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저거몽손 (문단 편집) == 생애 == 368년에 임송(臨松)에 있었던 [[노수호]](盧水胡)족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저거몽손은 뛰어난 재주를 지녔고 임기응변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당시 저거몽손은 [[후량(오호십육국시대)|후량]]의 초대 군주인 태조 의무제 [[여광(후량)|여광]]의 시기를 받았는데, 술을 마시고 놀면서 여광의 눈을 속였다. 397년, 의무제 여광이 선비 [[걸복부]]의 [[서진(오호십육국시대)|서진]]을 정벌할 때 저거몽손의 백부인 저거나구(沮渠羅仇)와 저거국죽(沮渠麹粥)이 참여했다가 패배했다. 여광은 패전의 책임을 물어 저거나구와 저거국죽을 살해했고, 저거몽손은 여광의 행위를 규탄하며 그로부터 독립했다. 저거몽손은 종형인 저거남성(沮渠男成)과 함께 후량의 건강태수였던 [[단업]](段業)을 추대하니 이것이 북량의 건국이었다. 하지만 단업은 저거몽손의 지략과 용맹을 꺼리며 그를 먼 곳으로 보내려 했고 이 때문에 저거몽손과의 관계에 틈이 생겼다. 결국 저거몽손은 단업을 살해하고 북량의 지배자가 된 후, 영안(永安)이라는 연호를 선포했다. 저거몽손은 선비 [[독발부]]의 [[남량]]과 제휴하여 저족 여씨의 후량을 공격해 멸망시켰고, 411년에는 남량의 고장을 공격했다. 412년에는 고장으로 천도하여 하서왕(河西王)을 자칭했으며, 남량의 [[독발녹단]]을 멸망시킨 서진의 [[걸복치반]]과 대립했다. 421년에는 한족 이씨의 [[서량]]을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저거몽손은 서진과 대립하면서 흉노 [[철불부]]의 [[북하]] 및 선비 [[탁발부]]의 [[북위]]와 제휴하는 한편, 강남의 한족 왕조들인 [[동진]] 및 [[송(육조)|유송]]에 사신을 보내 동진과 유송으로부터 양주자사에 임명되었다. 431년 북위가 서진과 북하를 멸망시키고, 영향력을 증대시키자, 저거몽손은 북위에 인질을 보내고, 양왕에 임명되었다. 저거몽손은 401년부터 433년까지 33년 동안 재위했고 433년에 병사했다. [[북위]]의 제3대 황제였던 세조 [[태무제]] 탁발도는 조문 사절을 보내 저거몽손을 무선왕(武宣王)으로 추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