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라도 (문단 편집) === [[조선시대]] === [include(틀:조선의 행정구역)]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전라도는 조선시대에도 계속 유지되었다. 다만 일시적으로 도의 이름이 바뀐 적은 있었는데, 조선시대에는 도의 명칭의 유래가 된 고을에서 역모나 하극상 등의 일이 있으면 그 고을의 등급을 강등시킴과 함께 도의 명칭에서 빼버리고 다른 고을의 명칭을 가져와서 도의 명칭을 정했다. 충청도는 [[광해군]] 때 청주, 충주에서 차례대로 반란이 일어나 충홍도(忠洪道, 충주+[[홍주목|홍주]])로 바뀌었다가 다시 공홍도(公洪道, [[공주]]+[[홍주목|홍주]])로 바뀌었고, 인조반정 후 충청도로 복귀한다. 강원도는 [[원주시|원주]]에서의 반란으로 강춘도(江春道, [[강릉]]+[[춘천]])로 바뀌었다. [[1645년]]([[인조]] 23년)에 [[나주]]에서 향리가 나주목사를 상해를 입히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나주목을 금성현(錦城縣)으로 강등하고 나주 대신 남원을 따서 전남도(全南道)라 하였다. [[1654년]]([[효종(조선)|효종]] 5년)에 금성현은 나주목으로, 전남도는 전라도로 복구되었다. 그러나 1년 후 1655년 나주에서 전패(殿牌)가 파손되는 사건이 일어나 다시 금성현으로 강등되고 전남도가 되었다. 이후 광남도(光南道) 등으로 개칭했다가 복귀했다. 전라도에서는 전주, 나주와 함께 [[광주광역시|광주]], [[남원시|남원]]이 위상이 높은 도시였으므로 광주나 남원 중에서 이름을 정했다. 다만 [[1589년]] [[정여립의 난]]에도 불구하고 전주는 풍패지향이라는 이유로 강등되거나 도명이 바뀌지는 않았다. [[1728년]]([[영조]] 4년)에는 [[이인좌의 난]]에 나주가 연루되어 나주목이 강등되고 대신 광주를 넣어서 전광도(全光道)로 도의 명칭이 바뀌었다. 이 일과 관련해 영조는 경상도에도 영남을 토벌했다며 평영남비(平嶺南碑)를 세우기도 하였다. [[1737년]](영조 11년)에 다시 나주가 부로 재승격되면서 강원도와 함께 원래 이름을 되찾게 된다. 전라도는 본래 [[조선 왕실]]의 본관이 있는 곳으로, 왕조 초기부터 [[전주]]는 왕실로부터 풍패지향(豊沛之鄕)[* [[한 고조]]의 고향이 풍읍 패현(豊邑 沛縣)이었다는 데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즉, 조선 왕실 스스로 [[한나라]] 황실에 비유한 것이다.]이라고 불리며 특별한 대우를 받아 전주부가 되었고, [[전라감영]]을 전주에 두었다. 그리고 호남은 조선 중기부터 [[서인]]의 정치적 기반이 되는 지역으로 성장하였다. [[1416년]]에는 [[탐라국]]이 완전히 [[한반도]] 국가에 복속되어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을 설치하고 전라도에 귀속되었다. 제주도는 [[1914년]] 독립 행정구역이 될 때까지 500년 동안 전라도 소속이 되었다. [[1894년]] [[6월 23일]]에는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23부제]]를 시행하며 전라도가 사라지고 전주부, 나주부, 남원부, 제주부의 4개 부(府)로 나뉘었다. 그러나 겨우 1년 뒤인 [[1895년]] [[8월 4일]]에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 체제로 전환하게 됨에 따라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로 개편되었고, 산하에 1개 목[* [[제주목]]]과 58개 군을 두게 되었다. 전라북도감영(現 [[전라북도청]])은 전주에, 전라남도감영(現 [[전라남도청]])은 광주에 두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