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본론 (문단 편집) === 기계와 대공업 === 통상적으로 산업혁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와트의 증기기관을 위시한 '동력기'였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작업기''''에 일어난 변화야말로 18세기 산업혁명의 출발점이었다고 주장한다. 실질적으로 원료에 변형을 가하는 일은 작업기의 몫이고 동력기와 전동장치는 작업기를 운동시키기 위해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마르크스는 와트의 업적이 갖는 역사적 중요성을 저평가하지 않았다. 마르크스가 산업혁명을 가능케 한 변화로 지목한 것은 '작업기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의 수적 증가'였다. 그 대표적인 예시로는 한 작업기가 12~18개의 북으로 방적하도록 설계된 '''[[방적기|제니방적기]]'''가 거론됐다. 제니방적기를 통해 인간의 산업이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도구의 수라는 측면에서, 인체기관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작업기의 발명이 증기기관 혁명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작업기가 사용하는 작업도구의 수가 늘수록 그 작업기를 가동시키는 데 필요한 장치도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크기 증대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자 인간이 페달을 밟아 동력을 만드는 등의 기존 방식으로는 기계장치의 저항력을 극복할 수가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크라이트 수력방적기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계절에 따라 물이 고갈되거나 지형에 따라 물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난관은 [[제임스 와트|와트]]가 '''복동식 증기기관'''을 발명함으로써 완전히 해결됐다. 와트의 원동기는 석탄과 물을 소비해 동력을 만들었고, 그 힘을 인간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었으며 지리적 사정을 고려치 않고 설치할 수 있었다. 와트는 자신의 발명이 향후 자본주의적 대공업이 발달하는 데 미칠 영향을 어느 정도 직감하고 있었다. 그 점에 관해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와트의 위대한 천재성은 그가 1784년 4월에 얻은 특허권 명세서에 나타나 있는데, 거기에는 그의 증기기관이 ~ '''대공업의 보편적 동력기'''로 서술되어 있다. 그가 ~ 지적하고 있는 사용처들은 예컨대 증기망치와 같이 반세기 이상을 지나서야 도입된 것도 적지 않다. ~ 그의 계승자들인 볼튼-와트회사는 [[1851 런던 엑스포|1851년의 런던 산업박람회]]에 대양 기선용의 거대한 증기기관을 내놓았다." - <자본론> I권 하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