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량(오호십육국시대) (문단 편집) === 장점 === 전량의 장점은 외부적인 요인과 내부적인 요인으로 나뉜다. 외부적인 요인으로는 오호십육국시대의 혼란과 양주(涼州)의 특성이 기묘한 화합을 이루면서 해당 지역을 할거하고 장기간 독립할 수준의 국가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원래 양주지역은 이민족이 날뛰는데다가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지역으로 하서회랑을 비롯한 각종 통로가 많기 때문에 방어할 지역이 많아서 오래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중국의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에 서량 지역에 이민족 침공과 내부 침투 및 거주가 많았다는 것만 봐도 양주의 황폐함이 충분히 연상된다. 그러나 오호십육국시대가 도래하면서 '''상당수의 이민족들이 관중, 관동지역등 중원지역으로 이동했다.''' 아무래도 서량지역보다 중원지역이 살기가 좋으므로 중원에 혼란이 발생하면 그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이민족들의 심리였고 거기서 중원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 싸우면서 서량지역은 이민족에게 일시적으로 잊혀진다. 대표적인 사례로 선비족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여기에 더해서 기존에 [[몽골고원]]을 차지하던 이민족들은 중원지역인 남쪽으로 내려가고 그 뒤를 이어주는 [[유연 제국]]은 [[서진]] 시대 말기에 [[소빙하기]]가 의심되는 이상기후로 인해 몽골고원 일대가 유목민들에게도 살기 어려운 곳으로 전락하면서 제 능력을 발휘하지도 못하는 실정이었다. [[티베트고원]] 일대는 아직 [[토번 제국]]같은 강력한 국가가 나타나지도 않았고 중국 근처의 접경지역에 살던 이민족들은 앞서 말했듯이 관중, 관동지역으로 진출해서 숫자가 크게 줄어들었다. 종합하자면 일시적이지만 양주(涼州)를 괴롭히는 이민족들이 거의 사라지면서 양주가 힘의 공백지대가 되었으며 누군가가 양주를 평정하면 오래 유지할만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내부적인 요인으로는 장궤를 비롯한 전량의 지도자들이 현명한 판단을 통해 전량을 유지 및 발전시킨 것에 있다. 장궤가 빠른 속도로 양주를 평정한 후 장식부터 장중화까지 4명의 왕이 순탄하게 즉위하면서 정통성을 확립하고 내부를 안정시켰기 때문에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내부적으로는 외왕내제에 가까울 정도로 황제에 가까운 왕 노릇을 하면서도 외교적으로는 어디까지나 서진이나 동진의 신하라는 타이틀을 걸어놓고 주변국이 강성해지면 칭신을 청해서 책봉을 받는 등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외교적으로도 완전 자립한 황제의 국가가 된 시기는 장조가 재위중인 354년이라는 1년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실크로드 교역으로 얻은 진귀한 물품을 [[조공]]하는 등 강대한 국가에 대한 우호적인 외교관계 확립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장씨 집안이 독립된 국가의 국왕으로 자립하려는 생각도 있어서 시간이 흐르고 국왕이 여러 명 즉위하면서 서서히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었다. 장식까지는 서진과 동진의 신하라는 의식이 강했다면 장무부터는 내부적으로 왕을 칭하며 독립적인 국가로 나가기 시작하고 장준부터는 영지내에서는 황제의 의장을 사용하고 천자의 권한을 쓰는 등의 단계를 하나씩 밟아나가고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