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성호 (문단 편집) == 여담 == * [[야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했지만, 고등학교 1~2학년 때 잠시 야구를 그만두고 오토바이[* 야구라에서 본인 항목을 읽으며 수정을 요청했다. 자기는 혼자 오토바이를 탔고, 폭주족은 집단으로 다니는게 특징이니 자신은 폭주족은 아니었다고 밝혔다.]를 타고 놀았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갑자기 야구도 공부도 하기 싫어져서라고... 그 과정에서 [[술]]도 어느 정도 했다. 그러나 고3 때 복귀한 이후 주장을 맡으면서 금방 팀 내 주전을 꿰차고, 프로에 2차 1순위 지명을 받았다. 방황을 끝내고 복귀한 이후 첫 경기에서 바로 홈런 2개를 때려내기도 했다.[*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한 장성호의 [[충암고등학교 야구부|충암고]] 2년 선배 [[신윤호(1975)|신윤호]]는 "1학년 때 들어와 있어야 되는데 안 들어오고 나 졸업하니까 그 때 야구하고 있어~ 어이가 없어가지고 참.."이라고 그때를 회상했다.] 그 당시 상대투수는 [[휘문고등학교 야구부|휘문고]]의 [[김선우(1977)|김선우]].[* 김선우가 그야말로 고교를 평정하던 시절이다.] 참고로 이 시기에 [[박명환]]이 주목받던 [[충암고등학교 야구부|충암고]]의 간판타자이긴 했지만, 그다지 주목받진 못했다. 박명환과 함께 충암고의 [[1995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김성근]]은 주목했다고 하지만... * 프로에 와서도 놀기 좋아하는 성향이 남아 있었지만, '''선배들이 무서워서 야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기야 [[해태 타이거즈|해태]]가 워낙 군기가 세기로 유명했으며, 장성호가 입단했을 당시의 해태의 군기반장은 남의 가족을 모두 살해하고 자살한 [[이호성]]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매우 부지런한 선수가 되어 연습때 가장 일찍 나온다고 한다. 이 때문에 본인과 주변 사람들은 "해태에 지명되지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13284440011998008&search=%C0%E5%BC%BA%C8%A3%20%C7%D8%C5%C2|않았다면]] 야구를 그만뒀을지도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02994200089688008&search=%C0%E5%C3%A4%B1%D9|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 위에서 서술했듯이, [[김성한]]을 코치로 만나 타격에 눈을 뜰 수 있었다. 역시 놀기 좋아했던 [[이호준]]과 함께 [[짬뽕]] 1그릇 시켜먹고 훈련했다고 한다. 이호준은 훗날 술회하길 본인은 맞아야 정신차리는 타입이었으며, 역시 김성한 코치에게 공을 돌리고 있다. 아직도 이호준과 장성호는 김성한을 어려워하며, 이호준은 장성호를 단순한 후배가 아닌 동반자로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도 20대는 장성호, 30대는 이호준이라 불릴 정도로 장성호가 어릴때 잘 나갔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 [[전설의 타이거즈]]에 김성한과 함께 출연한 [[최해식]]도 이호준과 장성호는 김성한 감독의 작품임을 말했다. 여담으로 김성한은 현역 시절부터 짬뽕을 좋아해서 [[송유석]]과 [[이건열]]에게 짬뽕 한 그릇 사준 뒤 배팅볼을 던지게 했고 은퇴 후 중국집을 개업했다.[* 광주 [[상무지구]]에 하이난을 오픈했으나 매각하고 현재는 [[나주혁신도시]]에서 더 하이난을 운영중이다.] * 컨택이 매우 뛰어난 중장거리 타자였지만, 수비와 주루플레이는 그리 좋지 않았다. 누상에서 본헤드 플레이를 심심찮게 한 탓에 [[해태 타이거즈]] 시절 [[김응용]]에게 '''또라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어떻게 보면 [[박한이|KBO 정신병자]]의 원조인 셈. 1997년에는 대전 한화전에서 1루에 멍때리고 서 있다가 1점을 헌납해서 지는 바람에 [[김응용]] 감독이 패배에 빡쳐서 '''[[https://www.inews24.com/view/243342|"넌 버스 탈 자격도 없어. 숙소까지 뛰어와!"]]'''라고 했던 적도 있었다.[* 기사에 의하면 김응용 감독은 기자에게 "장성호가 소질은 있는데 노력을 해야 말이지. 성격도 얼마나 느긋한지." 라는 인터뷰를 했으며, 김 감독은 장성호를 야구선수로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했으며, 그래서 조금은 비정한 충격 요법을 썼다고 했다. 이게 처음은 아닌게 과거에도 선수단 전체에게 시전하기도 했다.][* 내용에 의하면 버스가 떠난 후 장성호는 흙 묻은 유니폼을 입은 채로 훈련 가방을 어깨에 훌쩍 둘러 메곤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대전 시내를 관통해 [[대전복합터미널|고속버스 터미널]] 근처의 숙소까지 1시간 가량 뛰었으며, 가는 도중 대전 시민들의 숱한 눈총을 받기도 했으나 때론 비아냥도, 우스개 농담도 귓전을 때렸지만 앞만 보고 달렸으며, 숙소에 도착했을 때 김응용 감독이 현관 앞에 서 있었는데, 김 감독은 땀과 흙이 범벅이 된 채 뛰어오는 장성호를 발견하곤 획 돌아서 숙소로 들어갔다.] 다른 일화로는 장성호가 원바운드 타구를 놓치자 김응용 감독이 야구공 박스를 가져오라고 시키더니 경기를 보면서 공을 뒤로 던지면 그걸 글러브로 받아내는 일을 시켰다고 한다. * 똘끼가 있는 성격이라 [[정성훈|정성병자]]의 [[해태 타이거즈|해태]]/[[KIA 타이거즈|KIA]]시절 또라이짓의 스승이자 영혼의 콤비였다. 요새도 그 성격은 변하지 않아 한번은 직관을 온 한화 팬에게 그 팬이 응원하는 선수가 올해 결혼할 거라는 '''낚시'''를 하기도 했다. 저 특유의 성격에 칼같이 짜여진 해태의 문화가 더해져 장성호는 유난히 해태 내에서도 일화가 많은 선수다. 신인타자가 [[김응용]] 감독 앞에서 우동을 떡하니 시켜놓고 먹는다든가 하는 짓거리를 하도 많이 해서 코칭스태프가 질겁을 하면서도 저놈은 크게 될 놈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단다. 입담이 좋다는 평가 역시 이런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 화법에 기인한다. 대표적으로 [[1996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등록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라면을 먹고 다음날 배탈이 나서(...) 트레이너실에 누워 있다가 [[김응용]] 감독이 그 모습 보고 '저 자식 왜 누워 있어? 당장 집에 보내'라고 해서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진짜로 그대로 집에 가]] 시즌을 마무리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실은 2021년 4월 24일 [[광주 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의 시즌 2번째 맞대결에서 [[권성욱]] 캐스터와 호흡을 맞추면서 [[김응용]] 前 감독이 타이거즈 레전드 데이 기념 시구자로 초청받았을 때 [[1996년 한국시리즈]] 시절 김 前 감독과의 추억 회상 장면이 나오면서 직접 밝혔다. 그리고 유튜브에서도 다시한번 저 썰을 풀었는데 감독님이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나보다 생각했다고.[[https://youtu.be/qfzv4h-xunY?t=353|#]][[https://sports.news.naver.com/kbaseball/vod/index?category=kbo&tab=&listType=game&date=20210424&gameId=20210424SSHT02021&teamCode=&playerId=&keyword=&id=794876&page=2|##]]] * 경기 중에 '''[[김재호|매우 잘 웃는다.]]''' 심지어 공에 맞거나, 삼진을 당하거나, 병살을 치거나, 실책을 해도 웃는다…. 본인 말로는 천성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는데다 그렇게 한번 웃고 스트레스를 떨쳐버린다고 하는데, 팬들의 반응은 '[[오재원|식빵]] 굽는 것보단 낫다.'와 [[정현욱(1977)|'야! 웃음이 나오냐?']]의 두 가지로 갈린다. * [[파일:attachment/JSH_mortar.gif]] * 전설의 절구질짤. 머리쪽으로 날아오는 [[한기주]]의 위협구를 [[이대호]]가 그대로 노려본 뒤 만루홈런을 때린, 이대호를 상징하는 장면이 등장한 그 경기다. 장성호 역시 만루에 섰고 총알같은 타구를 쳤는데 수비수에게 날로 걸리면서 더블플레이로 무산되고 난 후 덕아웃에서 분풀이를 한 장면. 무기력한 꼴찌팀의 주장의 분노에 타이거즈 팬들의 자존심을 저격한 장면이자, 역대급 부진을 겪던 이종범의 뒤를 이어 장성호가 모든 야구팬들이 인정하는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대관식을 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 장면을 '마늘 빻을 땐 장성호'라는 파일명으로 희화화하기도 했다.] 장성호가 불성실하다, 진지하지 못하다 같은 평가가 저 순간 이후 일순간에 모든 야구 커뮤니티에서 사라졌다. * [[LG 트윈스]]([[MBC 청룡]]) 어린이회원 출신이라고 중계방송 중 밝힌 적이 있다. * 의외로 선수들에게 리더십이나 인성을 인정받는 선수. 기아 선수들이 직접 뽑은 주장이기도 했고 선수협 회장 선거에서도 [[손민한]] 다음으로 다득표하기도 했다. 롯데로 이적한 후 가진 각종 인터뷰를 보면 은근히 [[개그맨]] 소질이 다분한 것 같다. 입을 놀린 사례가 많아 팬들이 차기 해설로 주목하는 몇몇 후보 중 하나. * 1977년생 동갑이자 국악인 [[남상일]][* 부인 이원아(1985년생의 7세 연하 미모의 금융인)과 결혼했음]과 얼굴이 닮았다. *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장성출'''이라는 [[별명]]도 있다. 2017년 11월 방영된 KBS N "합의판정" 이호준 편에서 설명하기를, 당구 선수 중에 장성출이라는 이름을 가진 왼손잡이 선수가 있는데, 그 선수만큼 당구를 잘 쳐서 붙었다고.. 해태 시절부터 절친하게 지낸 형인 [[이호준]]이 성출이라고 잘 부른다. 실제로 인터넷상에서 tjdcnfdl라는 단어를 아이디에 사용하고 있다.(현재는 탈퇴상태). 야구선수들의 당구대회에서 준결승까지 진출했는데 [[조성환(1976)|조성환]]에게 패배했고, 결승전에서는 이호준이 조성환을 꺾고 우승했다고 한다. * 2004년 경 [[네이버]] 지식인에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0&dirId=10010205&docId=46077110&qb=7J6l7ISx7Zi46rCAIOuNlCDsnpjtlbTsmpQg7J2067OR6rec&enc=utf8§ion=kin&rank=38&search_sort=0&spq=0|이병규가 잘해요 장성호가 잘해요라는 질문에 엄청난 장문으로 자신이 더 잘한다고 답변을 올렸던 게]] 발굴되어, 많은 사람들을 빵터지게 했다. [* 실제로는 네이버 지식인 아이디와 실제 장성호가 사용한 아이디가 일치했던 것 뿐으로, 저 글을 실제 장성호가 썼다는 증거는 없다. 확인사살이라고 떠돌았던 건 장성호가 저 tjdcnfdl가 (인터넷상에서 쓰는) 자신의 아이디가 맞다고 한 것 뿐으로, 실제 네이버에 들어가서 저 글을 썼다고 인정한 게 아니다.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mbsIdx=619145&cpage=1&mbsW=&select=&opt=&keyword=|링크]] 나중엔 [[요시 그란도 시즌]] 마냥 좋은게 좋은거란 식으로 되버린 듯 하지만.] * 태어난 시기라던가 프로야구 선수라는 직업을 가졌던 것 치고는 적극적으로 인터넷 문화를 즐기기도 했으며 [[싸이월드]] 초창기 미니홈피에 질문을 남기면 직접 답도 해주곤 했었다. 또한 프로야구 [[스타크래프트]] 대회에도 [[https://youtu.be/tb8Sbl46YFE|참가]]한 적이 있고, [[MBC GAME]]도 알고 있는 빼도박도 못하는 스덕이다. 2013년 12월에 개최된 야구선수 당구대회 룰이 [[더블 엘리미네이션]]이었는데 그 룰을 박재홍에게 설명하면서 MBC 게임을 언급했다. 이후 해설자 신분으로 [[2020 도쿄올림픽]] 야구 경기 중계 때도 이 더블 엘리미네이션 제도를 잘 알고 있어 시청자들에게 매끄럽게 설명하기도 했다. * [[등번호]]가 1번[* 야구를 시작할 때 감독님이 추천한 번호라고 한다. 마침 1번이 비어있었고.]인데, 해태-KIA에서도 첫해(10번)를 제외하면 항상 1번을 달았고, 팀을 옮길 때에도 1번을 유지했다. 한화로 이적 후[* 원래는 안영명이 달았던 31번을 그대로 달았다.]에 1번을 달던 윤경영에게 양보받으며 상품권 30만원을 선물로 주었고, 롯데로 이적후에 1번을 쓰던 [[이우민]]에게는 [[미즈노(브랜드)|미즈노]] 방망이 5자루를 줬고[* [[스톡킹]]에서 이우민이 밝힌 뒷 이야기로는, 김경언에게서 장성호가 롯데로 이적하니 1번 양보하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야 성호형 롯데 온단다 1번 주라이~~], kt로 이적후에 1번을 달던 [[고영표]]에게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신발을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참고로 장성호에게 등번호를 양보한 선수들은 다음해에 모두 몰락했다. 윤경영은 이듬해 방출, 이승화는 꾸준히 못했고, 고영표는 방어율 5.79를 기록하며 [[kt wiz/2군|익산 위즈]]와 [[kt wiz]]를 오갔다. 그러나 고영표는 2017년부터 kt의 에이스로 자리잡았다. * 몇몇 팬들은 이름이 비슷한 장성호 - [[장성우]] - [[정상호]]를 자주 헷갈려 한다. * 1999시즌 데뷔 첫 20홈런(24개)을 친 후 홀수해마다 20홈런 이상을 기록했다.[* 2001년 23홈런, 2003년 21홈런 / 2002년과 2004년은 절묘하게 20개에 1개 모자른 19개씩 쳤다.] [youtube(KmefNPnNHaU)] * [[고척 스카이돔]]에서 같은 [[KBS N SPORTS]] 해설위원 [[송진우(야구)|송진우]]와 투타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장성호의 패배. * 통산 안타수 '''5위'''임에도 골든글러브 수상 경력이 한 번도 없다. 이유는 [[이승엽]]처럼 동포지션에 다른 거물급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성호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2001~2003년 동안 이승엽은 매년 '''[[넘사벽|시즌 MVP]].''' 1루수 포지션이라면 지명타자로도 활로가 있긴 했으나, 막상 장성호 본인이 1루수로 너무 성실히 출장하는 바람에 그런 일은 없었다. 이승엽의 일본 진출 이후에도 호성적을 냈으나 양준혁의 1루 전향(04), 이대호(06, 07), 김태균(05, 08)의 활약으로 타지 못했고 08년 이후에는 [[최희섭]]에게 밀려 1루 주전자리에서 멀어지면서 골글과도 멀어졌다. * 2019년 3월 26일 자신이 [[이용규]]에게 트레이드를 요구하도록 부추겼다는 일부 소문에 페이스북을 통해 강력히 불쾌감을 드려내면서 부인했다. 장성호 위원과 이용규는 KIA에 오랫동안 함께 활약하였고, FA나 트레이드로 이적한 팀이 한화였다 보니 이런 오해를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한화에서는 같은 시기에 활동한 적이 없다. [[https://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09&aid=0003976483|기사]] * [[컴투스프로야구2021]](2021.3.24 업데이트~)부터 [[컴투스 프로야구 시리즈]] 해설위원 역을 맡게 되었다. * 가족들을 광주에 내려보내고 따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자녀 교육 때문이라고. 짬내서 가족들 보러 내려가고 있다고 하며, 이후 방송에서 싸인 관련 질문을 한 팬에게 장성호 본인이 직접 자신의 싸인을 받으려면 광덕고 근처로 오라고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광덕고등학교]] 근처에 살고 있다고 공개했다. * 타이거즈에서 오래 뛴 탓인지 타이거즈 이외 구단에 대해서는 다소 비판적인데 특히 [[한화 이글스]] 디스를 자주 강하게 하는 편이다. * 2001년 초 롯데 [[마해영]]과 트레이드 얘기가 오고 간 적이 있었다. 당시 선수협 파동으로 찍힌 마해영을 롯데가 트레이드 카드로 내놓자 해태에서는 [[김창희(야구)|김창희]]를 제시했으나 롯데에서 장성호 아니면 안한다고 해서 트레이드 논의가 엎어졌다.[* 알다시피 [[마해영]]은 [[김주찬]], [[이계성]]과 트레이드되어 [[삼성 라이온즈]]로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마해영은 FA가 되어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어봤고, 장성호 역시 말년에 잠시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어보고 뛰었다. * 2022년 9월 1일 KIA - 삼성 경기에서 해설을 했는데, 그 날 [[나지완]]이 은퇴 발표를 했다. 경기 중에 이를 이야기했는데, 나지완의 한국시리즈 끝내기 홈런을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지완이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중에서 최다 홈런'을 기록했다는 언급을 했다. 바로 그 다음 말로 '저랑 홈런 갯수가 같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참고로 타이거즈 데뷔 선수 출신 중 최다 홈런은 [[이호준]]이다. 337홈런을 기록했다.] * [[스탯티즈]]를 찾아보면 알겠지만 WRC+ 기준으로 2022년 4월 현재 기준 장성호는 31위, 이호준은 42위에 랭크되어 있다. 우르크가 10 가까이 차이난다. 물론 홈런을 원하면 이호준 팬이겠지만.. 그만큼 김응용의 혜안이 보인다. *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수상에 가장 아쉽게 실패했다. 순위는 41위였고, 40위 [[타이론 우즈|우즈]]와 총 점수 차 0.32점 차이.[* 이 때문인지 [[이광용의 옐로우카드]] 시즌3 200회에서 특별히 자체적으로 [[https://youtu.be/wVntdIiHIHA|시상식을 진행]]했다.] * [[KBS]] [[이광용]] 아나운서하고는 [[충암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 [[2002 부산 아시안 게임|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본인은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야구|금메달]], 유도선수 [[장성호(유도)|장성호]]는 은메달을 따면서 동명이인이 세계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감격를 누렸다. * 웃을때 호탕하게 웃는 스타일이라서 호탕한 웃음의 대명사이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