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지량 (문단 편집) == 논란 == 말년에 [[국방일보]]에 회고를 연재했고 2006년에는 회고록인 <빨간 마후라 하늘에 등불을 켜고> 를 출판[* [[http://m.khan.co.kr/view.html?art_id=200607071808441|장지량 前총장 회고록 발간]]]했으나 여러 사실관계의 오류와 공적 가로채기, 그리고 자기 미화들로 논란을 빚었다. 먼저 [[해인사]] 폭격과 관련하여 장지량 장군은 회고록에서 자신이 해인사 폭격을 막은 것 처럼 서술하였으나, 이는 자신의 상관이었던 [[김영환(군인)|김영환]] 장군의 공적을 가로챈 것이었다. 이는 이후 공군본부 차원의 검증 과정에서 다른 공군 창군 원로들의 증언을 통해 사실관계가 드러났다.[* 해인사 공습을 지시받은 김영환 장군(당시 대령)은 공비는 금방 사라질 것이라며 처벌을 각오하고 명령을 거부해서 [[팔만대장경]]을 지켜냈다. 그런데 장지량 장군(당시 중령)은 자신이 미국을 설득해서 폭격을 막아낸 것이라고 회고록에서 주장했고 문화재청에서도 이게 사실이라고 속아넘어간 것. 장지량 장군이 이를 주장한 것이 2001년이었는데 김영환 장군은 1954년에 항공기 사고로 순직했고 그 형인 [[김정렬(1917)|김정렬]] 장군도 1992년에 지병으로 사망하여 직접 반박할 수 없었다. 결국 미국에 살던 김정렬의 장녀가 뒤늦게 이를 알아차리고 바로 잡았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3699474#home|‘해인사 팔만대장경’ 살려낸 김영환 장군, 지하에서 통곡]]][* 해인사 공습과 관련해 장지량 장군의 자서전의 오류들이 논란을 일으키자 공군은 '역사자료 발굴위원회'를 구성해 사실관계 검증에 나섰으며, 다른 공군 창군 원로들인 [[김두만]], 윤응렬 장군 등의 증언을 통해 오류들을 바로잡았다. 이와 관련해 윤응렬 장군이 작성한 [[https://www.archives.go.kr/next/search/showDetailPopup.do?rc_code=1310377&rc_rfile_no=200902603019&rc_ritem_no=000000000001#viewer | 장지량 장군 회고록의 고찰과 소견]], 공군 역사자료 발굴위원회의 종합보고서, 그리고 김두만 전 공군참모총장의 회고록 <항공 징비록>을 참조할 것. [[https://blog.naver.com/isomis/100085617311|윤응렬 장군이 장지량 장군에게 보내는 편지]]] 또한 장지량 장군이 [[빨간 마후라#s-2|빨간 마후라]]를 고안했다는 서술도 있었으나 이 또한 장지량 장군의 회고록이 빚은 오류로 잘못된 서술이다. 장지량 장군은 빨간 마후라를 회고록에서 본인이 고안한 것 처럼 증언하였으나 [[김두만]], 윤응렬 장군 등 다른 공군 창군 원로들은 공군 역사자료발굴위원회에서 이를 부정한 바 있다. [* 김영환 장군과 함께 복무한 공군 원로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영환 장군이 빨간 마후라를 하고 다녔던것은 1차대전 당시 독일의 에이스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을 동경하여 붉은색의 머플러를 두르고 다닌것이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김영환 장군은 짧은 챙모와 가죽부츠를 신고다니는등 [[루프트바페]]의 비행사처럼 꾸미고 다녔다고 한다. ]공군에서는 [[김영환(군인)|김영환]] 장군이 빨간 마후라를 고안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동 시대에 같이 근무한 창군 멤버 이강화 장군의 회고록을 참조하면 빨간 마후라에 대한 아이디어 제기 및 지시는 김영환 장군이 한 것 같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긴 것은 장지량 장군인 것 같다. 두 사람이 단장-부단장으로 근무했을 때의 일화이기 때문.] [[F-4 팬텀 II|F-4]] 도입과 관련해 미국이 [[F-104]]를 한국에 판매하려 하였고 [[박정희]] 대통령도 마음이 기울었으나 자신이 맥도널 더글러스 사에 방문, F-4를 직접 탑승한 후 그 우수성을 알아보고 F-4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성사시켰다고 회고록에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 또한 교차검증이 되지 않으며 다른 정황들과 일치하지 않는 등 신뢰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F-4 팬텀 II#s-7.2|F-4]] 문서 참조. 그 밖에 F-102가 록히드사의 물건이라고 언급한다거나[* F-102는 컨베이어사의 물건이다. 아마 [[F-104]]와 헷갈린듯 하다.] 영국과 이스라엘의 [[F-4 팬텀 II|F-4]] 도입 시기를 실제보다 빠르게 이야기 하는 등 사실관계의 오류들도 여럿 발견된다. 한마디로 장지량 장군의 회고록은 [[대한민국 공군|대한민국 공군]]의 창군 원로가 공군의 초창기 역사를 서술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교차검증]]을 통해 확인된 여러 오류들로 인해 확인되지 않은 다른 내용들까지도 신뢰하기 어렵게 된 경우로 볼 수 있다. 장지량 장군은 김영환 장군 등 다른 공군 창군 원로들과 대한민국 공군을 세운 동료들이자 [[6.25 전쟁|한국전쟁]]에 참전한 전우로 막역한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말년에 회고록으로 이러한 논란을 일으킨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장지량 장군의 회고록이 빚은 논란들을 정리한 기사: [[https://leekihwan.khan.kr/entry/%EB%B9%A8%EA%B0%84-%EB%A7%88%ED%9B%84%EB%9D%BC-%ED%95%B4%EC%9D%B8%EC%82%AC-%ED%8F%AD%EA%B2%A9%EC%9D%84-%EA%B1%B0%EB%B6%80%ED%95%98%EB%8B%A4 |'빨간 마후라' 해인사 폭격을 거부하다]]] [[분류:1924년 출생]][[분류:2015년 사망]][[분류:흥덕 장씨]][[분류:나주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공군참모총장]][[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군인 출신 정치인]][[분류:제10대 국회의원]][[분류:유신정우회 국회의원]][[분류:광주제일고등학교 출신]][[분류:육군사관학교 출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