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거화 (문단 편집) == 기타 == * [[상민중]]은 장거화의 사위였다. 이 때문에 비구니 도안의 사건에 장거화가 연루될 때 상민중은 장거화와 인척 관계였기 때문에 좌천되었다. * 장거화는 영도(營道)에서 아버지 장의의 동문생인 하씨(何氏)의 두 아들을 거두어 자신의 학문을 가르쳤다. 임기가 만료된 뒤 두 아이를 데리고 수도로 가서 천거하고 숙식을 제공했으며, 모두 관리의 명부에 올랐다. * 장거화는 《원원론(元元論)》을 바치며 백성들을 먹여 살리고 농사에 힘쓰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했고 진종은 매우 원원론을 보고 매우 칭찬하여 합사로 짠 비단에 장거화의 원원론을 베껴 적게 했으며, 용도각(龍圖閣)의 벽에 내걸도록 명하였다. * 장거화는 용모가 아름다웠고 담론에 뛰어났으며, 너그럽고 절개를 숭상하였다. 하지만 겉치레를 꾸미지 않았고 청의(淸議)로부터 배척을 받아 중용되지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