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르문학 (문단 편집) === 장르문학은 순수문학보다 수준이 떨어지는가? === >평범한 탐정 소설의 수준은 평범한 순문학 소설과 아마 비슷하겠지만 독자들은 평범한 순문학 소설을 읽을 일이 없다. 그런 작품은 애초에 출간이 되질 않기 때문이다. 평범한-혹은 그보다 조금 나은-탐정 소설은 출간이 된다. 출간될 뿐만 아니라 적은 양이나마 대여용 도서관에 판매가 되어 독자들 손으로 들어간다. 개중에 너그러운 사람들은 무언가 신선해 보이고 표지에 시체 그림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 달러라는 정가를 다 주고 구매하기도 한다. >---- >심플 아트 오브 머더, 1950년, [[레이먼드 챈들러]][* 최내현 옮김, 북스피어]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질적 차이에 대한 논란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이러한 뿌리 깊은 논란이 생기는 데에는 역설적이게도 순수문학과 장르문학 간의 역사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바가 있다. 우리가 읽는 상당수의 순수문학은 오랜 세월을 통해 수많은 평범한 순수문학 소설들이 잊혀지는 속에서 살아남아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읽혀지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명작들이다.[* 비슷한 예로, 소위 클래식이라 불리는 고전음악도 '살리에르가 작곡한 곡'과 같이 평범한 수준의 음악이 잊히며 살아남은 것들이다.] 반면 장르문학은 그 수가 적고, 대부분의 작품들은 가까운 과거(대개 20세기 이후)에 출판되었으며 따라서 순수문학에 비해 그 가치를 검증할 과정과 시간이 부족하다. 비틀즈의 음악이 팝 음악으로서는 2020년대 기준 60년이 넘는 오랜 시간동안 계속 사랑받았지만 '고전'의 반열에 올랐는지는, 그리고 오를지는 알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법]]적으로 올바른 문장을 구사하는가, 오문과 악문이 없는가, [[맞춤법]]을 준수하는가 등의 기준을 적용시켜 문장력의 우위성을 근거로 장르문학보다 순수문학의 질이 높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렇게 순수문학의 질적 우위를 주장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영미권]] 장르문학의 사례를 근거로 한 반론도 제기된다. [[중세 영어]]를 전문적인 수준으로 연구해가며 써낸 [[반지의 제왕]], [[얼음과 불의 노래]] 등을 보면 장르문학이 꼭 순수문학보다 문장의 질이 떨어진다고는 할 수 없으며, 일명 '[[크툴루 신화]]'라고 불리는 H. P. 러브크래프트의 괴기소설들은 현대 영어에 통달한 수준의 문장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인식 자체는 '''딱히 현대 한국 문학의 인식도 아니다'''. 현대 영문학계의 중시조이자 클래식으로 칭송받는 [[찰스 디킨스]]는 당시 왕립 문학원을 비롯한 엘리트 문학인들에게 지나치게 대중적이고 감정적이라면서 배척받았기 때문이다.] 문장력의 우열이 아닌 작품의 내용 그 자체의 우열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더욱 복잡해진다. 문장의 질이 훌륭하더라도 이를 통해서 묘사하는 내용까지 반드시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고, 따라서 [[작가]]의 문장력이 작품의 종합적인 질과는 직결된다고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장르문학의 경우 문장의 질을 놓고 보면 어지간한 순수문학에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수준을 이룩했으나 정작 그 뛰어난 문장력을 통해 그려내는 내용은 [[불쏘시개]] 수준인 작품들이 매우 많다. 또한 순수문학 역시 수려하고 기품 있는 뛰어난 문장을 구사하지만 그 내용을 파고 들어가면 [[스노비즘]]이나 [[반지성주의]] 등의 요소가 발견되는 등 역시 불쏘시개에 가까운 그런 작품들도 의외로 적다고는 할 수 없으며 그 때문에 [[고전]]으로 분류되는 명작들조차도 후대의 [[독자]]들이나 [[평론가]]들이 제기하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 한 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에 국한하면, 순수문학 작가 대다수는 해당 업계의 전문가들이 마련한 나름의 심사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인기가 없어서 책 한 권 못 팔아먹은 작가라도 최소한 기본기는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장르문학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당장 국내의 몇몇 [[라이트 노벨]]은 악문, 오문에다 무수한 [[오타]]들이 난무하며, [[웹소설]]에 이르러서는 [[가독성]] 증진을 명분으로 하여 아예 대놓고 한국어의 문법/어법을 무시하는 사례가 많을 뿐더러 [[카카오페이지]]로 대표되는 여러 웹소설 플랫폼들 역시 모바일 환경에만 최적화된 뷰어를 통해 이를 부추기고 있다. 순수문학은 문장 구사력과 기본기를 예술성 추구의 중요한 기준으로 보지만, 장르문학은 [[상업성]]을 중시하다 보니 이런 면을 깡그리 무시하기도 한다. 애초에 '''"완성도가 높은 글을 쓰는가?"'''와 '''"그 글이 어떤 식으로든 상업성이 있는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완성도적 측면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 장르문학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바뀐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출판사]]에서는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에서 정식으로 순수문학을 배운 장르문학 지망생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은 대부분 '''순수문학만 읽고 써 왔기 때문에''' 잘 팔리는 장르문학을 쓰는 방법을 전혀 모른다는 이유. 문장은 뛰어나지만 장르문학으로서 좋은 작품은 쓰지 못하는 지망생들이 태반이라고 한다. 장르문학의 열악한 편집, 데스크 시스템이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좋은 작품을 걸러내고 교정을 하며 작가를 이끌어야 할 출판사가 제 역할을 전혀 못한다는 뜻이다. 서구권의 주류 출판사는 순수문학, 장르문학을 막론하고 막강한 데스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고위 편집자들은 상상도 못할 높은 연봉을 받으며 작품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해당 업무에 대한 [[내공]]도 엄청난 수준이기에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이 엄격한 기준선을 넘어야 출간된다. 예시로 80년대 미국 문학의 중요한 작가인 [[레이먼드 카버|카버]]의 작품 일부는 편집자가 거의 새로 쓰다시피 했다는 증거가 있다. 또 [[스티븐 킹|킹]]은 "창작은 [[인간]]의 영역이고 편집은 [[신]]의 영역"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곧이곧대로 들을 필요는 없지만, 그만큼 편집자의 위상이 높다는 증거는 된다. 물론 이런 시스템의 폐해로 [[해리 포터 시리즈]] 같은 초히트 작품이 몇 번이나 빠꾸 먹었다는 일화들도 많다. 이 때문에 서구권에서는 이야기 구성이나 캐릭터의 설득력은 떨어져도 최소한 문장력이나 외형은 멀쩡한 작품들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주류 출판사가 아니면 대한민국이나 서구권이나 열악할 수밖에 없고, [[현실은 시궁창]]인 그런 [[불쏘시개]]도 많다. 다만 서구권은 튼실한 시장이 있으며 이것이 '일정 수준을 유지하게끔' 하는 최소한의 거름망은 된다. 한국 장르문학의 질적 문제가 거듭 제기되는 데에는 시장 규모라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일본]] [[라이트 노벨]]도 문장 측면에서는 [[한국]]의 유사한 장르(웹소설 등)와 대동소이하다. 다만 어지간하면 출판되거나 웹소설로 데뷔하기 쉽고 특히 웹소설 시대가 열린 이후부터는 종이책을 통한 출판을 고려할 필요성이 줄어들어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웹소설 플랫폼의 뷰어에만 맞춰서 쓰면 되기 때문에 한국어의 문법/어법을 고려한 원문을 작성하라는 요구 역시 받지 않게 된 한국과는 달리, 여전히 종이책을 통한 출판을 고려하여 어느 정도 일본어의 문법/어법을 고려한 원문을 작성해야 한다는 출판사의 요구에 맞춰야 하기에 상대적으로 데뷔가 어려운 편이고 그마저도 나름 걸러져서 수입되는 데다가 제2의 창작이라고 불리는 [[번역]]을 거치니 좀 나아보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작품이 눈뜨고 봐주기 어려운 수준의 문장을 당당하게 쓰고 있다. 수입 초기에는 나름 일본에서도 인정받는 작품을 들여와서 이런 문제는 적었으나 수입하는 작품이 늘어난 지금은 그렇지 않다. 또한 문장이 뛰어난 작품이라 하더라도 작가가 구사하는 수준 높은 문장력이 작품의 종합적인 질과는 직결되지 않는 케이스도 적지 않기에 그런 의미에서도 한국과 상황이 그다지 크게 다르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상황까지 몰린 이유는 다르지만, 과거 출판되었던 외국 명작도 [[번역]] 문제가 컸다. 오래된 판본 중에는 [[중역]]과 [[오역]], 문학에 재능이 없는 번역자의 단순 번역 등이 넘쳐나서 원작의 유려한 문체나 표현력의 티끌조차 느낄 수 없는 작품도 많다. 많은 출판사들이 시대가 지날수록 새로운 번역 판본이나 완역본 등을 내는 이유이며, 요즘에 구판본을 찾아 읽으면 자기도 모르게 '''"이딴 똥글을 명작이라면서 빨았다니, 내가 제정신이었나?"'''라고 느끼게 된다. 오타 문제를 제외하면 심지어 [[양판소]] 중에서 그나마 문장력이 좀 있다고 할만한 몇몇 작품보다 오문이 많은 등 읽기에 매끄럽지 못한 경우도 있다. 절대 양판소를 넘어선 그냥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지를 말하는게 아니다. '''그 양판소 중에서 말이다.''' 그때 그 시절의 번역 상태가 얼마나 시궁창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이 대비가 된다는 관점은 한국 내에서의 장르문학의 발달과정을 생각하면 어폐가 크다. 대부분의 "장르" 문학의 시초는 해외의 기법을 오늘날 순문학 소설가라고 분류될 만한 사람들이 [[번안]] 등의 형태로 들여왔으며, 역사소설이나 무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단적으로 한국 [[SF]]의 경우 지속적인 연재할 [[잡지]]를 찾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고, [[문학과 지성사]]라는 순문학계를 통해 [[복거일]]과 [[듀나]]라는 주요 작가들이 등단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장르문학에 대한 비평이 이뤄지는 공간도 의외로 주류문학계에서 (비록 큰 비중은 아닐지라도) 주도되고 있다. 수준이 높지 않고 가치가 없는 소설이라는 인식도 뿌리가 깊다. 반면 [[코난 도일]], [[애거서 크리스티]], [[움베르토 에코]], [[J. R. R. 톨킨]]과 같은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수준 높은 대중 작품을 쓴 작가들도 있으며, [[로저 젤라즈니]]나 [[스타니스와프 렘]]처럼 문제 의식의 다변화와 탈장르화를 시도한 작가들도 있다. 여기서도 "탈장르화"를 추구한 소설들까지 장르문학의 범주로 볼 수 있냐는 문제가 발생한다. [[라이트 노벨]] 문서의 설명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라이트 노벨은 점차 무장르(제로장르)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소설을 "라이트 노벨" 장르로, 또 넓게는 "장르문학"으로 분류가 가능한지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니 저러니 해도 대중에게 보다 쉽게 어필하는 유형은 순수문학이 아닌 대중문학이며, [[소설]]이라는 포맷 자체가 영상매체나 스마트 기기 등 다른 매체에 밀려 대중문화의 첨단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게 된 [[21세기]]에 들어서는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장르문학과 같은 과거의 대립 구조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