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채근 (문단 편집) == 선수 시절 평가 == [[포수 리드]]와 볼배합 측면에서는 당대 1위라 할 수 있고 먼저 주전을 맡고 있던 선배 [[김무종]]에게 우위를 점한 것은 아니었으며, 수비도 [[블로킹]] 능력 (+ [[트래쉬 토크]]) [* [[한국시리즈]]에서 홈으로 쇄도한 주자를 잡으며 구수한 사투리 억양으로 '''"아따 아그야, 니가 살았을 것 같냐?"'''고 약 올리기도 했다.]을 제외하면 동 시대의 경쟁자들보다 월등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팀 포수들이 갖기 어려운 강점 2가지가 있었으니, 첫째, '''체격'''. 워낙 체구가 큰 덕분에 장채근이 포수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으면 백스톱이 꽉 찬 듯한 인상이 들어 투수들이 마음놓고(던질 수 있었다고 한다. '''"어디로 던져도 들어간다."'''는 느낌을 주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둘째, '''소통'''. 투수가 최대한 편하게 던질 수 있도록 '''다독이는데 능하였고''', 마운드에서 흔들리는 투수를 특유의 걸직한 입담으로 긴장을 풀어주곤 했다. 이렇게 하면 투수 개개인의 특성을 살리는데 매우 유용할 뿐만 아니라, 벤치 및 일상에서의 팀 단합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는 홍익대 야구부 감독시절에도 잘 드러나는데, 4학년 포수가 1학년 투수한테 성질 내고 욕하면, 오히려 포수를 혼냈다고 한다. 타격의 경우, 정확도는 평균 내지 그 이하였다. 통산 .228의 타율과 순출루율은 비교적 높았지만 3할 초반인 출루율은 당시 포수들의 타격능력을 보아도 확실한 우위의 성적이라고 하기엔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413의 통산 장타율로 이를 만회하였다. 포수로는 그 유명한 이만수 이후에 시즌 20홈런을 2번이상 기록한 두 번째 사례다. 통산 성적으로 봤을 때 그의 공격력은 그리 높게 평가할 순 없지만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88년부터 1992년까지의 5시즌 동안은 wRC+ 115로 리그 중상위권의 타자였고 포수로 범위를 좁히면 장채근 보다 더 나은 타격을 보여준 선수는 [[이만수]]와 [[김동기(야구)|김동기]] 뿐이다.[* 1990년엔 장염 증세로, 당시 신인이었던 [[정회열]]이 주전 역할을 하긴 했다.] 단일 시즌 성적을 보면 가장 좋은 타격을 보였던 1992년엔 wRC+ 143을 기록하며 상위권의 생산력을 보였고 리그 열손가락에 드는 성적을 기록했다. 더불어 규정타석을 채운 포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한 것이기도 하다. 인상적인 거구, 한 번씩 날려주는 일발 장타력, 어떤 투수와도 호흡을 맞출 수 있게 하는 푸근함. 이런 독특한 개성으로 타이거즈 전성기의 한축을 담당했기에 [[해태 타이거즈]]의 꼬꼬마 팬들이었던 지금의 30대 ~ 40대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다만 일부 타이거즈 팬들이 그를 과대평가하는 주장을 펼쳐 논쟁거리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만수와 김동수 사이에 장채근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주장인데, 장채근 전성기 88~92년에 이만수는 계속 포수 보고 있었고[* 이만수는 1992년까지 주전포수였다. 노쇠화로 인해 이만수 - 김성현 - 박선일이 플래툰으로 출전하게 되는 1993년부터 주전포수에서 물러났고 백업포수, 지명타자, 1루수, 대타요원 등으로 골고루 나오게 된다.] 91년까진 매해 규정타석을 채우면서 여전히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타격을 했기에 동기간 [[장채근]]이 확실하게 우위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으므로 계보에 끼기엔 어려움이 있다. 소속팀의 성적에서는 차이가 크지만 당대 [[이만수]]보다는 한수 아래라고 평가되던 [[김동기(야구)|김동기]]와 더불어 2위권으로 평가 받는게 적절하다.[* 어디까지나 전성기 5년 기준이다. 통산으로 따지면 데뷔시즌부터 꾸준했던 김동기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wRC+는 20, WAR은 2배 이상 김동기가 앞선다.] 그럼에도 해태 왕조의 대표 포수라는 타이틀이 있기에 섭섭한 평가는 아닐 듯하다.[* 장채근은 짧은 전성기, 통산 성적 등으로 인해 유명세에 비해 선수로서의 순수 평가는 높지 못하다. 다만 80~90년대를 주름잡았던 해태의 포수들(김무종-장채근-정회열-최해식)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성적, 유명세를 보여주었고, 해태의 최전성기와 후기 전성기를 이어주는 위치를 고려한다면, 해태 왕조를 대표하는 포수로 첫손에 뽑힌다. 김무종과 함께 투톱이지만, 한명을 뽑는다면 장채근을 뽑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