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교 (문단 편집) == 역사 ==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중간 계층의 군사 지휘자는 주로 영지를 받은 [[기사]]들이 자기 영지내의 휘하 병력을 데리고 전쟁에 참여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유럽 각국의 중앙집권이 강화되고 영지를 다스리고 있는 귀족들에게서 병력을 모으는 식이 아니라 중앙 정부에 의한 징병제가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 중세에 비해 병력 규모가 크게 증가하자, 작위를 갖고 있는 기사들이나 귀족들만으로는 군사 지휘자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어 나온 직급이 바로 장교이다. 장교가 되는 가장 흔한 방법은 [[매관매직|장교의 직위를 돈으로 사는 것]]이었다. [[영국 육군]]의 경우를 예로 들면 장교 신분을 사는 경우는 purchase of commissions라고 하며 기병장교와 보병장교로 임관할 수 있으며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갈 경우에는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공병장교와 포병장교로 임관될 수 있었다. 이렇게 돈으로 장교 직위를 사는 방법은 [[19세기]] 후반에 폐지 될 때까지 유럽 각국에서 널리 쓰였다.[* 하지만 영국군에서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관학교 출신보다 돈으로 직위를 산 기병장교와 보병장교 쪽의 대우가 더 좋은 편이었다.] 가격은 [[대위]] 계급이 오늘날 대한민국 돈으로 환산할 경우 '''약 4억 원''' 정도에 해당되는 금액이었다. 장교의 직위를 돈으로 산다는 게 그냥 구매하는 차원이 아니라 이렇게 비싸게 지불해야 했다. 그나마 진급하면서 자신의 이전 계급을 팔면 샀던 계급 그대로의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소위를 산 뒤부턴 진급시 해당 계급의 가격 중 이전 계급값을 뺀 차액만 내면 됐다. 또 다른 방법은 [[사관학교]]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17세기]] 말엽쯤부터 [[유럽]] 각국에서는 사관학교가 만들어진다. [[영국]]의 Royal Military Academy나 [[프로이센]]의 Kriegsschule, [[프랑스]]의 생시르 육군사관학교 같은 경우가 좋은 예시. 해군 장교의 경우에는 매관매직 제도가 없고, 보통 중급 [[준사관]] 정도의 대우를 받는 장교후보생 신분으로 들어가 일정 기간 함정 실습 후, 시험을 치러서 합격자가 된 뒤 장교로 임관하는 방식이 가장 흔했다. 영국은 신분은 귀족이되 8살 정도의 말 그대로 코찔찔이나 오줌싸개 수준의 아이 때부터 배에 태워서 장기교육을 시켰다. 어느 쪽이든 장교가 되기 위해선 돈이 꽤 들어가고, 추천을 받거나 하기 위해서는 인맥이 필요한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귀족의 자제들이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귀족 아니면 장교가 될 수 없던 것은 아니었다. 이런 경우는 돈 많은 중상류층의 신분이라서 집안에 돈이 많거나, 친척 중에 돈 많은 귀족이나 명망있는 인사가 후원해 주는 경우가 흔했으며 하급 장교의 경우는 오히려 이런 집안의 출신들이 더 많았다. 물론 상급 장교로 승진하기는 귀족 출신에 비해서 꽤 힘들었겠지만. 실제로 과거 [[영국군]]에서 귀족 신분 아니고도 장교가 된 경우는 수두룩하다. 대표적으로 [[성공회]] 교구[[신부]] 아들인 [[호레이쇼 넬슨]] [[제독]]이 있고, 그보다 더 과거에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그냥 농부 자식이었다. 둘 다 친척의 지원으로 장교가 된 건 맞지만 영국 신분제도 상 귀족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 저 시절은 '''동네 신부가 동네의 거의 유일한 문해자이던 시절이며''', 성공회 신부는 오늘날에도 중상류층에 준하는 특권층에 속한다. 넬슨 정도면 귀족 바로 밑 특권층으로 봐야 한다.]. 그 밖에도 [[나폴레옹 전쟁]] 당시 사무엘 오치뮤티 장군의 아버지도 [[성공회]] 교구[[신부]]고, 의사 아들인 존 무어 장군 등도 귀족은 아니지만 어느정도는 그와 맞먹는 특권층 출신. 19세기에 Thomas Coad라는 사람은 정육점집 아들인 데다가 목수 일을 하던 사람인데 친척 지원도 없이 장교가 된 일도 있었다 [* 이 정도면 오늘날에도 블루 칼라이니 충분히 특출나다고 할 만 하다. ]. 다만, 그 당시 영국군에서는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있어서 되려 군대에 입대하기 엄청나게 힘들었다. [[대위]] 계급장이 오늘날 돈의 가치로 환산하자면 '''약 4~10억원'''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매물이 형성되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귀족이 아닌 평민이라 하더라도 돈만 많으면 장교 계급을 사서 임관하면 그만이었다. 귀족의 경우에는 보통 작위나 영지를 분할하지 않기 위해 장남에게 세습하는 경우가 많아서 차남 이하의 경우에는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야 했는데 가장 흔한 방법이 바로 장교가 되는 일이었다. 귀족 집안이라도 차남에게까지 영지를 분할해 주기는 힘들었겠지만 장교 직위 하나 마련해주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조금 특이하게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일반인이 장교가 되는 방법도 있었다. Forlorn Hope라고 불리는 공격대에 참가하는 것. '덧없는 희망'이라는 뜻으로, 절망적인 임무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부대를 말하며 대부분 지원자로만 구성했다. 예를 들어 포격으로 벽이 무너져 내린 요새에 가장 먼저 공격해 들어가는 부대의 경우 수비 측도 공격측이 무너진 벽을 통해 들어올 거라는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었으므로 이곳에 포도탄과 방책은 물론이고, 주력을 잔뜩 배치해놓는다. 사다리를 통해 요새를 공격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선도부대가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당연한 일. 당연히 '덧없는 희망'이라는 말 그대로 이 부대병력은 몰살당하기 딱 좋았다. 그러나 만약 살아남는다면 금전적인 포상과 큰 존경을 받았고, 병사는 부사관으로 임용, 부사관의 경우 원한다면 장교로 임명될 수도 있었다. 부상으로 [[장애인]]이 되더라도, 포상금도 후한데다 보훈 및 부대 자긍심 고양 차원에서 한직의 행정직 부사관 정도의 자리를 제공받거나 퇴역해 육군병원에서 무상으로 숙식과 의료가 보장되는 비교적 편안한 노후가 보장되었다.[* [[삼국지]] 등에서도 나오듯 동양에서도 성벽에 제일 먼저 올라 적군을 사살한 자에게 포상을 내리는 것과 같다.] [[프랑스 혁명]] 당시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16살에 일개 병사로 지원했던 프랑스 군의 Lazare Hoche가 바로 이런 케이스로 20대 중반에 장군까지 진급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조아킴 뮈라]], [[미셸 네]], [[앙도슈 쥐노]] 역시 이런 경우에 해당했다.[* 이미 장교인 사람들도 종종 Forlorn Hope에 지원해 그 부대를 지휘했다. 이들 역시 살아남는다면 이후 진급이 크게 유리해지니까. 대부분 야심만만한 젊은 소위·중위들이 나섰다.] 이 중 조아킴 뮈라는 싸움실력이 어마어마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