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례 (문단 편집) === 언어 === 전례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말, 곧 언어는 매우 중요하다. 가령 오늘날에는 모국어로 전례를 거행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진행되던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례는 라틴 말로 거행되었다. 가톨릭 교회가 그때까지도 라틴 말을 고수했던 여러 이유 중 하나를 다음에서 엿볼 수 있다. >(중략) 실제로 많은 이들이 성찬 제사를 거행할 때에 모국어를 사용하도록 허가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공의회는 이러한 요청에 대하여 교회의 전통 가르침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그 시대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다. 전통에 충실한 가르침에 따르면, 무엇보다도 성찬 제사는 바로 그리스도의 행위이기 때문에 신자들의 참여 방법에 따라 그 고유한 효과가 달라지지 않는다. (중략) >----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11항. [[https://missale.cbck.or.kr/Ebook|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신자들의 참여 방법에 따라 그 고유한 효과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곧 '신자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알아듣기 힘든) 라틴 말이라고 그 고유한 효과가 달라지지 않는다'고 간주한다면, 전례문 각각의 요소가 표징으로서 작용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마치 한국인이 다른 나라 성당 전례에 그 나라 말로 참여한다고 성사의 효과가 달라지지 않는 이치이다. 이를 바탕으로 보면, 옛날 가톨릭 교회는 라틴 말 전례문이 담는 표징과 상징이 모국어를 사용함으로써 불완전해질 위험을 우려했다고 볼 수 있다. 한 예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에 사용된 한국어나 영어 미사 통상문의 '또한 사제와 함께.'('And also with you.')가 2010년대에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And with your spirit.)로 바뀐 것을 보면 그 우려가 반은 맞은 셈이다. 왜 '반은 맞다.'라고 표현하느냐 하면, 결국 교회의 자정작용을 통해 이를 바로잡았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전례 안에서의 모국어 사용을 허가한 배경은 근본적으로는 위와 동일하다. 아래의 36항 (2)가 모국어 사용에 관한 참으로 자비로워보이는 길을 열어 두었지만, (3)에서는 모국어 사용과 방법에 대해 결정하고 사도좌의 승인 또는 추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전례의 표징과 상징이 모국어로 제대로 표현되는지를 관할 지역 교회의 권위, 동일 언어를 사용하는 인접 지역 주교들, 그리고 사도좌라는 몇 단계를 거쳐서 검토해야 한다는 뜻이다. >1) 라틴어의 사용이, 특수법은 유지되지만, 라틴 예법에서 보존되어야 한다. > >2) 그러나 미사 또는 성사 집전 또는 전례의 다른 부분에서 드물지 않게 모국어의 사용이 백성에게 크게 유익할 수 있으므로, 더 많은 여지가 거기에 부여될 수 있다. 주로 독서, 권고, 어떤 기도문과 노래에서, 이 일에 관하여 다음 장들에서 낱낱이 세워지는 규범에 따라 그러할 수 있다. > >3) 이러한 규범을 준수하며, 관할 지역 교회 권위는 제22항 2)의 규정에 따라, 또한 사정이 요구한다면, 동일 언어를 사용하는 인접 지역 주교들과 협의를 가져, 모국어의 사용과 방법에 대하여 결정하고, 사도좌의 승인 또는 추인을 받아야 한다.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 거룩한 공의회」 36항. [[https://cbck.or.kr/Documents/Council|원문 열람]].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가령 한국 천주교는 1967년부터 한국어로 미사를 거행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로마 미사 경본』과 같은 완전한 미사 경본이 나오기까지는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여기에는 라틴 말 본문이 담는 표징과 상징이 한국어로 충실히 표현되는지를 검토하고 적절한 한국어를 찾는 과정이 포함된다. 한국어판 『미사 독서』에 사용되는 『전례 시편』을 가다듬는 작업도 그것의 일환이다. 모국어의 아름다움과 고유의 운율을 도모하면서도 전례적인 표징과 상징을 제대로 담아야 하는 작업은 누가 봐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왜 교회가 언어적 표징과 상징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왜 그 오랜 세월 동안 모국어 사용을 허가하지 않았는지를 여기서 알 수 있으며, 20세기를 거치면서 사도좌가 지역 교회에 보내는 신뢰가 그만큼 높아짐도 부수적으로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