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쭤린/생애 (문단 편집) === [[러일전쟁]] === 그야말로 [[녹림]] 생활을 하다가 신민부라는 국가 기관에 들어온 장쭤린은 생소한 생활 환경에서도, 그의 가장 큰 장기인 처세술을 발휘하며 금세 자리를 잡게 됐다. 그는 지부 쩡윈이 이 기관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알게 모르게 뇌물을 찔러주는 한편, 항상 예의를 차리면서도 무엇을 시키면 군말없이 수행했고 복종했다. 또한 상인들을 잘 다루는 편이었고 실무에 밝았으며 부하 관리에도 재능을 보였다. 이에 쩡윈은 그를 믿음직한 참모로 여겼다. 또한 신민부 순경국장 왕펑팅(王奉廷, 왕봉정)을 교묘하게 따돌려, 신민부의 군사 실권을 장악하는 수완을 발휘한다. 이렇게 조직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하던 그에게 러일전쟁이라는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청 정부는 [[랴오허|요하]] 서쪽을 중립 지구로, 동쪽을 전쟁 지구로 선포했지만 전쟁이 벌어진 마당에 그런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러시아 군대나 일본 군대나 포악하기는 서로 쌍벽을 이루었고, 치안이 불안해지자 잠잠하던 마적떼도 다시 벌떼 같이 일어나 또 다시 혼란에 빠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장쭤린은 치안 유지에 노력하기보다는, 과연 무엇이 자신에게 유리할까 고민했다. 그가 보기에 러시아군이 꽤 유리해 보였기에, 그는 러시아군에 접촉해서 무기를 타내고 돈까지 얻어내고는 러시아군을 위해 공권력을 함부로 사용해 자기 휘하의 부대를 동원했다. 하지만 전쟁은 일본 쪽으로 판세가 기울었다. 장쭤린은 삽시간에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처형당할 뻔하기까지 하지만, 여기서 또 다시 기지를 발휘해 이번에는 일본 쪽에 붙어 그쪽의 지원을 받고 싸우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흘러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나게 되자, 이쪽 저쪽으로부터 조금씩 지원을 받은 장쭤린의 부대는 3개 부대가 더 늘어났다. 그러는 사이에 출세까지 해서 신임 성경 장군 자오얼쉰(趙爾巽, 조이손)은 장쭤린에게 3개 부대를 5개 부대로 편성토록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