래, 대포, 학운리의 8개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전에는 마산도 양촌읍이었으나 2009년 [[한강신도시]]가 조성되면서 구역에 포함된 구래리 일부와 함께 동 지역이 되었으며, 더 이전에는 마송, 도사, 수참도 속했으나 1983년 대곶면과 월곶면 일부와 함께 통진읍으로 분리.) 이 중 면의 중심지는 양곡리. 반면 촬영지 중의 한 곳인 청주에 '''양촌리'''가 실제로 있다. 촬영지였던 문의면은 아니고 이웃한 [[남이면(청주)|남이면]] 소재.] 아울러 22년 간 이어간 대작답게 대본 작가와 [[감독]]이 10여 명이 교체된 진기록도 있다. 가장 유명한 대본작가인 [[김정수(각본가)|김정수]]는 2010년에 주말연속극 [[민들레 가족]]을 집필했다. [[http://www.youtube.com/watch?v=ITjoEhXlWtQ|드라마 주제가]]가 매우 인상적인데 농촌의 풍경을 잘 표현한 느낌이다. 작곡은 당시 MBC 관현악단장이던 정서봉이 맡았으며 초기에는 정서봉이 직접 연주/녹음한 것을 썼지만, 해당 원곡의 마스터테이프 및 악보가 유실되어 1990년 당시 악단장인 장익환(1937~1991)이 재녹음했다. 1996년에 타임워프를 계기로 약간 편곡이 되었으나 원곡이 거의 변하지 않고 끝까지 쓰였다.[* KTV에서는 "공부할래? 농사지을래?" 편에서부터 "박수칠 때 떠나라 해도" 편까지 사용되었다.][* 또 이 [[BGM]]은 [[KBS 2TV]]의 [[개그콘서트]]에서 방영했던 코너 [[어르신(개그콘서트)|어르신]]의 BGM으로 쓰이기도 했다.][* 농촌스러운 느낌 때문에 [[리그 오브 레전드]]의 [[나서스]]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의 멘탈 관리용 음악으로 밈이 되기도 했다.] 2000년 MBC 홈페이지 개편 후 동년 4월 29일 방영분부터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 기반으로 VOD 서비스를[* 1980년 2회 및 1988년 300회도 서비스했다.] 개시했다가 종영 후 전부 내렸고, 2019년경 이후 전편을 고화질로 리마스터링해서 유료로 다시보기 서비스중이다. 2009년 불교TV에서 처음 재편성된 후 2021년 4월 28일 기준 총 6개 채널[* [[EDGE TV]], [[MBC ON]] 등]에서 방영 중이다.[* 2021년 현재 EDGE TV는 400회대, MBC ON은 1000회대 등이 방영되고 있다.] [[KTV 국민방송]]에서는 2022년 12월 28일을 끝으로 폐지했다. 상당히 오래 방송되다 보니 MBC의 내로라 하는 드라마 PD들이 기획자나 조연출로 등장하였다. 기획에 이연헌, 유길촌[* 친동생도 전원일기와 인연이 깊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바로 용식이 역의 [[유인촌]]이다.], 고석만, 이병훈, 황인뢰, 권이상[* 종반에 기획자와 연출을 겸했다.], 조연출에 [[김종학(1951)|김종학]], 박종, 이창순, 최용원,[* 1998년에 연출PD로 있기 이전에 조연출에 참여했다.] 안판석, 김윤철, 이장수 같은 인물들이 거쳐갔다. 2021년 6월 18일, MBC <다큐 플렉스>를 통해 출연 당시의 뒷얘기를 다룬 '전원일기 2021'을 방영했다. 총 4부작으로 기획되어 7월 9일까지 방영했다. 김회장 부부 역을 맡은 최불암 - 김혜자부터 순길이 역을 맡은 류덕환 배우에 이르기까지 전원일기를 함께 했던 출연진 및 관계자들이 거의 모두 출연했다. 사망한 배우들은 유족[* [[예수정]]이나 박윤배의 딸 등 유족들이 대신 출연하여 생전의 배우를 추억하였다.]들이 해당 배우들에 대해 언급하였다. 2022년 10월 10일부터 tvN STORY를 통해 후일담 형식의 예능 《[[회장님네 사람들]]》을 방영 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