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바어 (문단 편집) === 고대–중세 === 자바섬에서 문헌 기록의 역사는 적어도 고대 서부 자바의 [[타루마 왕국]] 시대(Tarumanagara, Tarumanegara, 358–669)까지 거슬러올라간다. 타루마 왕국은 [[산스크리트]]로 기록된 여러 비문들을 남겼으며, 고대 [[순다어]]를 사용하는 주민으로 이루어진 인도화된 왕국으로서 여기서는 [[힌두교]], [[불교]] 및 전통 순다 종교체계인 [[순다 위위탄]]의 초기 형태 등이 다양하게 믿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거의 구어로만 사용되던 자바어가 문어로서 발달을 시작하게 된 것은 8–9세기로 추정된다. 고대 자바어만으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문헌은 기원후 804년 3월 25일에 기록된 [[수카부미 비문]]이다.[* Andreas Yumarma, ''Unity in Diversity'' (Rome: Gregorian Biblical BookShop, 1996), 29.] 오늘날 [[동부자바|동부자바주]] 크디리현 지역에서 출토된 이 비문은 사실 약 120년 전의 문헌을 복제한 것이라고 하지만 오늘날 원본은 발견되지 않는다. 비문은 지역의 강에서 물을 끌어오는 관개 수로를 위한 댐 건설에 관한 내용이다. 이는 [[팔라와 문자]]로 쓰였지만, 이후의 거의 모든 고대 자바어 문헌은 [[카위 문자]] 및 그 변형인 [[자바 문자]]로 쓰였다. 이를 비롯해 고대 자바어로 된 가장 오래된 문헌들은 [[불교]] 문헌과 《라마야나》(Kakawin Ramayana, 고대 자바어로 된 《[[라마야나]]》 이야기로서 870년 전후에 쓰였음) 등이 있다. 이때 이미 산스크리트 운문을 모방한 자바 운문 서사시 양식으로서 [[카카윈]] 양식의 발달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카카윈 양식에 쓰인 고대 자바어의 공식적인 문어체는 카위어(Basa Kawi, 'Kawi'는 산스크리트어로 '시인'이라는 뜻)로 불리기도 한다. 카위어는 현대 자바어와 다른 여러 언어학적 특징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두 가지 특징으로 크라마/마댜/응오코가 나뉘는 엄격한 경어법 체계가 아직 정교하게는 발달되지 않았던 것과 동사를 문두에 놓는 어순이 비교적 자주 사용되었던 것을 들 수 있다. 11세기에 지어진 [[아르주나]]의 이야기 《아르주나위와하》(Kakawin Arjunawiwaha)는 [[아이를랑가]] 왕의 후원으로 음푸[* 고대 자바어 호칭 가운데 '음푸'(mpu)는 브라만이나 귀족 또는 어떤 영역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는 대가에 대한 존칭으로, 현대 말레이어 'perempuan'과 어원이 말레이폴리네시아 조어 'empu'로 같다.] 칸와(Mpu Kanwa)가 저술하였는데, 이는 저자와 후원자를 특정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카카윈 중 하나로 꼽힌다. 12세기 초 작성된 《크레스나야나》(Kakawin Kresnayana, 1104, 음푸 트리구나Mpu Triguna)는 [[크리슈나]]의 이야기를 다루는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조금 나중의 《하리왕사》(Kakawin Hariwangsa)에서도 《크레스나야나》의 것과 유사한 테마가 반복되었다. 《[[마하바라타]]》는 10세기 무렵부터 여러 차례 고대 자바어로 번역 내지 번안되었는데,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판본은 12세기의 《바라타유다》(Kakawin Bharatayuddha, 음푸 스다Mpu Sedah와 음푸 파눌루Mpu Panuluh 형제가 1157년 저술)이다. 제목의 '바라타유다'는 《마하바라타》에서 묘사되는 [[쿠룩셰트라 전투]]를 가리킨다. 자바어로 번안되는 과정에서 여러 등장 인물들의 명칭이 자바어로 옮겨지고([[두료다나]]가 '두류다나'Duryudana/Duryudhana가 되고 [[유디슈티라]]가 '유디스티라'Yudhisthira가 되는 식) 약간의 내용 수정도 가해졌는데, 가령 쿠룩셰트라(쿠루 평원)는 인도가 아닌 자바 중부의 디엥(Dieng) 고원을 가리키게 되었다. 《바라타유다》의 저자 음푸 파눌루는 12세기 전반부터 후반까지 여러 작품을 남긴 [[마자파힛 제국#s-2|크디리 왕국]] 시대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크리슈나]]의 이야기 《하리왕사》(Kakawin Hariwangsa)와 [[가톳카차]]의 이야기 《가톳카차스라야》(Kakawin Gatotkacasraya)도 음푸 파눌루의 작품이다. 13세기의 카카윈으로는 《수마나산타카》(Kakawin Sumanasantaka, 음푸 모나구나Mpu Monaguna)가 대표적이다. [[라마찬드라|라마]]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칼리다사]]의 《라구왕샤》(라구 연대기, Raghuvaṃśa, 5세기?)가 직접적인 원전이다. [[이티하사]]가 아닌 인도 산스크리트 문학 작품을 출전으로 한다는 점에서 당시 자바 시인들의 인도 문학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심화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1100연이 넘는 상당히 긴 작품이다. 중세 자바어는 [[마자파힛 제국]](1293–1527)의 시대에 사용되었다. 이 시기의 많은 문헌은 [[패엽|론타르]](lontar, 자바어로는 론탈rontal)라고 하는 형식으로, 야자잎을 가공해 종이처럼 만든 것에 기록되었다.[* 남인도 지역에서 전파됨.] 마자파힛 시대에 후기 카카윈 양식은 발전의 정점에 이르렀는데, 마자파힛 라자사 황조의 [[하얌 우룩]] 황제를 기리는 서사적 송시 《[[나가라크르타가마]]》(Nagarakretagama, 1365년 [[나가라크르타가마#s-3|음푸 프라판차]]Mpu Prapanca가 저술)가 이 시대의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하얌 우룩 시대의 카카윈으로는 음푸 프라판차 외에도 음푸 탄툴라르(Mpu Tantular)의 것이 대표적이다. 음푸 탄툴라르는 불교도였지만 시바파 힌두교에도 개방적이었으며, 이러한 성향은 저술에도 깊이 스며들어 마자파힛의 혼종성과 관용을 상징하는 작품을 남겼다. 음푸 탄툴라르의 작품으로는 《라마야나》의 후반부에 벌어진 전투를 테마로 한 《아르주나위자야》(Kakawin Arjunawijaya), 왕자로 환생한 [[보살]]의 신화적 여정을 그린 《수타소마》(Kakawin Sutasoma) 등이 있다. 현대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표어로 쓰이는 '다양성 속의 통일'(Bhinneka Tunggal Ika)이 바로 《수타소마》의 한 구절을 따온 것이다. 해당 부분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 Rwâneka dhâtu winuwus Buddha Wiswa, > Bhinnêki rakwa ring apan kena parwanosen, > Mangka ng Jinatwa kalawan Siwatatwa tunggal, > '''Bhinnêka tunggal ika''' tan hana dharma mangrwa. >---- > [[붓다]]와 [[시바]]는 서로 다른 두 개체라고들 하는데, > 그들은 다르지만, 어떻게 그들이 다름을 즉시 분별할 수 있는가, > 지나(붓다)의 진리와 시바의 진리가 하나일진대, > 그들은 다르지만, 결국 그들은 동류에 속하는도다, 진리는 두 근원을 두지 않는 까닭에. 마자파힛이 분열과 쇠퇴의 과정에 있던 15세기에도 카카윈은 지속적으로 쓰였다. 15세기에 마자파힛 황제 브라위자야 4세가 후원한 시인 음푸 타나쿵(Mpu Tanakung)은 《시와라트리칼파》(Kakawin Siwaratrikalpa), 《우리타산차야》(Kakawin Writtasancaya) 등을 남겼다. 《시와라트리칼파》는 죄를 짓고 죽은 사냥꾼 룹다카(Lubdhaka)의 처우를 두고 [[시바]]와 [[야마]]가 대립하는 이야기이다. 고대와 중세에 번성한 다른 자바어 문학 양식으로는 산스크리트 운문 양식의 카카윈에 대립하여 자바어 고유의 운율 체계를 가지고 발전한 [[키둥]](kidung)이 있다. 키둥은 인도(라마야나, [[마하바라타]] 등)나 고대 자바(가령 [[판지 설화|판지 왕자]] 이야기)의 설화를 테마로 창작되었다. 대표적인 키둥으로 하얌 우룩 시대 순다 왕국과 마자파힛의 대립으로 빚어진 비극을 다루는 《키둥 순다》(Kidung Sunda)가 있다. 이 외에도 왕조의 연대기나 여러 지역으로의 기행문을 쓰는 데 사용한 [[바밧]](babad) 양식이 있는데, 역시 독자적으로 발전한 엄격한 율격을 갖춘 운문 형식이었다. 근대 이전 고전 자바 문학에서 산문(gancaran)은 진지한 문학 양식으로 간주되지 않았지만, 자바섬의 신화적 기원을 다룬 15세기의 마자파힛 시대 산문 《탄투 파글라란》(Tantu Pagelaran) 등 주목할 만한 예외도 있다. 이상에 서술한 고대와 중세 자바어는 현대까지도 자바 문화의 저층을 이루는 여러 의식과 전통 혼례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전통적인 방식으로 [[와양]]([[와양 쿨릿]], 와양 웡, 와양 골렉) 공연을 할 때도 사용할 수 있다. 마자파힛 제국의 멸망 전후에 발리섬으로 도피한 마자파힛 귀족들은 다량의 자바어 텍스트를 발리로 가져갔고, 이에 따라 발리섬에서는 고대와 중세의 자바어 문헌들이 다수 보존과 필사를 거치며 현대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게 되었다. 이 가운데는 자바 본토에서 소실된 것들도 다수 있어, 고대 및 중세 자바 문헌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발리에서는 겔겔 왕국과 이후의 소왕국 시대에 중세 자바 전통을 계승하는 자바어 문학 저술이 융성하여 자바 본토에서 발전한 이슬람적 파시시르 문학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 독자적 근세 문학 전통을 발달시켰다. 발리와 롬복에서는 고전적인 카카윈 양식을 따르는 문학 작품이 18세기와 19세기까지도 지속적으로 활발하게 저술되었다.[* 상세한 정보는 다음을 참조하라. Helen Creese, "The Balinese Kakawin Tradition: A Preliminary Description and Inventory," ''Bijdragen tot de Taal-, Land- en Volkenkunde'' 155 no.1 (1999): 45-96.; Helen Creese, "Pieces In The Puzzle : The Dating of Several Kakawin from Bali and Lombok," ''Archipel'' 52 (1996): 143-171.] 이와 같은 자바어 문학의 강한 영향력 하에 근세 [[발리어]] 문학도 발달하였다. 한편 해안 지대의 무역상들에게는 당대 파시시르 문학도 전해져 발리의 항구에서 소규모로 발리 파시시르 문학이 저술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