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상엽 (문단 편집) === 광복 후 === 이후 고향인 북한에서 항일 투쟁 사실을 높게 평가받고 공직생활을 잠시 했으나 공산주의 체제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조용히 38선 이남으로 넘어와 남한의 체제에 얼마간 적응한 뒤, 가족 역시 남한으로 몰래 데려왔다. 그로부터 얼마뒤 6.25전쟁이 발발했으니, 자신과 가족의 이주를 조금만 지체했다면 전쟁통에 가족과 헤어지거나 북한체제를 떠나는 것이 불가능했 수도 있었으니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6.25 전쟁]] 중 남한에서는 상대적으로 고학력인 인원은 장교로 차출하였는데, 평양의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에게 학도병 훈련까지 받은 전상엽 지사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전상엽 지사는 장교로 차출되어 참전한 6.25 전쟁 중 북한군과의 전투에서 수차례 죽을 고비도 넘겼다고 한다. 항일투사였을 뿐아니라 참전용사였던 것이다. 휴전 이후에는 군에 남아 장교로 복무하며 [[육군사관학교]]에서 수학 교수를 맡기도 하였고, 최홍희를 비롯한 비슷한 처지의 이북이 고향인 장교들과 가깝게 지냈으나, 이북을 고향으로 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군에서의 진급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껴 중령으로 예편하게 된다. 이후 서울특별시에서 조용히 지내다 2016년 8월 5일에 [[숙환]]으로 별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