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도영 (문단 편집) === 6.25 전쟁: 6사단장 시절 === 1950년 10월 [[준장]]으로 진급하여 부상을 당한 [[김종오]] 장군의 뒤를 이어 [[제6보병사단|제6사단]]장을 맡았다. 제6사단은 전쟁 초기 [[춘천-홍천 전투]]부터 선전한 정예 부대였으나 1951년 4월에는 부대의 가장 [[흑역사]]인 [[사창리 전투]]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중공군]]의 일격을 받아 참패를 당했다. 사창리 전투의 패배로 완전히 체면을 구긴 장도영은 [[절치부심]]하여 1951년 5월 중공군의 공세 당시 사창리 전투의 패배에서 특히 책임이 컸던 제2연대의 주 저항선 후퇴를 불허하고 [[북한강]] 남안 고지에서 사주 방어에 나서도록 한다. 이는 자칫하면 연대 전체를 포위 섬멸당할 위험에 빠뜨리는 [[도박]]과도 같은 용병술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제2연대의 방어 진지를 주 저항선으로 오인하고 전 [[병력]]을 쏟아부은 중공군 제63군의 실책이 겹치면서 [[한국군]]의 최대 대승으로 꼽히는 [[용문산 전투]]와 [[파로호 전투]]로 반전되었다. 이 시기는 군인으로서 그의 최전성기였으며, 6.25 전쟁 중 사단장으로서 손꼽힐 전공을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53년 [[휴전]] 후 육군참모차장, 2군 사령관 등을 지냈다.[* 2군 사령관 당시 예편할 위기에 처해있던 [[박정희]]를 공석이었던 2군 부사령관으로 기용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