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의황후 (문단 편집) === 표독스러운 황후 === 조돈의 비가 된 이봉랑은 질투가 심한 성격이어서, 황후가 되기 이전에 당시 태상황이었던 고종과 황제인 효종 사이를 이간질하여 두 사람의 노여움을 샀다.[* 고종은 아예 태상황후였던 [[헌성자열황후]]에게 이봉랑을 간택한 황보탄을 잘못 믿은 것 같다고 하소연하기까지 했다. 한편 효종은 이봉랑에 대해 황태후를 모범으로 삼아서 행동하지 않으면 폐위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이후 1187년에 고종이 죽고, 1189년에 효종이 황태자인 조돈에게 양위하면서 태상황이 되자, 이봉랑은 마침내 황후가 되었다. 하지만 표독스러운 성격은 황후가 되면서도 계속 이어졌는데, 광종이 손을 씻을 때 광종의 시중을 든 궁녀의 손이 아름답다고 여기자 이봉랑이 궁녀의 손을 잘라 찬합에 넣어서 보낸 일화가 있었고, 광종이 총애하던 귀비 황씨를 광종이 궁을 비운 사이에 죽인 일도 있었다. 또한 이봉랑은 조정에서 자신의 지위를 굳히기 위해, 자신이 낳은 가왕 조확을 태자로 세울 것을 태상황이었던 효종에게 간청하였으나, 효종이 불허하였다. 이때 이봉랑은 "첩이 직접 가왕 조확을 낳았는데, 어찌 안 된다는 것입니까?"라며 효종에게 불만을 표시하여 효종의 화를 불렀다. 이봉랑은 끊임없이 효종과 광종 사이를 이간질하였고, 결국 효종과 광종 사이에 틈이 벌어진다. 이처럼 이봉랑의 방자한 모습에 당시 태상황후였던 사씨가 예의범절을 중시하라고 권고하였지만, 이봉랑은 이를 무시하여 태상황후의 분노까지 불러왔다. 한때 광종의 황후였던 이봉랑을 폐위해야한다는 논의도 있었지만 흐지부지되었고 결국 1194년에 효종은 광종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만다. 효종이 사망한 이후에도 광종은 표독스러운 이황후에게 계속 휘둘렸고 결국 광종은 조정의 신망을 잃어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