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쉐량 (문단 편집) === 엇갈리는 평가 ===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인물. [[중국공산당]] 측의 평가는 대단히 우호적인데 반해 중화민국 계열이나 한국 역덕 커뮤니티에서의 평가는 매국노, 저능아 수준의 악평을 받는다. 거진 [[원균]]이나 [[무타구치 렌야]]에 비견될 정도의 [[트롤러]]로 비판을 받는다. 특히 [[시안 사건]]으로 중국 내에서 그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린다. [[중화인민공화국]] 측에서는 시안 사건을 '구국의 결단'으로 평가하여 그를 제2차 국공 합작을 이루어내 항일 전쟁에 공헌한 애국자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사실 장쉐량이 시안 사건을 일으킨 이유가 뭐든간에 시안 사건이 아니었다면 [[중국공산당]]이 소멸되었을지도 모르니 어찌 보면 [[당연지사]]였다.[* 다만 국내 역사 커뮤니티에서는 이 같은 공산당 측의 해석이 역사왜곡에 가까운 것이라는 비판도 많다. 아무리 장쉐량의 시안 사건 같은 행적이 공산당에 도움이 됐다 한들 만주사변에서의 역적스러운 행동까지 정당화시키지는 못하며 인생 전반을 되돌아 볼때 이기적인 군벌로서의 행보만 보일 뿐 딱히 애국자의 모습을 보인 적이 전혀 없다.] 반면 [[중화민국]]과 [[중국국민당]]에서는 그야말로 [[역적]] 취급. 공산당과 일본제국의 프락치라 취급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행적 덕분에 '''한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훗날 장제스는 '''"8년간 들인 공(공산당 토벌 작전)이 불과 2주일 만에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라고 치를 떨었다. 또한 장쉐량은 행적 외에도 인격과 역량, 인간상의 측면에서도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린다. 장쉐량은 특유의 귀공자스러운 곱상한 외모로 인해 공산당 측의 다큐멘터리나 드라마 같은 매체에선 한없이 영웅으로 미화되고 있다. 반듯하고 올바른 청년 혁명가 그 자체로, 거의 정의의 용사 급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반면 비판 측에서 장쉐량을 평가할 땐 외모와 정반대로 인격이 비열하고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악평이 많이 나온다. 한 마디로 [[호부견자]]라는 것이다. 호탕한 성격을 가졌으며 허허벌판이었던 동북지방을 공업화시키고 중국 최대급의 세력을 일궈낸 아버지 [[장쭤린]]의 그릇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평가다. 장쉐량은 전형적인 후진국 독재자스러운 면모, 비유하자면 [[김정일]], [[김정은]]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파티를 신나게 벌이다가 수틀리면 부하를 잔인하게 사살하거나 아편, 사치와 향락에 몰두하는 모습이 많았다. 후술되겠지만 장쉐량은 특유의 기이한 행보를 많이 보였다. 대표적으로 만주사변에서의 대응이나 시안 사건에서의 괴이한 행적을 예로 들 수 있으며 일각에선 방탕한 사생활 및 아편 중독 때문에 머리가 망가져 대국을 그르친 것은 아닌가 하고 추측을 할 정도다. 장쉐량 본인은 육성 회고록에서 '군인으로서는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으나, 이 일에 대해서는 양심에 있어서 떳떳하다. 1936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주저 않고 다시 시안 사건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하여 이 사건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육성 회고록은 장쉐량이 아직 연금 상태였던 1990년대 초에 녹음된 것이며 본인이 컬럼비아 대학에 기증했다. 양안 관계로 인해 이 자료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 회고록에서 장쉐량은 장제스가 중국을 통일할 인물이라고 생각했기에 풀어 주었으며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http://blog.daum.net/yangsooan/8490097|#]] 마오쩌둥의 잔인한 행보를 되돌아보면 만주를 다시 수복하고 일본군을 쫒아내면서 대륙을 통일했어도 머지않아 장쉐량도 숙청했을 확률이 높았다. 따라서 공산당 측의 국공합작 및 장쉐량 포섭 제안엔 진심이 전혀 담겨있지 않았으며 장쉐량을 자기 입맛대로 속이고 이용해먹기 위한 쪽이라는 데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공산당이 당면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장쉐량을 배후에서 조종하여 항일을 핑계로 공산당 토벌을 중단시킨 것. 또한 공산당과 마찬가지로 장쉐량 역시 항일에 그닥 관심 없는 이기적인 군벌로서 굳이 공산당과 싸우며 손해를 보기 싫은 등의 이해관계가 매우 일치했다. 장쉐량은 입으로는 항일과 동족 간 화합을 내세우며 애국자 행세를 했지만, 실상 그는 제대로 된 항일은 커녕 발목만 잡았으며 일관되게 자기 영지인 만주 수복에만 관심을 보여왔다. 그런 장쉐량은 공산당의 낚시질에 너무나도 잘 낚여들었다. 물론 공산혁명이 목적인 공산당의 입장에서야 이 일련의 행보는 매우 합리적이다. 항일을 내세워 국공합작 낚시질로 토벌을 피하고, 그 와중에 항일전쟁은 나몰라라하며 세력만 키운 것이 국민당에겐 손해겠지만 공산당에겐 결정적 승리의 기반이 된 것. 그러나 장쉐량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국민당과 장제스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세계관에서 살아갔으며 국민당 소속의 군벌일 뿐 딱히 공산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런 장쉐량이 공산당의 사탕발림에 속아넘어간 끝에 마리오네트가 되어 공산당 좋은 짓만 다 한 것은 장쉐량의 현실인식능력이 매우 처참하고 유아적이라는 방증이다. 결국 장쉐량은 저우언라이가 빨간펜 첨삭지도 해준 대로 시안 사건이라는 전무후무한 깽판을 쳤고, 공산당은 어마어마한 이득을 보았으며, 중화민국은 중일전쟁에 빨려들어가 일본에 끝없이 박살나며 수습 불가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