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연 (문단 편집) === [[군웅할거]] 이전 === [[황건적의 난]]이 일어날 무렵 후한의 혼란을 틈타 마을의 [[건달]]들을 모아 자그마한 [[도적]]단을 결성해 산지와 호숫가를 근거지로 활동했는데,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무렵에는 2만 명의 부하를 거느린 군벌로 세력이 커져 있었다. 용맹하고 몸놀림이 엄청나게 재빨랐기 때문에 군중에서는 저연을 일컬어 비연(飛燕), 혹은 후에 바꾼 성씨를 붙여 장비연(張飛燕)으로 불렸다. [[장우각]]과 연합해 그를 추대했지만 관군과의 싸움에서 장우각이 화살에 맞아 부상을 입고 사망하자 우두머리가 되어 성을 장씨로 바꿨으며, 장연이 두목이 된 후로 흑산적의 세력이 급속도로 성장해 기주의 상산군, 조군(趙郡), 중산(中山)군, 병주 상당(上黨)군, 사례주 하내(河內)군 등 산맥을 중심으로 기주의 북쪽에서부터 병주를 가로질러 사예주 북부에까지에 이르는 광대한 세력을 형성한다. 인근의 다른 도적떼들과도 연합하고 촘촘히 조직을 형성해 모두 장연을 맹주로 받들었고 그 군세는 무려 100만(!)에 이르러 황하 이북의 모든 군현에서 [[흑산적]]의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고 한다. 후한 조정은 흑산적을 진압할 방법이 없었으나 장연 또한 조정에 귀순 의사를 밝혔으므로 조정은 장연에게 평난중랑장의 벼슬을 내렸고 관리를 천거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 사실상 흑산의 세력권 내에서 장연의 자치를 승인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벼슬을 받은 이후에도 한차례 [[뤄양|낙양]]으로 진군하다가 하내에서 [[주준]]에게 격퇴당했다는 기록도 보이지만 그 이후로는 병주에서 비교적 조용히 지낸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