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문단 편집) === 21세기 === ||<:>[[파일:49290da6-d980-479d-8481-8940631c5e68.jpg|width=100%]]|| || 사진의 장소는 북한이 아니라 '''[[도쿄도|도쿄]]'''다. || 물론 21세기 들어선 북한의 실체가 원체 까발려져서인지 옹호보다는 오히려 앞장서서 비판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사실 독재정권 하에서도 끊임없이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는 사실을 보면, 조총련의 저런 이중잣대는 그냥 '''"[[세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외국인에 맞서 자기 나라를 옹호하는 경우는 정치범수용소와 같은 중대한 인권유린에 대한 지적 같은 게 아니라, 그냥 개고기 문제 같은 말초적인 놀림에 대응하는 경우이거나 논쟁이 분분한 정치적인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한과 같은 명백한 결함[[파탄국가]]에 대한 인지부조화적 옹호에 댈 바는 아니다. 일본 사회에서 [[북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고립시켜서 독자세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으며, 그 결과 [[조선적]] 국적[* 사실상 [[무국적]]]을 유지하는 한편, 독자적 민족학교인 [[조선학교]][* 통칭 '조교'.]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계 민족학교가 단 4곳 뿐이기 때문에 [[공산주의]]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어쩔 수 없이 진학하기도 한다. 하지만,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운영하는 학교가 인가 학교로 운영되는데 비해, 이쪽은 비인가 학교로서 정식 학력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결국 조선학교 출신 학생들은 사회진출을 놓고, 현시창적 이상과 현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북한의 실상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초기에는 많은 수가 진학과 제도권 진입을 포기하면서까지 꿋꿋이 [[조선적]]을 유지했으나, 이제는 북한의 시궁창적인 현실과 오히려 북한보다 잘 살고 민주주의 사회인 한국 사회나 일본 사회에 정식으로 편입하기 위해서 해당 국적을 따는 소위 '이적'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이적을 원하는 자녀와 이를 막으려는 부모세대간의 갈등은 매우 심한 상태[*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인 부모와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자식들이 서로의 가치관과 문화의 차이로 인해 벌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이며, 일단 이적한 경우 이적 의도가 불순하다고 판단되면 '''[[왕따|조총련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을 당하다시피 한다.]]''' 사실 [[반일|일본을 싫어한다]]는 것도 일본 내 조선인 사회에서의 전통적인 의미와 정치적인 의미가 섞인 기묘한 것으로, 실제로는 다른 일본인들과 별 차이 없이 일본의 영화나 음악 등 일본 문화를 즐기고 있다. 때문에 이를 이중잣대가 아닌 문화적인 부분과 정치적인 부분을 철저히 나눠서 생각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사상적으로는 아무리 반일 성향이라고 하나, 그들은 이미 일본 사회에서 몇십 년을 부대끼며 살아왔다. 문화와 정치를 상당부분 유기적으로 보는 한국이나 문화=정치나 다름없는 북한의 시각에서 볼 때는 이는 매우 이해하기 힘든 것이겠지만, 개개인이 파편화 되고 개인주의화가 상당수 진행이 된 서양이나 일본에서는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결국 이들은 정치적 스탠스는 북한을 긍정하지만, 실제 생활은 [[일본인]]과 별 다를바 없다. 이러한 재일동포의 복잡성과 고충이 독립영화 '우리 학교'에도 잘 드러나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새로운 세대들은 어느 정도 융통성을 보이는 한편, 이전 세대처럼 무조건적인 [[북한]] 지지자도 감소하는 추세라고 한다. 그 중에는 "[[대한민국|한국]]과 [[북한|조선]]은 모두 같은 뿌리인데 좀 안 싸우고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식으로 제3자처럼 간격을 두고 접근하려는 신세대도 있다. 신세대의 적지 않은 수가 조총련으로서의 정체성을 과감히 포기하고 있으며 정식으로 일본 혹은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있다. 교포사회 전체가 2~4세까지 물갈이 되는 과정에서 적잖이 일본의 문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먹고 살기 편하다면 뭐 한국이나 일본 국적이 대수인가?"라며 '이적'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아진 상황. 그 결과 해방 직후엔 조선적/총련계 재일교포 숫자가 다수였지만, 현재는 한국 국적자들이 조총련을 제치고 재일교포 세력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한국 국적만 따놓고 '''[[종북주의자|정신적으로는 조총련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고, 실제로 조총련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지만 실상 한국 국적을 택한 시점에서 이미 현실과 타협하고 이질화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다보니 대내적으로는 "우리가 가는 길이 옳은가?"라는 성자성과 회의론도 적잖히 나오고 있으며, 구세대와 신세대간의 사고의 차이도 이미 많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예전 같았으면 발언 자체만으로도 이적이라고 할 법한 "[[김정일]] 위원장도 너무한다! 자꾸 저러면 안 되는데!"라는 불평도 종종 튀어나온다.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 김정일 위원장의 자백사건인데 일본으로부터 사죄배상금 명목으로 100억달러 받아오는데 환장해있던 김정일은 2002년, 북일정상회담 때 조총련이 앞장서서 커버치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 특수기관과 조총련을 동원하여 일본인 14명을 북한이 납치한게 맞다고 일방적으로 인정해버리면서''' 조총련이 멘붕에 빠지게되는 희대의 팀킬을 자행하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납북자]]설은 어디까지나 도시전설의 영역으로 취급하고 있었으며 일본내 진보세력과 조총련은 이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조선인 차별이라고 화를 내고 있었는데 정작 조직 수장인 북한의 김정일이 [[요코다 메구미]]의 증거사진까지 넘겨주면서 조총련의 개입까지 인정해버린터라 이후 일본사회에서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조총련에 대한 여론이 차디차게 싸늘해져버렸다. 이 사건 이후 신세대들은 성장 과정부터 [[일본]]에서 [[민주주의]] 영향과 자본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과거 세대와 달리 상당히 자유분방하며 의사가 확고해졌으며 북한에 대한 이미지와 위상도 시궁창이다 보니 한국 국적으로 이적하는 세대들이다. 이러다보니 구세대들은 어떻게든 조총련이 운영하는 조선학교를 통해 사상적인 교육을 시키려고 들지만, 북한 내부와는 달리 일본은 본인의 진학 선택권도 있고[* 부모가 조선 학교에 강제로 보내려 들자, 대판 싸우고 [[분가]]해 일본의 제도권 학교로 진학한 사례도 흔하다.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웬만한 [[막장 부모]]가 아닐바에야 외국에서 외국 출신으로 강압으로 옥죌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환경상 일본의 법을 적용받는지라 강제적으로 통제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윗동네]]의 막장화도 가속화되다 보니까 북한식 교육을 독특한 문화의 한 부분처럼 받아들일 뿐, 그 자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거나 골수적인 [[주체사상]] 지지자가 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고 한다.[* 이를 이해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쉽게 말하자면, '''[[미션스쿨]]에 다닌다고 다 [[광신도]]가 되는 게 아니지 않는가?''' 이미 이런 분위기는 영화 [[박치기]]에서 학생들이 "야, 미국하고 김일성 장군하고 싸우면 누가 이길까?" 같은 것을 농담 따먹기에 써먹는 분위기가 가감없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것은 실제로 흔히 조선학교에서 이미 일어나는 상황이고, 이런 것이 조선학교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잘 드러내고 있다고 현재의 조선학교 학생들은 이야기 하고 있다. 북한 같았으면 [[국가안전보위부|무시무시한 아저씨들]]한테 끌려가서 [[코렁탕|코로 랭면]] 원샷을 할 것이다.] 조선학교 교내에서는 "일본 학교로 전학 혹은 진학한다."라는 이야기만 나와도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이며 2012년까지는 확실히 그런 분위기가 있었지만 대체적인 분위기가 그랬었다. 이처럼 세대갈등과 문화접변으로 인한 약체화 속에서 '''현재의 조총련은 과거와 같은 독자적 소사회로서의 위상은 고사하고 겨우 소속 교포들의 취업/주택/복지문제에 관련된 [[생활협동조합|생협]]수준으로 크게 몰락했다'''. 50만이 넘던 조직원은 8만명까지 줄어버렸고 그중에서 조선적 유지하는 숫자가 일본 정부 발표로는 고작 3만명이다. 이 때문에 요즘은 1990년대 이전과 같은 사건도 많이 줄어든 대신, 오히려 [[혐한초딩]]들이나 [[재일외국인들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모임|재특회]] 소속의 [[찌질이]] 잉여 인간들이 가끔 조선학교에 몰려가서 깽판을 부리거나, 혹은 조총련 지부에 난입하여 분탕치는 식으로 처지가 뒤바뀌어, 오히려 일본 내의 [[좌파]]들이 이들을 불쌍하다고 안쓰러워하는 복잡한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20세기 내내 일본 내 좌파는 그 특유의 [[국제주의]]적 성격 때문에, [[재일 한국-조선인|재일 조선인]] 차별에 민감했고, 이로 인해 일본의 전후 전쟁범죄 청산과 재일 한국인/조선인 차별 금지운동에 가장 힘을 많이 실어준 집단이 되었다. 요즘에서야 잊혀지기도 했고, 과거의 언론통제로 잘 안 알려진 점이 있지만, 일본 좌파는 일본 내 차별금지부터 한국의 민주화 지원까지 적지 않은 부분에서도 많이 도움을 준 바 있다. 재밌는 것은 당시에는 일본의 극우 인사로 알려진 사람들 중 일부도 당시에는 [[김대중]], [[김영삼]] 등을 지지하며 한국의 민주주의 정착을 도와주거나, 아예 [[일본 정부]]에서 한국 민주화 인사들을 보호하거나 지원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벌어진 [[김대중 납치 사건]] 등이 일본 내에서도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많은 우익들이 반한으로 돌아선 것은 한국이 민주화를 이루고 경제성장을 이룩해 일본의 국익에 따라 휘둘리지 않을 존재가 되자 한국에 견제를 놓으려는 측면이 크다.] 이처럼 특유의 배타성에 따른 대외적 멸시와 대내적 이반 속에서도 어떻게든 근성으로 명맥은 이어오고 있지만, 결국에는 조총련 내부 경제사정이 악화되어, 조총련의 치요다구 본부를 포함한 산하 기관의 부동산들도 압류 [[크리]]를 겪고 있다. 특히 일본에까지 민폐를 끼친 수차례에 걸친 미사일 발사, [[북한의 핵개발]]과 [[연평도 포격전]] 등 [[북한의 대남 도발사]]들을 계기로 일본 내 위기의식이 고조되어 일본 내 모든 지방 관청의 조총련/[[조선학교]] 지원 반대가 한층 힘을 얻고 있다. [[하시모토 도루]]가 지사로 있던 시절 [[오사카부]]의 경우 조선학교 지원 중단을 결정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꿋꿋이 종북을 고수하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당연히 좌우를 막론하고 언론마다 조총련을 까대고 있다. 이 때문에 조총련뿐만 아니라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등 애꿎은 한국 국적자들까지 도매금으로 피해를 보기도 한다. 2022년 5월 28일에 총련이 도쿄 도쿄조선문회회관에서 제25회 전체대회를 열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211204?sid=104|#]] [[김정은]]이 축전을 보냈다. 2023년 4월 15일 태양절 행사에는 겨우 200명이 모여, 과거 2,000명까지 모였던 것과 비교하면 조총련의 쇠락세가 확실해보인다. 도쿄 조총련 본부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수십 명이지만, 급여는 지급되지 않아 부업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재일동포들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던 과거와 달리 현재 조총련 본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북한에 열렬한 충성심을 보여주는 사람들 뿐이며 이들마저도 북송문제나 북한과의 교역문제등으로 어쩔 수 없이 지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재일동포들의 지지를 잃고 역할과 기능이 축소되어 조총련 관계자들도 조직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https://www.rfa.org/korean/in_focus/human_rights_defector/nk_nuclear_talks-05242023160333.html|#]][* 앞서 언급했듯 대부분의 재일교포들이 조선적을 포기하고 한국, 일본 국적중 양자택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과거에는 그래도 국적만 택해놓고 실질적으로는 조총련쪽에서 활동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이런 인원들마저도 거의 없어진 상황.]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