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징후이 (문단 편집) === 2대 만주국 총리대신 === 그러던 중 1935년, 정샤오쉬 총리가 퇴진하자 [[관동군]]으로부터 신임 총리대신에 지명되었다. 당시 푸이는 민정부대신 짱스이를 지지하고 있었고, 정샤오쉬는 자신의 후임으로 젠다오 성장 [[차이윈성]]을 지지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장징후이가 임명된 것이었다. 이를 두고 국무원 비서처장 가미오 가즈하루는 "일본어도 모르고, 한적도 읽을 줄 모르며 국정에 대해 발언할 것 같지도 않다는 것은 관동군이 높이 샀던 것이리라."라고 평가했다. 이후 일본군에게 무조건 좋다고 아부하여 '하오하오 선생'이라고 불렸다. 1935년 총리대신에 취임한 이후 10년간 총리대신에 재직했지 이름 뿐인 총리이지 정무를 보지 않았다. 10년간 장징후이의 비서를 지낸 마쓰모토 마스오의 회고에 따르면, 총리 집무실안에서 정좌하고 경전 베끼기에 빠져 정치가가 아니라 고승을 보는 듯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누군가 인사를 해도 반응도 없었으며 싫다, 좋다는 감정도 얼굴에 전혀 띄우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국무원 회의에서도 단 한번도 반대 의견을 고집한 적이 없었다. 덕분에 장징후이 재직 기간 동안 만주국 조직법상 황제를 보필하며 모든 권력을 쥐고 있다는 국무원은 완전히 무력화되어 총무청이 만주국 국정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다. 장징후이는 자신은 허수아비가 되고 총무청 장관이 모든 것을 장악한 현실에도 "좋아, 이걸로 하지."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일본의 허수아비 노릇을 계속하였다. 1936년 도문회담을 개최하여 조선 총독 [[미나미 지로]]와 회담하였다. 1937년부터 독이일 삼국방공동맹을 지지하였으며 1937년 조선을 방문하였다. 이때 '만선일가'의 구호를 외치며 조선과의 정치 경제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때 조선의 지식인들은 만주에서의 조선인 차별을 중지해달라는 탄원을 장징후이에게 제출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