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소제(전한) (문단 편집) == 생애 == 이름은 유공(劉恭)이라고 하지만 《[[사기(역사책)|사기]]》(史記), 《[[한서]]》(漢書), 《[[자치통감]]》(資治通鑑) 및 그 주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으므로 근거는 알 수 없다.[* 전목(錢穆)의 《국사대강(國史大綱》이라는 책에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전목이라는 사람은 1895년 생으로 1990년까지 산 현대 인물인데, 무슨 근거로 이런 이름을 올렸는지는 모른다. 중국에서는 전소제의 이름을 미상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20세기 대부분의 기록에서는 전소제의 이름이 다 유공이라고 되어 있어서, 인터넷이 없었다면 전목이 지어낸 이름이 휘로 굳어졌을지도 모른다.] [[혜제(전한)|혜제]]와 [[효혜황후(전한)|효혜황후 장씨]] 사이에 자녀가 없었으므로[* 효혜황후는 혜제의 '''친'''누나의 딸, 즉 자기 조카다. 정황상 혜제가 근친상간을 꺼렸다고 볼 수 있다.] 양자로 들여서 양육하였으나, 일설에는 남의 아이를 데려왔다는 설과 혜제와 [[후궁]] 사이에서 태어났는 설이 있다. [[고황후 여씨|여후]]는 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염려하여 이 인물의 생모를 죽였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188년, 혜제가 승하한 후 이 인물은 등극하여 소제가 된다. 여태후는 이 인물이 어리다는 이유로 정사에 관여하여 세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여씨들을 왕으로 봉하는 등 전횡을 일삼는다. 그러나 이 어린 황제는 성장하면서 과거 진상을 듣게 되고는 "[[고황후 여씨|태후]]가 어찌 내 어머니를 죽이고 나를 (효혜황후의) 아들로 삼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아직 어리지만 장성하면 상황이 바뀔 것이다!"라고 공공연히 복수를 맹세했다. 이를 알게 된 여태후는 그를 영항(永巷)[* 궁중 감옥.]에 유폐시킨 후 대외적으로 중병이라 공표하여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이에 대해 문무백관은 한 마음으로 여후에게 동조했다. 이렇게 되자 나라를 다스릴 수 없으므로 폐위되었고 머지 않아 살해되었다. 그의 뒤를 이어 또 다른 소제가 뒤를 잇는데 바로 동생 유홍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