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문단 편집) === 태동기(1987~1995) === 1987년 이전까지 한국의 공공부문 노동운동은 철도, 체신, 전기통신공사 등 어용노조만 존재할 뿐 민주노조 불모지였다. 그러나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함께 공공부문에서는 서울지하철, 부산지하철, 의료부문에서는 서울대병원 등 국립대병원, 정부출연기관에서는 산업연구원, 전자통신연구소,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에서 민주노조를 건설하며 공공운수부문 민주노조운동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1988년, 1945년 노조 건설 후 이승만 정권에 의해 공기업 어용노조의 아성이던 철도노조에서 공무원 단결권, 단체행동권과 월270~300시간하는 노동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며 기관사들이 3일 동안 파업투쟁을 벌였다. 파업 10시간 만에 1,500여명이 강제연행 당하는 등 무자비한 탄압을 받았지만 이 투쟁은 철도 민주노조의 불씨가 된 전국기관차지부협의회(전기협)를 건설하는 계기가 됐다. 그해 9월에는 화물운송노동자들이 전국화물운송노동조합연맹(화물노련)을 건설했고, 12월에는 연구전문직노동자(연구전문기술노동조합협의회/연전노협)들이 ‘정부출연 연구기관 민주적 운영, 자율적 연구 활동 보장, 노동자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공동투쟁을 벌여 사회공공성 투쟁의 포문을 열기도 했다. 1994년 6월, 철도 전기협과 전지협(전국지하철노조협의회) 공동파업, ‘조폐창 통·폐합 저지와 [[단체협약]]쟁취’를 요구하며 44일간 이어진 한국조폐공사노조 파업, 한국통신노조 민주화투쟁 등을 통해 그해 11월 4일, 142개 노조 21만여 조합원을 포괄하는 공공부문노동조합대표자회의(공노대)를 결성했다. 공노대 건설은 공공운수부문 민주노조 건설과 어용노조 민주화 투쟁이 만든 성과로 공공운수 노동자 단결의 필요성을 역사적으로 확인한 과정이었다. 이후 민주노총 지향의 조직들은 공공연맹을 건설(1997년)했다. 또 1995년에는 과학기술노동자들이 소산별노조인 전국과학기술노조를 건설했는데 이는 민주노총이 산별노조 운동을 열어가는 출발이 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