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적자생존 (문단 편집) == 오해 == 오늘날에는 [[일부드립|일부]] [[전체주의|사람들]] 또는 [[정치극단주의|집단들]]에 의해서 사회적 불의를 정당화 내지 [[자기합리화|합리화]]하는 도구로 악용해서 문제가 된다. "네 [[노오력]]이 부족해서 [[경쟁]]에서 패배한 것이지, 그건 [[사회]]나 [[국가]]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식. 하지만, 엄연히 따지자면 '나의 능력과 노력'도 부모님의 [[부자|부]][* 부모님의 부도 역시 [[국가]]와 [[사회]]가 제공한 기회로써 형성된 것이다.]와 함께 [[국가]]와 [[사회]]의 부조로써 형성된 것이다. 국가의 정책 추진에는 정책적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 공백지는 대개 사회적 약자들의 몫이다. 결국 기회의 제공부터 공평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 예를 들어 [[서울특별시]]는 온갖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등이 잘 갖추어져 있는데 [[지방]]의 도시나 어느 산골 마을에 가면 그런 게 전무하다. 양 지역의 기회의 제공에는 차이가 극심하다는 것. 게다가 이 논리를 극단적으로는 가난하거나 장애가 있는 등의 이유로 열등하다는 낙인을 찍고 그것에 대한 차별과 냉대를 정당화 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저들은 저급하고 모자란 족속들이므로 내쳐야 마땅하다는 이유로 [[우생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발상이 사회 안에서 정당화되었을 때의 섬뜩한 일들을 우리는 이미 [[나치 독일]]과 [[북한]]이라는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모든 사회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려버리는 이런 주장이나 하면서 [[사회적 약자]]를 억누르게 되면, [[가난|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양극화]])이 안팎으로 강화되어 버리고 종국에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사회적 약자들의 불만과 분노가 폭발하여 집회, [[시위]]를 넘어서서 [[혁명]] 등의 급변 사태로 번지거나 [[나치]], [[파시즘|파시스트]] 등과 같은 암적인 존재들이 창궐하는 문제가 생긴다. 대표적으로 빵을 달라고 했던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이 혁명의 사례이고,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개인이 해결하라고 내몰면 그 개인들이 힘을 합쳐 설사 개인의 이익추구를 위해서라고 하더라고 사회를 뒤집고 나치와 파시즘에 가담하는 것을 막을 논리가 존재할 수 없고, 이런 작자들이 나라를 지배하게 된다면 같은 논리로 타국을 침략, 병탄하거나 특정 그룹의 인간을 말살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까지 했다. 따라서 [[국가]] 차원에서는 이런 상황을 방기할 수 없기 때문에, [[헌법]]이나 [[법률]] 차원에서 '사회 복지'를 명문화하고 사회적 약자를 돕고 기회의 제공을 균등히 하여 공정한 [[경쟁]]을 벌일 수 있거나 능력이 부족해도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살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입장으로 본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예를 들어 돈을 남에게 배풀수록 배푼 사람은 빈곤해지지만. 국가의 입장에서는 사회에 유용되는 돈이 많아져 좋은 영향이 오는 것을 생각하면 쉽다 . 만만하고 사기치기 쉬운 착한 사람을 고기 혹은 피식자라고 부른다면 국가를 위해 스스로 피식자를 자처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오히려 이 쪽도 북한에서나 볼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이로써 현대사회에 적용되는 적자생존의 논리는 완전히 부인하거나 완전히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