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사성 (문단 편집) === 원에 투항과 최후 === 1357년 원의 양완자에게 패배하고 주원장에 의해 장흥(長興), 강음(江陰)을 빼앗기는 등 상황이 점점 나빠지자 장사성은 원에 투항해 [[태위]]에 봉해진다. 이듬해 장사성은 양완자와 달식첩목이의 관계를 이용해 달식첩목이와 연합하여 양완자를 공격했다. 양완자는 자진하였고 결국 장사성은 항저우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또다시 왕이 되고 싶은 욕심이 생긴 장사성은 원에 왕위를 요구했지만 조정에서 반응이 없자 원나라를 배신하여 1363년 자신을 오왕(吳王)이라 칭하고 군벌 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또 다른 군웅 세력인 [[진우량]]은 장사성에게 자신과 연합하여 주원장에게 맞설 것을 제안했다. 장사성은 진우량의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오량(명나라)|오량]]에게 막히는 바람에 [[파양호 전투]]에 참전하지 못했다. 1366년 주원장은 진우량 세력을 복속시킨 뒤 장사성 세력에 대해 맹공을 퍼부었다. 장사성의 군대는 전투마다 패배를 거듭하였고 결국 마지막 거점인 평강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평강을 포위한 주원장은 장사성에게 항복을 권유했지만 장사성은 마지막까지 항복하지 않고 싸우다가 평강이 함락된 후 포로로 잡혔다. 그 후 장사성은 1367년 47세의 나이로 처형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