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료 (문단 편집) == [[삼국지연의]] == 장료의 인물상은 고고하고 지혜로우며 의리를 아는 무인. [[관우]]와 친우 관계로 나오는게 특징이다. 연의에서는 [[정원(삼국지)|정원]], [[하진]], [[동탁]] 휘하에 있을 때의 행적이 전부 생략되었고 처음부터 [[여포]] 휘하 [[팔건장]]의 일원으로 등장한다. [[유비]]가 조조군을 기다리며 소패성에서 농성할 때, 장료가 쳐들어오자 [[관우]]가 설득해서 돌려보낸 일이 있었는데 이에 [[장비]]가 쫓아가서 치려고 하자 관우는 '저 자는 우리를 두려워해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도의 때문에 돌아가는 거다. 저 자의 무력은 우리와 동급이다.'라고 만류한다. [[여포]]가 패배한 후 [[조조]]에게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자 그깟 죽음이 뭐가 두렵냐고 여포를 꾸짖으면서 백문루에서 조조를 욕하다가[* 여포에 대한 충성심 혹은 조조에 대한 적개심보다는, 앞서 3명이 처형당한 상황에서 자신도 죽으리라 생각하여 여포처럼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사형에 처해질 뻔한 것을 유비와 관우가 변호하여 조조가 살려주고 예우하자 거기에 감복하여 조조군에 등용된다. [[유비]]가 서주에서 패배했을 때 죽음을 불사하고 항전할 각오를 보이던 관우를 찾아가 지금 죽으면 안되는 세 가지 이유를 대며[* [[도원결의]]를 통해 한 날 한 시에 같이 죽기로 맹세했으니 이를 어기는 것이 첫째, 주군의 처를 데리고 있는데 죽으면 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음이 둘째, 대의를 위해 일어났다면서 여기서 죽으면 개죽음이지 않겠느냐가 셋째다.] 투항하도록 설득했다.[* 이에 관우 역시 세가지 조건으로 투항하는데 1) 자신은 조조가 아닌 한나라 조정에 투항하는 것, 2) 감부인과 미부인의 안전을 보장할 것, 그리고 3) 유비의 행방을 알면 떠나겠다는 것을 요구했다. 먼저 첫번째야 자기가 한나라 조정의 실세이니 무리 없이 받아들였고, 두번째도 본인도 굳이 유비의 처를 해치는 식의 간악무도한 짓을 벌일 생각까지 없었으니 흔쾌히 동의했다. 다만 아무리 그런 조조라도 세번째 조건은 좀 마음에 걸렸는지 장료에게 '첫번째와 두번째는 그렇다 쳐도 세번째는 좀 그렇지 않냐. 만약 정말로 관우가 훌렁 떠나버리면 나만 죽 쒀서 개주는 꼴이 아닌가.'라며 투덜댔지만, 장료가 관우를 데리고 있는 동안 잘 대우해주면 진심으로 전향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간언하자 결국에는 역시 수용했다. 판본에 따라선 세번째 조건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애초에 관우에게 홀딱 빠져 있던(...) 조조였는지라 장료의 대답에 그 말이 맞다고 인정하며 바로 받아준 것으로도 나온다.] [[문추]]가 장료와 [[서황]]을 피해 도망치던 도중 화살을 쏘았는데 장료의 말이 문추의 화살에 맞아 낙마, 그대로 문추에게 죽을 뻔했으나 서황이 구조하여 살아남았다. 그 다음 서황도 문추에게 패배하였으나 [[관우]]가 [[문추]]를 죽였다. 관우가 조조에게서 떠나고 관우의 오관육참 도중, 관우와 싸우려는 [[하후돈]]을 말렸다. 정사에서 1차 합비 전투에는 참전하지 않았는데 연의에서는 이 전투의 진정한 공신인 [[장제(조위 태위)|장제]]를 빼버리고 장료, [[악진]], [[이전(삼국지)|이전]]이 활약하는 전투로 바뀌었다. 게다가 정사에서는 이미 [[풍토병]]으로 병사하고 없는 [[태사자]]의 계책을 역이용해 태사자를 전사시키는 지능적인 면모까지 부각시켰다.[* 태사자는 정사에서 그냥 [[풍토병]]으로 병사했는데 더 활약할 무대를 만들어 주었으니 태사자의 폄하까지는 아니다. 그런데 아니라고 하기도 뭐한게 장료의 계책에 완전 놀아난 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2차 합비 전투에선 이전과 악진을 지휘하는 중후한 지휘관으로 나온다. 원래는 이전이 먼저 사적인 감정을 억누르고 화합했는데 연의에선 장료가 화합을 주장한다. 물론 장료가 행한건 명령이 아닌 권유이므로 대의를 위해 사사로운 감정을 접은 이전의 결심도 폄하되지 않도록 묘사된 명장면중 하나이다. 조조 사후 조비의 오나라 정벌 때 종군하였지만, 조비의 위기를 구하려다 [[정봉#s-1|정봉]](丁奉)이 쏜 화살을 맞고 싸움이 끝난 후 상처가 깊어져 224년, 사망한다.[* 정사에서는 222년 병사한다.] 무인은 싸움터에서 전사하는 걸 더 명예롭게 보던 시대였기 때문에 각색된 것.[*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인이 전장에서 죽는 건 매우 명예롭게 생각했다. 심지어는 전장이 아닌 사형을 당할 때조차 검이나 총같은 전장을 상징하는 무기로 죽기를 원한 군인에 대한 기록은 21세기에도 등장한다. 반대로 그렇기에 모욕적으로 죽이고 싶으면 총살형 같은게 아니라 교수형으로 처형하였고 실제로도 2차대전 나치 전범들 중 사형당한 이들은 소련측의 반대로 총살형을 원했음에도 교수형을 당했다. 다만 모든 전사하는 상황을 명예롭게 여기진 않은 듯한데 정사에서 병사한 서황은 연의에서는 맹달과 싸우다가 유시에 맞아 죽는데 이것도 전사한 것이니 띄워준 것처럼 보이지만 나관중이 관우를 죽게 만든 장수들의 최후를 하나같이 비참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서황 역시도 불명예 죽음 처리하기 위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