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의황후 (문단 편집) == 사후 추존 == 인종이 태어난 뒤, 장헌명숙황후 유씨가 주변에 입단속을 철저하게 했기 때문에, 인종은 즉위하고 줄곧 자신의 친어머니가 신비 이씨가 아닌 장헌명숙황후 유씨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1032년에 이씨가 세상을 떠나자, 장헌명숙황후 유씨는 인종의 출생의 비밀이 누설될 것이 두려워, 이씨의 장례를 궁인의 예로 치르고자 하였다. 그러자 승상(丞相) 여이간(呂夷簡)이 예를 갖추어 장례를 거행하야 한다고 주장하여, 유씨는 여이간의 주청에 따라 이씨의 시신에 황후의 옷을 입히고 수은으로 봉하여 장례를 성대하게 치러준다. 1033년 장헌명숙황후가 세상을 떠나고 인종이 친정을 시작했는데, 인종의 숙부인 연왕 [[조원엄]]이 인종을 찾아와, 인종의 생모가 장헌명숙황후 유씨가 아닌 진종의 후궁 이씨였고, 이씨가 비명에 갔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종은 숙부의 말에 충격을 받아 한동안 정사를 보지 못하였고, 진상을 확인하고자 이씨의 관을 열었는데, 이씨의 시신은 황후의 옷이 입혀졌고 수은으로 온전히 보전되어 있었다. 인종은 장헌명숙황후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 유씨의 대우를 더욱 두텁게 하도록 하였다. 더불어 생모인 이씨를 인종의 친모 자격으로 장의황후(章懿皇后)로 추존하고 경령궁(景靈宮)에 신어전(神御殿)을 세워, 광효전(廣孝殿)으로 명명하였다. 그리고 황후의 아우인 이용화를 창신군(彰信軍) 절도사, 검교시중(檢校侍中)으로 임명하고, 이용화의 집안을 후하게 대우하였으며, 인종의 장녀인 복강공주를 이용화의 아들인 이위(李瑋)에게 시집보내기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