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범기업 (문단 편집) ==== [[미국]] ==== 1929년 수요의 실종으로 [[대공황]]이 발생했는데 당시 독일은 히틀러로 대변되는 [[파시즘]]으로, 소련은 [[공산주의]]로, 미국은 '[[뉴딜 정책]]'으로 활로를 모색하던 시기였다. 문제는 당시 미국의 파워엘리트나 유럽 선진국의 기업가치로 대변되는 소위 기업가들은 '[[레드 컴플렉스|적색공포]]'로 두려움에 떨었다. [[소련]]은 [[스탈린]]의 '''제2의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의 철저히 폐쇄된 [[계획경제|국가계획경제]]를 실시했는데 방법은 러시아의 노동과 자본을 소련의 제조업으로 강제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진짜 말 그대로 농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켜서 공장에 넣어 버렸으며 소련에 남아 있는 거의 모든 자본을 중공업에 투자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소련은 빠른 속도로 공업경제를 구축했고 1929년~1939년 사이에 소련의 1인당 생산은 61%나 증가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농민들의 대규모 강제이주에 따른 부작용이 엄청났던 것이다. 강제집행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뒤따랐고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어나갔다. 상황이 재앙처럼 돌아가자 소련의 사회 분위기는 어수선해졌고 불만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스탈린이 꺼내든 카드가 바로 ''''피의 난쟁이'''' [[니콜라이 예조프|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예조프]]였다.[* 그러나 이러한 대숙청에 대한 기존의 해석(스탈린의 권력 강화 및 사회 불만 세력 단속을 위해 의도적으로 일어났다)에 대한 반박 역시 적지 않다. [[대숙청]] 항목의 수정주의 문단 참조.] 사실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당시에는 이런 재앙 같은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1930년대에 [[소련]]은 --진짜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자와 핍박받는 민중의 유토피아가 되고야 말았다. '''"완전 고용, 완벽한 사회보장 제도, 노후연금. 소련은 노동자의 천국이다!"'''라면서 당대 [[지식인]], [[예술가]], [[노동자]]치고 소련을 찬양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렇다 보니 앞서 설명한 '[[레드 컴플렉스|적색 공포]]'가 미국 기업가들에게는 매우 무서운 현상 중 하나로 여겨졌다. 당장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뉴딜 정책]]으로 노동자의 입김이 엄청나게 강해진 미국 기업가들의 입장에서 소련과 같은 공산혁명이 자국에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희망으로 떠오른 것은 [[히틀러]]였다. 공산주의를 배척하고 소련 땅을 점령해 [[레벤스라움]]을 건설하겠다는 엄청난 포부, 아니,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노조를 해체하고 노동자의 단결권을 없애 버린 것만으로도 히틀러는 기업가들의 영웅이었다. 1933년 [[제너럴 모터스]]의 회장 크누센은 독일을 방문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된 독일 경제를 보며 '''"20세기의 기적"'''이라고 칭송했는데 이는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었다. 1930년대부터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미국 기업가들과 정치인들은 [[히틀러]]와 독일을 사랑했고 독일을 위해 물심양면 모든 자원을 아끼지 않았다. 1933년 [[히틀러]] 집권 이후 독일과 미국이 전쟁을 시작한 1941년까지 독일에 투자한 미국 기업은 대충 헤아려도 스무곳이 넘는데 [[포드(자동차)]], [[제너럴 모터스]], [[코카콜라]], [[듀퐁]], [[IBM]], ITT, 스탠더드 오일 오브 뉴저지(지금의 [[엑슨모빌]]), [[JP모건]] 등등 다들 이름만 들어도 눈이 돌아갈 만한 기업들이다. 미국 기업인들은 [[히틀러]]가 [[폴란드]]를 점령하고 [[프랑스]]를 함락했을 때 [[미국]]에서 승전 파티를 열 정도로 [[히틀러]]에게 호의를 보였다. 이유는 당연히 '''"[[빨갱이]]를 처단하고 기업의 이익을 수호"'''했기 때문이다. 독일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은 노동자들이 쟁의를 일으키면 불과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 [[게슈타포]]가 출동해 모두 제압하고 공장을 정상화시키는 [[정당방위|기적]]을 목도했다. 독일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였고 히틀러는 자신들의 친구였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3 태평양전쟁I: 괴물로 변해가는 일본, 이성주, 생각비행] 이들 기업은 [[나치]]를 도와 [[독일]]에서 열심히 돈을 벌었고, 나치 독일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게 되면서 이들 기업을 징발했으나 별로 개의치 않았는데 말이 징발이지 나치 입장에서 기업에 밉보여 좋을 게 없었으므로[* 반 나치 성향 기업주 또는 노동자들에 의한 [[사보타주]]가 점령지에서 흔했다.] 경영에 간섭하지도 않고 이윤을 보장하며 강제노동을 할 [[노동자]]까지 제공했다.[* 물론 그 댓가로 충분한 전시물자의 공급을 요구했고 당연히 목표량을 초과 달성하는 것으로 보답했다. 이윤이 중요한 기업들은 설령 요구하지 않았어도 알아서 공장을 돌렸다.] 거기다 언젠가는 돌려받을 미국 기업의 자산이라는 이유 때문에 [[연합군]]의 폭격 대상에서도 가급적 제외되었고[* 폭격을 할 때도 있었으나 이들 미국계 기업들은 나름의 인맥을 통해 공습 정보를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고 그 정보에 따라 주요 시설물들을 폭격에 피해가 없도록 은폐했다. 상당수의 미국계 기업 공장들은 종전 때까지 정상적으로 운영되거나 운영 가능하도록 치장되어 있었으며 종전 직후 미국 본사에서 온 기술자들이 조사해 보니 당장이라도 운영 가능하도록 준비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군수품 하나가 아쉬운 나치 독일은 더욱 더 이들 미국계 기업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미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종전 후 전범기업으로 취급받지도 않았고 독일에 징발되었다는 이유로 전후 [[배상금]]까지 두둑히 받았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장사를 [[제2차 세계 대전]] 때 한 것. * [[IBM]] - IBM의 독일 자회사인 데호막(Dehomag)은 카드 천공기 기술을 독일에 제공했는데 이 기술을 바탕으로 나치 독일은 유태인을 색출하고 재산을 압수하며 처형하기 위한 자료를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 스탠다드 오일(Standard Oil 현 [[엑슨모빌]], [[쉐브론]])[* 정확히는 스탠다드 오일의 독일 자회사인 Deutsch-Amerikanische Petroleum.] - 개전 후에도 버젓이 독일에게 석유를 팔았다. 심지어는 [[영국군]]에게 발각되지 않는 위치여서 당시 독일군 [[U보트]]의 중간 거점 역할을 하던 [[파나마]] 근해에서 비밀스럽게 독일군 [[U보트]]에게 급유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한다. 1942년 미국 정부가 적성국 교역 금지법으로 이를 제재하려고 했는데 당시 법이 발의되었을 때 유명한 말을 남겼다. "'''우리가 공급하는 석유가 없다면 미국은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와 미국 정부 상대로 패기보소-- 스탠더드 오일을 비롯한 미국 석유 기업들은 히틀러에게 디젤유, 윤활유, 고무 등의 전략적 물자를 계속 보냈고, 심지어 합성 석유 기술까지 건넸다. 당시 히틀러의 전쟁 물자를 담당했던 [[알베르트 슈페어]]는 '''"합성 석유가 없었다면 히틀러는 결코 [[폴란드 침공]]을 꿈꾸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 [[제너럴 모터스]] - 1939년까지 포드와 더불어 GM은 독일의 자동차 시장 점유율이 70%였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 동안 전쟁수행에 필요한 각종 트럭과 자동차를 생산했고 심지어는 탱크와 장갑차까지 납품했다. 세계 최초의 실용 제트 전투기인 [[Me262]]의 엔진은 GM의 자회사인 [[오펠]]의 뤼셀스하임 공장에서 생산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착실하게 돈을 벌었고 그 돈을 [[스위스 은행]]을 이용하여 세탁해서 받았다. * [[코카콜라]] - 독일의 음료는 맥주였다. 맥주는 독일에서 술이 아니라 음료 취급을 받고 있었다. 나치 독일은 노동자가 그 '음료'를 먹고 취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맥주 대신 콜라를 권장하면서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했다(...). 1934년 24만 3000박스, 1939년까지 450만 박스로 늘어났다. 그런데 전쟁 이후 독일 코카콜라 입장에서는 콜라 원액을 수입할 수 없을거라 생각하여 대체제를 개발했는데 그게 바로 [[환타]]다.[* 코카콜라 미국 본사와 무관하게 독일 코카콜라에서 개발한 음료. 여담으로 코카콜라 본사는 스위스 등 중립국을 거쳐서 콜라 원액을 독일로 보내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당연하면 당연하다지만 이 과정에서는 프랑스, 체코 등에서 강제로 징용된 노동자들의 희생이 따랐으며 코카콜라 본사는 전쟁이 끝난 이후 독일 지사의 수입을 가져갔다. * [[포드 모터 컴퍼니|포드]] - [[헨리 포드]]가 나치 독일에 공장을 세우기도 했고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일 정부에게서 파괴된 공장에 대한 보상금도 받아냈다. 또 포드 자신이 [[반유대주의]]적인 성향이 매우 강해서 [[나치즘]]에 우호적이었다. 예를 들면 포드의 신문사에서는 국제 유대인 조직이나 [[시온 의정서]]와 같은 [[가짜 뉴스]]를 열심히 퍼트렸다. 아돌프 히틀러와 우호적 관계를 가진 적이 있었고 [[나치즘]]을 지지하는 외교관과 외국 저명인사들에게 주어지는 훈장인 독일 독수리 훈장 중 최고등급인 독일 독수리 대십자 훈장을 1938년 그의 생일에 받는 영광(?)도 누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