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적기 (문단 편집) === 역사 === 본래 근대 이전 유럽 사회에서 붉은 깃발은 '항복하지 않고 최후의 일인까지 결사항전하겠다.'라는 메시지를 적에게 전달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이러한 의미의 적기가 오늘날과 같이 좌익 사상의 상징이 된 것은 [[1789년]] [[프랑스 혁명]] 때의 일. [[자코뱅]]이 집권한 1792년 이후에는 [[국기]]에 준하는 대우를 받기도 했으나 [[테르미도르 반동]] 이후 자코뱅이 몰락한 뒤에는 [[나폴레옹]]을 비롯한 온건파들의 [[삼색기]] 사랑에 밀려서 찬밥 대우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1820년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 적기는 [[1848년 혁명|1848년에 유럽에서 혁명의 시대]]가 도래하자 다시 기세를 떨쳤다. [[이탈리아]]에서는 [[주세페 가리발디]]가 이끄는 붉은 셔츠단이 등장했으며 [[프랑스]]에서도 [[2월 혁명]]으로 [[7월 왕정]]을 타도한 뒤 [[프랑스 제2공화국|새로 수립된 공화국]]의 국기를 삼색기가 아닌 적기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커져나갔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ar9_philippo_001z.jpg]] 2월 혁명 직후 수립된 임시정부를 묘사[* 정확히는 임시정부의 수장인 알폰스 드 라마르틴이 적기를 국기로 지정할 것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거부하는 연설을 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한 그림. 보다시피 삼색기 말고도 적기도 눈에 띈다. 하지만 알폰스 드 라마르틴을 위시로 온건 [[부르주아]]들이 장악한 임시정부는 이러한 대중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기존의 삼색기를 새로운 공화국의 국기로 채택한다. 이후 [[좌익]] 내에서 [[마르크스주의]]가 대세가 되면서 적기는 [[사회주의]]보다는 [[공산주의]]의 상징으로 굳어져 갔고 [[1871년]] [[파리 코뮌]]은 역사상 최초로 적기를 국기로 채택했다. 또 19세기 말 [[아나키즘]]이 [[좌파]] 세력의 또 다른 한 중심축으로 대두되면서 아나키즘 역시 적기를 그들의 상징으로 사용하곤 했다.[* 대표적인 케이스는 미국 [[시카고]]에서 [[1886년]] 발생한 [[헤이마켓 사건]]이다.][* [[아나키즘]]은 여기에서 [[적기]]와 흑기를 조합하여 흑적기를 사용하며 [[아나키즘]]과 [[사회주의]]사상을 주장한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고 [[볼셰비키]]의 [[소련]]이 1923년에 [[낫과 망치]]가 그려진 적기를 국기로 채택하면서부터 '적기=공산주의'라는 공식은 전세계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됐고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전세계에 수립된 대다수의 공산국가들 역시 적기를 기본 도안으로 자국의 국기를 제정했다. [[중국]]에서는 '''훙치(紅旗)'''라고 지칭한다. 赤, 紅 모두 붉다는 의미가 있지만[[ 표준중국어]]에서는 紅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중국의 국기의 이름은 [[오성홍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