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단군 (문단 편집) === [[남북분단]] 이전 ===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이곳을 차지한 후 장천성현(長淺城縣)을 설치했다. [[신라]]가 병합한 뒤 신라 [[경덕왕]] 때 전국 지명 한화정책을 시행하면서 현대까지 이어지는 지명 장단현(長湍縣)으로 바꾸었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에 소속되었고,[* 당시에는 '''장단부'''였다.] 광복 당시에는 10면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파주시|파주군]]과 이웃했고, 북쪽으로는 [[황해도]]와 이웃했다. 북방 세력의 주 침입로 상에 있던 지역으로, 적이 장단을 넘어 [[탄현면]]에 이르렀다는 [[파발]]이 도착하면 임금은 [[남한산성|피난]]을 갔다. 군청은 장단면 도라산리(都羅山里)에 두고 있었다. 물론 도라산역의 그 도라산과 같은 도라산이다. 예전에는 군내면 읍내리에 군청이 있었으며 옛 군청자리에는 현재 군부대가 있다. 1930년대에 장단역 앞으로 군청을 옮겨 한국전쟁 전까지 사용했다. 도라산리에 위치한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4413100760000&pageNo=1_1_2_0|구 장단면 사무소]]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도라산역 서쪽은 비무장지대에 해당하여 현재는 가 볼 수 없다. 특산물로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유명했던 장단[[콩]] 등이 있으며, 장단콩은 남아있는 장단 땅을 가져간 [[파주시]]의 특산물로 취급하고 있다. [[예성강]]과 [[임진강]] 사이에 있으므로 [[개성시]] 문화권에 속하며 개성의 교외지역이었다. 따라서 [[고려왕릉]]이나 유적도 많다.[* 남한령 장단군에 있는 고려 유적으로는 [[경순왕릉]]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