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병호 (문단 편집) == 기타 == [[이승엽]]의 사인을 잘 흉내낸다고.[[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76&aid=0001971968|#]] [[파일:attachment/전병호/b1.jpg]] [[파일:attachment/전병호/b2.jpg]] [[파일:attachment/전병호/b3.jpg]][* 왼쪽부터 [[성준(야구선수)|성준]] 선수, [[전병호]] 선수, [[임동규(야구)|임동규]] 선수이다.] ※ 그가 어떤 투수인지, 흑마구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그림들 [[파일:attachment/전병호/b4.jpg]] 전병호의 [[리즈 시절]]로 유명한 사진. 하지만 이 사진에 찍힌 구속은 조작이다(...).[* 실제 이 '플래쉬백' 프로그램을 보면 152km/h가 아닌 125km/h가 찍혀 있다.] 선수 초창기 시절인 1997년에 싸인 문제가 생겨서[* 물론 포수가 --막장 포수-- [[김영진(야구)|김영진]]인 거를 감안해야 한다.] LG의 [[심재학]]에게 쓰리런을 허용하자 [[백인천]] 감독에게 뺨을 맞았는데, 이 사건은 [[백인천]]이 삼성 감독에서 물러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병호가 삼성 팬에게 2002년 이전까지 평가가 좋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 여담으로 [[백인천]]은 전병호의 뺨을 때리고 열이 뻗쳤는지 뇌출혈로 쓰러지고 응급실로 향했다. 그후 백인천은 감독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수석코치 [[조창수]]가 임시감독으로 시즌을 마친 이후 감독직에서 사퇴했다. 그후 다시 [[롯데 자이언츠]]에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는데...[[백인천|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하일성]] 해설위원은 같은 팀 대선배이자 레전드 좌완투수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와 투구 폼과 스타일이 흡사하다며 자주 비교하곤 했다. 전병호 역시 1973년생 92학번 황금세대의 일원으로 [[임선동]], [[박찬호]], [[박재홍(야구)|박재홍]], [[차명주]] 등의 선수들과 동갑내기이다. 다만 이 때 다른 팜에서는 대어가 쏟아져 나오는데 대구경북 팜만 유일하게 망하는 바람에 내세울 선수가 전병호밖에 없었다. 다른 동기들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네임드가 딸리긴 했지만 그래도 당시 전병호는 대구경북 팜을 대표하는 에이스였고, 대학시절 한미 대학야구 친선전에 선발되는 등 엄연한 국가대표 출신이었기에 1차 지명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시기 대구경북 팜이 망했던지라, 국가대표 신인으로 입단하긴 했지만 박찬호, 임선동, 조성민 정도의 전국구급 네임드 선수는 아니었을 뿐더러 처음에는 입단동기 [[최창양]]이 더 푸시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전병호는 1차 지명자로서의 품격을 보여주듯 1996년 입단한 삼성 대졸선수 중에서는 두 번째로, 프랜차이즈로는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선수였다.[*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선수는 [[정경배]]로 전병호 은퇴 1년 후인 2009년에 은퇴했다. 고졸 포함으로는 당시 전성기였던 [[정현욱(1977)|정현욱]]이 있었다.] 은퇴하는 2008년까지 12년 간을 활약하며 마운드를 떠받치는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2008년 당시엔 30대 중반에 은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 딱 이르지도 않고 늦지도 않을 때 은퇴한 셈이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