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하구 (문단 편집) == 생애 == 1918년 [[평안북도]] [[의주군]] 광성면 마전동(現 [[신의주시]] 마전동)에서 아버지 장승언(張承彦)과 어머니 송신언 사이의 3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신의주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 [[지린성|간도성]](間島省) [[용정시|연길현]](延吉縣)[* 現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용정시]].]으로 건너가 용정실천여학교(龍井實踐女學校) 교유(敎諭), 은진중학(恩眞中學) 교무주임 등을 [[http://db.history.go.kr/id/im_109_00297|역임했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해 [[도쿄제국대학]] [[대학예과|예과]]를 [[http://db.history.go.kr/id/im_109_00297|수료하고]] [[조치대학]] 본과에 입학했으나, 재학 중 [[태평양 전쟁]]의 발발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에 선과생(選科生)으로 입학한 뒤 본과로 편입하여 다니다가 1944년 [[학도병]] 기피를 이유로 체포되어 1년간 옥고를 치렀고, 곧 [[8.15 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 동생이 [[소련군]]의 핍박으로 옥고를 치른 뒤 온 가족이 함께 월남했고, 1946년 경성제국대학에서 이름이 바뀐 [[경성대학]]을 1회로 졸업했다.[* 경성대학은 1회 졸업생 배출 후 곧 폐교되고 [[서울대학교]]로 통합된다.] 이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 전임강사, 예과 교수를 거쳐 1949년 [[경신고등학교(서울)|경신중학교]] 교무주임을 역임했고,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에 부임해 교무과장을 겸임하였다. 당시 독일어 교과서를 출판하였는데 이 수입으로 부인의 병원을 개원하였다. 부인 원금순은 [[고려대학교/학부#s-2.7|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고려대 의대의 전신으로, 수도의과대학과 우석대 의대를 거쳐 현재는 고려대학교 재단에 인수되었다.] 출신으로 산부인과 의사로 활동했다. 1955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로 유학을 떠났으나 어머니의 사망과 교과서 출판업자의 과열경쟁으로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학업을 중단하고 이후 동생 장하린과 함께 종로2가의 [[종로서적(1907년 기업)|종로서적]]을 인수해 경영했다. 1980년대 초 동생에게 사장 자리를 넘기고 회장직에 올랐고 [[한신대학교]] 이사장을 역임했다. 2017년 11월 23일 향년 9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