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혜옥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전주성심여자고등학교]] 재학 중인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여자 대표팀의 단체전 우승의 주역으로 맹활약하면서 스타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여자 복식을 우승하면서 일약 새롭게 떠오르는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가장 어린 나이인 만 17세에 거둔 성과이기 때문에 더욱 주목받은 것이다. 아시안 게임 이후, 여자 복식 결승전 상대였던 [[길영아]]와 호흡을 맞춰 세계 배드민턴의 여자 복식을 평정하기 시작했다. 1995년 세계선수권 우승과 가장 권위있는 대회 중 하나인 전영오픈 우승으로 일약 강호로 부상한 것. 이 때 나이도 고작 만 18세에 불과하다. 작은 체구지만, 파워풀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노련한 길영아와 짝을 이뤄 세계적인 조합으로 성장한 그녀의 유일한 걸림돌은 바로 부상. 그러나 늑골 부상으로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직전까지 치료를 받아야 했고, 부상에서 회복되어 올림픽에는 정상적으로 출전했다. 여자 복식에서 승승장구하며 결승까지 올랐지만, 정작 결승전을 앞두고 부담감에 짓눌려 경기 전 날 잠을 자지 못하면서, 컨디션 난조로 결승전에서 0-2, 두 세트 통틀어서 겨우 10점 밖에 못 뽑은 대패를 당하며 무너졌다. 그래도 남들은 따기 어렵다는 올림픽 은메달을 만 19세에 땄기 때문에 기량을 더 쌓고, 노련미가 더 해지면 세계 무대를 제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길영아]]의 은퇴 이후, 여러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다가 최종적으로 여자 복식은 [[라경민]], 혼합 복식은 [[유용성]]과 짝을 이루면서 세계 무대에 다시 나가는가 싶었는데, 기어이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1997년에 발목에 중상을 입으면서 공백기를 가졌고, 공백기가 끝나고 컴백한 1998년에는 [[라경민]]과 짝을 이뤄 스웨덴 오픈 우승, 전영오픈 준우승을 일궜지만,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골반이 어긋나는 중상을 입으며 결국 국가대표에서 빠지게 되었고, 그 뒤로 국가대표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래도 실업 무대에서는 선수로 뛰었지만, 국가대표까지 뛰기에는 부상이 너무 심했다. 부상만 아니었다면, 좀 더 길게 전성기를 가졌을 것이 확실한 선수였기 때문에 많은 아쉬움을 주는 선수이기도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