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헌명숙황후 (문단 편집) === 양왕과의 만남 === 공미는 수도에서 은을 제련하는 일을 하면서 이런 저런 친구도 많이 사귀었는데 그 중에는 양왕의 하인인 장기라는 사람이 있었다. 양왕 조항은 당시 송태종으로부터 상당히 총애를 받는 왕자였다.[* 셋째였지만 [[조원좌|첫째형]]은 폐서인되고, [[조원희(송)|둘째형]]은 요절하는 바람에 왕위계승이 제일 유력하기도 했다.] 아무튼 이 조항은 상당히 풍류와 여색을 즐겼는데 하루는 [[익주]] 출신 여인들이 아름답다는 말에 조항이 하인인 장기를 시켜 수소문해서 데려오라고 시켰다. 때마침 공미와 유아가 익주에서 왔다는 것을 안 장기는 공미에게 유아를 양왕에게 바치고 출세해 볼 마음이 없냐고 넌지시 설득했다. 공미는 그 제안에 갈등했는데, 때마침 유아가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해 공미를 설득했고 결국 공미는 장기를 통해 유아를 조항에게 추천했다.[* 뒷날 유아는 황후가 된 이후에 전 남편 공미의 자손들을 배려했다.] 조항은 유아를 마음에 들어했으나 유아에게 너무 빠진 나머지 건강이 나빠지자 조항의 유모인 진국부인이 이를 알고 [[태종(송)|송태종]] 조광의에게 알렸고 조광의는 격노해 유아를 양왕부에서 내쫓게 했다. 결국 양왕은 유아를 장기의 집에 머물게 하고 수시로 밀회를 무려 15년간이나 즐겼다. 그 후 송태종은 아들에게 반미의 딸([[장회황후]])[* 스물두 살의 나이로 요절], 곽수문의 딸([[장목황후]]) 등을 아내로 맞게 했지만 조항은 15년간 변함없이 유아를 총애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