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영록 (문단 편집) == 생애 및 가수 활동 == 대배우였던 황해와 인기가수였던 백설희의 아들로 태어나, 부친과 친분이 있던 [[이예춘]]의 아들 [[이덕화]], [[독고성]]의 아들 [[독고영재]], [[조항(배우)|조항]]의 아들 [[조형기]], [[최무룡]]의 아들 [[최민수]], [[허장강]]의 아들 [[허준호]], [[박노식]]의 아들 [[박준규]] 등과 어릴때부터 호형호제하며 성장했다. [[1971년]] [[기독교방송]] 영 페스티벌로 첫 방송을 탔으며 본격적인 활동은 [[1973년]] MBC 드라마 '제3교실'에 출연하면서부터다. 그리고 저 드라마에서 삽입곡 '편지'를 부른 것을 계기로 [[1975년]] 가수로 본격 데뷔한다. 이후 [[임예진]], [[김보연]] 등과 짝을 이뤄 청춘 영화의 주인공으로 단골 출연한다.[* 김보연과는 [[1979년]]에 개봉된 ‘꽃밭에 나비’에서 호흡을 맞췄다. 전영록은 주인공 역할인 ‘최병걸’을 연기하였다. [[손창호]], [[김영철(배우)|김영철]], 여주인공인 박영귀(극중 이름은 정미.)도 출연하였다. [[1980년|이듬해]]에 '달려라 풍선'에서 다시 호흡을 맞췄다.] [[1980년대]]엔 남자 가수 중 [[조용필]]의 뒤를 이어 [[이용(가수)|이용]], [[송골매(밴드)|송골매]], [[김수철(가수)|김수철]], [[김범룡]] 등과 함께 2인자 그룹으로 인기를 누렸다. 다른 2인자 그룹들이 상대적으로 전성기가 짧은데 비해 전영록은 80년대 내내 꾸준히 인기를 모으며 롱런했다. 이 시기 전영록은 '[[종이학#s-4|종이학]]',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불티#s-2|불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 등을 히트시키면서 청소년들, 특히 여중고생들에게 우상으로 군림했으니 여러 모로 한국 가요계에 아이돌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80년대 중반 중에서도 앞 쪽의 히트곡이며, 86~88년에는 '그대 우나봐', '내 사랑 울보', '하얀 밤에', '저녁놀'로 가수로서는 최절정기를 맞았고 특히 86년과 87년 2년 연속으로 'KBS 가요 대상' 대상을 차지했다. (86년까지는 남녀가 나뉘어져 있어서 남자 대상, 87년은 통합 대상.) 연기, 노래, 작곡, 라디오 DJ 등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활약한 만능 엔터테이너라고 할 수 있다. 중년 이상이 아니면 그의 80년대 위상이 잘 와닿지 못할 수 있는데, 2000년대를 기준으로 비교하자면 댄스 솔로 아이돌이자 연기자로도 인기를 얻었던 [[비(연예인)|비]]와 상당히 유사한 행보를 구축했고,[* 순전히 '가수'로서의 위상만 놓고 본다면 비와 비교한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될 정도로 전영록은 폭넓은 세대에게 사랑받은 히트곡이 많았다.] 가요계와 영화계 둘 다 평정한 몇 안되는 스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의 80년대 인기도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MBC]] [[황금어장(MBC)|황금어장]] -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의 [[2008년]] '박상민, 민경훈' 출연 에피소드에서는 1980년대와 2000년대 가요계를 비교하면서 두 사람을 직접 비교하는 시간도 가졌을 정도. 원래 80년대 초반까지 포크 음악을 주류로 선보했던 시절에는 젊은층의 팬층이 크지 않았으나 80년대 중반부터 '불티' 등 락풍의 음악을 선보일 때부터 젊은층의 팬층이 증가하였다. 특종 TV연예에 등장한 신인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곡 [[난 알아요]]를 평가했던 4명 중 한 명. 나머지 세 명은 작곡가 하광훈, 작사가 양인자, 연예평론가 이상벽. 전영록 본인은 해당 방송에서 '''"새롭고 다 좋은데... 나쁜 말은 안 하겠다. 평가는 시청자의 몫이다."''' 라고 했는데[* [[시나위(밴드)|시나위]]로 록 밴드 활동을 했던 서태지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해주었지만 새로운 장르를 들고 나온 것에 대한 평은 팬들에게 맡기겠다는 뉘앙스다.] 그날 이후 한국 가요계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통에, [[뉴 키즈 온 더 블록]]에 비유하며 두루뭉술 호의적으로 평가한 데다가 팬심으로 먹고 살지 않는 [[이상벽]]을 제외한 나머지 2명은 방송상 보여준 서태지를 대놓고 깎아내리는 평가에 대한 후유증을 크게 겪었다고 한다. [[파일:전영록.png|width=30%]] 군대에서 보직은 통신병이었다고 한다. 연예계 대마초 파동이 일기 시작하자, 아버지 황해가 군대로 보냈다. 그것도 빽써서 전방으로 보내버렸다고 한다.[* [[15사단]]에서 복무 하였다고 한다.] 한편 [[당랑권]] 유단자[* MC [[임성훈(방송인)|임성훈]]이 사형이라고 한다. 전영록의 말로는 임성훈은 창술, 자신은 봉술과 권법을 배웠다고...][* 국내 당랑권의 초기 계보는 화교로 태극당랑권의 임풍장, 태극매화당랑권의 강경방으로 시작되고, 임풍장의 제자가 홍문탁이다. 임성훈과 전영록은 이 홍문탁에게서 당랑권을 배웠다고 하니 정통무술을 제대로 배운 것이다. 2010년대 기준에서도 한국내 당랑권 최고수하면 홍문탁과 화교로 한국에 들어온 이덕강이 손꼽힌다.]로서의 능력을 살려 액션영화 [[돌아이]] 시리즈[* 전영록은 이 영화 시놉시스를 군대에서 썼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도 있다. 군대에서 자기 별명이 돌아이였다고.]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연기를 선보였다. 전영록 본인의 너스레에 의하면 '''자기처럼 키 작은 스턴트 배우가 없어서''' 본인이 모든 액션 장면을 연기했다고 한다. 다만 이두용 감독이 '''이 영화는 막싸움이야.'''라고 해서 실제 액션장면에서 당랑권은 흔적도 없으니까 기대하지 않는게 좋다고 했으며 그 뒤 한국판 람보를 만들겠다면서 나온 1987년작 전쟁 액션물 [[독불장군]]은 흑역사가 되었다. 서울 관객 5천명조차 보질 않을 정도. 1987년 [[진유영]]이 악역으로 나온 영화 대야망을 마지막으로 액션영화는 은퇴하고, 영화 몇 편에 더 나온 그는 [[최진실]]과 [[정보석]] 주연 액션영화 '꼭지딴'(1990) 음악을 맡기도 했다. 30년 가까이 영화 활동을 그만두던 그는 2019년 [[독립영화]] '[[애월]]'에서 [[카메오]]로 잠깐 나온 바 있다. 한편 전영록은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일면도 있었으며 자신의 노래만이 아니라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작사, 작곡해 히트곡을 만들어내면서 한때는 가수보다는 작사/작곡에 더 몰두하면서 역시나 정상에 섰다. [[김지애]] '얄미운 사람'[* 그런데 이게 [[김일병송]]에서 음색을 따왔다고 본인이 밝혔다.], [[이지연(1970)|이지연]]의 '바람아 멈추어다오', [[양수경]]의 '사랑은 창밖에 빗물같아요' 등이 작곡한 히트곡 중 일부. 위 노래들과 가수에 대한 배경을 설명해보자면, 이지연의 경우 데뷔 2년차에 발표한 2집에 담긴 해당 노래로 [[가요톱10]] [[가요톱10#s-8|골든컵]]과 [[MBC 가요대제전]]에서 10대 가수가 되었으며, 양수경 역시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로 가요톱10 1위와 10대 가수로 올라섰는데 두 곡 모두 [[1989년]] 한 해에 발표된 곡이였다. 앞의 둘이 젊은 층에서 인기를 쌓아가다 전영록의 곡을 만나 정상에 오른 것인데 비해서, 김지애의 경우 86년에 발표해서 고만고만하게 히트한 '물레야'만 불러야 했던 트로트 가수로 젊은 층에는 큰 인기가 없던지라, 당시 작곡가로 잘 나가던 전영록이 김지애에게 곡을 줬다는 소식에, 과연 전영록이 김지애로 흥행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호사가들의 입방아가 있었다. 그리고 결과는 가요톱10 골든컵과 10대 가수 수상이었으며, 전영록의 곡은 누구라도 히트시켜줄 거라는 얘기까지 들었다. 그 외 인기 탤런트이면서 당시 라디오 DJ였던 [[김희애]]가 불렀던 '나를 잊지 말아요'도 전영록이 만든 곡[* [[https://youtu.be/9xOuAEHGRVw?t=1049|사실은, 전영록이 1976년 10월에 현역 입대 후 휴가기간에 틈틈히 녹음했던 곡을 모아 군복무 도중에 발매된 앨범에 수록한 '''잊지 말아요'''가 원곡이다.]]]이다.[* 참고로 전영록은 자신이 만든 노래를 다른 가수들(특히 여가수)에게 주는 경우 노래 중간에 화음을 넣어주는 역할을 종종 했다.] [[1990년대]] 들어선 후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변되는 가요계 대격변의 흐름과 세월을 이기지 못해 가수로서도 예전의 인기, 작사/작곡자로서도 흥행을 누리지 못하지만 간간이 콘서트와 뮤지컬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세월에 역행하는 초[[동안]][* 코미디언 [[이홍렬]]과 동갑이자 중학교 동창으로 친한 사이다. 근데 전영록이 워낙 동안이라서 친구인 이홍렬에게 "야~ 야~" 거리는거 보고 주위에서 기겁하며 "윗 사람을 왜 그렇게 함부로 부르냐?" 놀라면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티비에 나와서 말한 적 있다.]으로 유명하다. 1990년대에도 소개 멘트가 '만년 소년'이었고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이경규]]와 함께 형제 무술인으로 출연했을 때 이경규가 전영록을 '형님'[* 실제로 전영록이 6살 더 많다.]이라고 불렀는데 상당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최근 유튜버로 [[https://www.youtube.com/channel/UCK0LHctja6wxeE0KO48rL9w|전영록 TV]]를 오픈, 왕성한 음악 활동을 진행 중이다. 그의 최근 음악은 네이키드 뮤직이라는 장르로 통기타 두대로 락 음악의 기본 요소인 리드기타. 베이스기타. 드럼의 역할을 편곡을 통해 완벽히 구사하고 있다. 한편으로 자신의 히트곡은 물론 당대 국내 대중 음악으로 기억에 남는 곡들을 영어로 개사해 발표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