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작전기동군 (문단 편집) == 마비를 추구한 개념이었나? == 이전의 본 문서에는 이렇게 서술되어 있었다. ||"여기서 적 후방지역이라는 개념은 전선 후방이 아닌, 전선에서 몇백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말 그대로의 후방 지역을 가리킨다. 이는 작전적, 전략적 목표를 탈취하여 적군을 심리적으로 붕괴시키기 위함이다. 수도나 사령부, 보급물자 집적소, 기타 중요 대도시 등의 여러 정치적, 전략적, 작전적 중요 목표를 탈취당했다는 소식은 일선 병사들에게 무력감과 사기저하를 안겨준다. 제2차세계대전 초반 [[프랑스 침공]]에서 [[독일 국방군|나치독일군]]의 고속기동에 유린당한 [[프랑스군]]이 바로 이런 심리적 공황에 빠져들어 자멸했다. 물론 독일군의 기동전 교리에서는 이건 모두 부가 조건이었고 진짜 목표는 물리적인 적군의 섬멸이었다. 이는 구 소련군의 기동전 교리가 목표로 하는 마비개념을 '전쟁 자체'에 적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확장했다고 보면 되며 독일군의 섬멸전 개념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에서 해석해야 한다. 독일군의 교리는 "모든 적을 때려부순다"에 가까우며, 기동은 전투를 목적으로 한다. 반면 구 소련군의 기동전 교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적의 전투의지를 없애버린다"이며, 이는 섬멸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지만 적의 전략적 요소를 없애버림으로서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구 소련군의 전투는 [[우라돌격]]으로 대변되는 [[제파식 전술]]과 비정상적일 정도로 높은 기계화율을 통한 기동전이 섞여있는 독특한 형태를 보인다.|| 위와 같은 서술은 서방에서 작전기동군 개념이 적의 마비와 와해를 추구한 개념이라는 한때 있었던 해석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한 해석에 따르면 작전기동군은 전투를 최소화하고 적이 본격적인 작전행동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 목적으로 마비가 발생되며 공황이 발생해 적이 스스로 붕괴되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박기련, p. 204-205.] 그리고 그와 같은 맥락은 [[미하일 투하쳅스키]]와 [[블라디미르 트리안다필로프]]를 비롯한 소련군의 1920-30년대 이론가들이 당대 전차 부대의 가치를 보고 그걸 “전략적 마비”의 수단으로 운용하자고 주장한 영국의 군사이론가 J. F. C. 풀러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에 따라 소련군이 마비를 강조했다는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Ibid, pp. 152-153; 김명균, 「痲痺戰(Paralysis warfare)의 發展方案에 관한 硏究」,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8, p. 16-17, 33-39 봉길순, 「痲痺戰에 關한 考察」,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0, p. 60-62; 柳在甲 蘇聯ㆍ中共ㆍ北韓의 作戰術 發展傾向」, 한국전략문제연구소, 1990, p.19-22 ;최영렬, 「한국군의 마비전 수행방안 연구」, 조선대학교 정책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p. 14-16; 최완규, 「마비이론의 현대적 고찰과 미래전 적용성 연구 : 풀러(Fuller)의 마비전 사상과 군사혁신(RMA)을 중심으로」, 경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p. 3; 윤형호, "영국학파-풀러, 리델 하트의 군사사상", 『군사사상론』, 플래닛미디어, 2014, pp. 303-304. 이 국내 논문들은 하나같이 투하쳅스키가 풀러의 책 『전쟁의 개혁』(Reformatoion of War)의 러시아어판 서문을 쓴 것에서 풀러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을 근거로 투하쳅스키가 풀러의 영향을 받았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저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실제 투하쳅스키의 원문은 "풀러는 참~ 잘나신 대단한 전략가다"는 식의 빈정대는 어조이며 전체 맥락은 풀러를 제국주의자이자 파시스트인 동시에 시대에 맞지 않고 명백히 비과학적인("말하자면, 같은 소총, 같은 탱크, 같은 항공기를 보유한 미군 180개 사단과 영국군 18개 사단이 전투할 때 영국군이 이긴단 소리를 하고 있다") 소수 정예 군대를 추구하는 인물이라고 비난을 퍼붓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근거문헌이 지나치게 한정되어 있거나 아예 없으며, 또한 소련군도 독일군처럼 계속해서 적 전력의 마비가 아닌 포위를 통한 섬멸을 강조해 왔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실제 소련군의 군사이론과 완전히 모순된 해석이 된다.''' 소련군은 1920년대부터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독일군]]과 마찬가지로 적의 '''물리적 섬멸'''을 강조하고 그걸 목표로 움직였으며 전투의지의 와해는 섬멸에 뒤따르는 부수적인 효과 정도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일찍이 [[미하일 투하쳅스키]]는 [[적백내전]] 이후에 기동전에서 나타나는 마비와 와해 현상이 작전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표출한 지휘관 니콜라이 페틴을 1923년에 비판한 적이 있었다. ||"적을 와해시켜 파괴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한 과업이다. 적군의 와해의 확산은 적국의 사회적 상태에 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리적 와해의 확대가 적군의 남은 전력에 퍼진다면, 그 결과는 기본적으로 결정적인 부분인 섬멸의 결과다. 와해는 섬멸의 결과로 생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섬멸이 가져오는 것이다. 적의 모든 종류의 섬멸은 가장 유익한 능력이다. 섬멸이 단지 전쟁의 목적과 직접 연결될 뿐만 아니라 전쟁의 수행에서 극도로 중요한 후방의 막대한 경제적 지원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중략)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페틴 동지는 적의 섬멸을 포기한 경솔한 슬로건을 제기한 것이다."[* Тухачевский, "Война клопов",Избранные произведения, Том 1, p. 107. 투하쳅스키는 이 글을 1923년에 썼고, 풀러의 책 중 최초로 소련에 번역되어 들여온 책인 『대전쟁에서의 전차』(Tanks in the Great War 1914-1918)가 1924년에 번역되었다는 걸 감안하면 투하쳅스키는 풀러의 책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풀러의 이론을 반박한 셈이 된다. ]|| 이 글에서 투하쳅스키는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 ||"작전은 군대가 적의 인력과 물자를 파괴하기 위해 수행하는 조직적인 투쟁이다. 무슨 가상적이고 추상적인 적의 신경계통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실제 조직인 적의 부대와 실제 신경계인 적의 통신을 파괴하는 게 작전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Ibid., p. 108.]|| 그리고 소련군의 1936년판 야전요무령은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붉은 군대의 전투 작전은 항상 적의 섬멸이 목적이다. 적에 대한 결정적인 승리와 섬멸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기본적인 전시 목표다. (중략) 그러나 주 노력 축선에서 저항 없는 추격으로 이끄는 공세만이 적의 인력과 물자를 완전히 섬멸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Provisional Field Revulations for the Red Army, translated by Foreign Broadcast Information Service, 1986, p. 2. ]|| 그에 따라 [[대조국전쟁]]에서 소련군의 대부분의 작전은 적의 와해나 마비가 아니라 적의 포위와 섬멸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Военное искусство во Второй мировой войне и в послевоенный период (стратегия и оперативное искусство): Учебник. (М.: ВАГШ, 1995), 국방대학원 역, 『러시아 연방군의 전략과 작전술』, 국방대학원 안보문제연구소, 제1권, 1998, pp. 296-338; 363~388. ]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작전기동군이 마비를 위한 개념이라는 것은 매우 무리가 있는 해석이다. 소련군의 계속되는 적 전력의 섬멸 강조의 맥락에서 볼 때, 작전기동군의 우선 목표인 적 핵무기 및 지휘통제 시설에 대한 공격과 적의 핵무기 사용 방지는 강력한 섬멸 수단인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해석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