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승업 (문단 편집) == 개요 == [[조선]] 후기의 [[화가]]로 [[1843년]]에 태어났다. 호는 오원(吾園)이다. 오원이라는 호의 유래 중 하나는 추사 [[김정희]]가 지어주었다는 설과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처럼 절세 화가의 호에서 착안해 '나도 원(園)이다.'라는 의미에서 나 오(吾)자에 동산 원(園)을 붙였다는 설이 있다.[* [[씨네21]]에 만화를 연재하는 작가 [[정훈이]]가 그린 취화선에서는 닷냥이라는 호를 가진 화가로 [[패러디]]되었다. 작중의 캐릭터 닷냥은 스스로 장승업과 [[라이벌]]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에 따라 [[안견]], 김홍도 등과 함께 '조선의 3대 화가'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고미술 [[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천차만별인데 왜냐하면 김홍도를 제외한 나머지 두 자리에 꼽는 인물은 연구자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두 자리에 자리할 인물로는 신윤복, [[김득신]], [[심사정]], [[정선(화가)|정선]], [[두성령|이암]] 등의 화가들이 거론된다. 조선의 3대 화가라는 명칭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조선의 유명한 화가들'로 통칭하자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도 있다. 장승업의 그림은 단순한 필치로 그려졌지만 필력에 속도감이 있고 대담하다는 평이 있다. 장승업은 [[중국]] [[청나라]] 후기의 필체를 그림에 도입하여 [[한국]]식 회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하지만 장승업이 선택한 그림의 소재들은 [[진경 산수화]]를 선보인 정선이나 [[풍속화]]를 그린 김홍도, 신윤복 등과는 달리 전통 도석 [[인물화]]를 고집하여 고루하다는 평가다. 때문에 정선이나 김홍도의 뒤를 이었다면 시대상을 반영한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는 고미술 사학자들이 많다. 이 말인즉슨 한반도 강산을 그린 그림이 없다는 뜻이다. 정선 이후 한가닥한다는 화가들은 모두 [[금강산]]을 그려 남겼는데 장승업은 금강산은 물론이고 한반도 명승지와 관련된 그림은 한 점도 없다.[* 애초에 구구절절 시나 읊고 책을 가까이 하는 고고한 [[양반]] 신분 따위가 아니었다. 때문에 자신이 그리는 중국 고사 인물과 명승지를 칭찬해 마지 않는 양반 계층에 대해 역으로 [[풍자]]해 빈정거림으로 중국 도상만 그린다거나 자신 역시 신분의 한계로 인해 도피하는 마음으로 개인적 [[판타지]] 충족을 위해 중국적 도상을 주로 그려냈다는 설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