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국시대 (문단 편집) == 시기 == 전국시대의 시작 기준은 역사가마다 조금씩 다른데 사마천은 [[사기(역사책)|태사공저]] 중 6국 연표(전국시대의 연표)에서 시작점을 기원전 476년 [[진(영성)|진(秦)나라]]의 군주에 [[진여공공|여공공]]이 즉위한 시점으로 정했다. 진(秦)나라 여공공의 치세기간 중인 기원전 453년경에 춘추오패 중 하나인 [[진(춘추오패)|진(晉)나라]]에서 4대 유력호족인 조간자, 위환자, 한강자(韓康子)가 가장 강한 호족 [[지양자|지백]]을 공격해 죽이고 일족을 멸망시키는 내전이 벌어졌다. 내전 이후 얼마지나지 않아 진(晉)나라는 [[한(전국시대)|한(韓)나라]], [[위(전국시대)|위(魏)나라]], [[조(전국시대)|조(趙)나라]]의 [[삼진(전국시대)|세 개 국가로 분할]]되었다. 사마천은 통일왕조인 진(秦)나라를 기준으로하여 이 사건이 발생할 당시 진(秦)나라의 군주인 여공공의 즉위년도를 전국시대의 시작으로 정의한 것이다. [[사마광]]도 [[자치통감]]에서 이 사건을 기준으로 잡았다. 사마광은 지백 멸문보다 조금 뒤인 기원전 403년 [[진(희성)|진(晉)나라]]의 세 경(卿)이 주나라로부터 제후로 인정받아 [[한(전국시대)|한(韓)나라]], [[위(전국시대)|위(魏)나라]], [[조(전국시대)|조(趙)나라]] 삼국을 세운 시점을 전국시대의 시작점으로 보았다. 다른 견해로는 [[제(춘추전국시대)|제(齊)나라]]의 국성(國姓)이 강(姜)성 여씨에서 규성 전(田)씨로 교체된 연도를 기준으로 하거나 [[오(춘추시대)|오(吳)나라]]의 멸망을 기준으로 하거나 주 고왕이 즉위한 때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