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손무기 (문단 편집) == 생애 == 그의 조상은 [[북위]]의 황족으로 [[태종(당)|이세민]]이 그의 여동생과 결혼해서 이세민과 친해졌으며, 재주와 책략을 가졌고 [[당고조]] 휘하에서 위북행군 전첨이 되었다. 이세민의 정벌을 도왔고 개국공신이 되어 제국공 등의 작위를 받았다. 626년에는 비부낭중으로 있으면서 [[방현령]], [[두여회]]와 함께 이세민에게 이건성, 이원길을 죽일 것을 모의해 이세민이 황제를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이세민이 황제에 오르자 좌서자, 이부상서 등을 역임했고 조국공의 작위로 옮겼다. 장손무기는 이세민이 황제가 되기 전부터 사귄데다가 외척이라 다른 신하들보다 대우가 좋았으며, 여동생인 [[문덕황후 장손씨]]가 [[전한]] 시대의 몰락한 외척인 여씨, 곽씨, 상관씨를 거론하면서 장손무기가 국정을 잡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나 이세민은 듣지 않고 장손무기를 채용했다. 이후 우복야가 되었다가 628년에 어떤 사람이 장손무기에 대한 권력과 총애가 지나치게 왕성하다는 표문을 올리자 두려움을 품고 스스로 파직하기를 요청했으며, 파직되면서 개부의동삼사에 임명되었다. 633년에는 사공에 임명되었고 이후 조주자사에 임명되었지만 봉국에 가기를 원하지 않는 표문을 올려 조주에 가지 않게 되었으며, 642년에는 사도가 되었다. 643년에는 [[능연각훈신]], 태자태사가 되었고 당태종이 [[고종(당)|이치]]가 어질지만 나약한 것으로 의심해 [[이각(오왕)|이각]]을 태자로 삼으려고 하자 이를 중지시키도록 이야기했으며[* 장손무기가 이치의 외삼촌이어서 그런 것이다. 이세민의 가장 뛰어난 아들이 이각이었지만''' 자신의 조카가 아니기에 막은 것.''' 결과는 자업자득. ], 645년에는 섭시중이 되어 [[고구려]] 원정에 종군했다. 647년에는 양주도독에 임명되었지만 그 일을 관장하지 않았고 648년에는 검교중서령, 지상서문하상사가 되었으며, 649년에 태위, 동중서문하삼품으로 있다가 당태종이 죽고 당고종이 즉위하자 문하이성사를 겸임했고 지상서성사를 사양했다. 651년에는 영휘령을 올리면서 당고종이 조서를 통해 천하에 반포되었고 658년에는 현경례를 상주해 당고종이 조서를 내려 이를 시행하게 했다. 장손무기는 [[측천무후]]로부터 자신을 돕지 않는 일로 원망을 받았는데, 659년에 측천무후가 [[허경종]]을 시켜 장손무기가 위계방과 반란을 일으키기로 모의했다고 모함했다. 이로 인해 태위와 봉읍을 빼앗기고 양주도독이 되어 검주로 연금되었다가 목을 매고 자살했다.[* 향후 황제가 되어 무씨 성을 쓰는 주나라를 건국한 측천무후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기에 이씨 성을 쓰는 당의 사직을 위한 충신으로 표현하는 매체들이 적지 않지만 본인의 조카를 옹립하고자 다른 부인 소생의 황자 오왕 각을 참살하는데 앞장선 행적을 생각해보면 본인의 조카인 고종의 호의에 모든게 달린 운명을 본인 자신이 선택했다고 보는게 더 타당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