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돌폭뢰 (문단 편집) == 개요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hitotsubakurai.jpg]]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일본군]]이 개발한 대전차병기. 고깔 모양의 [[성형작약탄]]을 [[죽창]] 막대기 앞에 끼운 후 그 앞에 적절한 거리에서 폭발하도록 하기 위해 세 개의 쇠막대를 추가한 형상의 무기이다. 일본군의 제식 명칭은 3식 기갑폭뢰. 사용법은 매우 간단하다. '''[[창(무기)|그냥 원하는 대상을 찌르면 된다.]]''' 적 전차 차체에 이것으로 찌르기를 하면 끝에 있는 뇌관이 성형작약탄을 기폭시켜 '''이론상으로는''' 전차가 격파된다. 게다가 [[99식 파갑폭뢰]]와 달리 제대로 된 [[성형작약탄]]을 사용했기 때문에 관통력이 초기형은 150mm에 달하는 등 위력 자체만 따지면 당시의 일본군 대전차병기 중에서는 비교적 강력한 편에 속했다. 그러나 전쟁 당시 일본의 뒤떨어지는 공업생산력과 물자 사정을 고려할 때 당연히 이 정도 품질을 유지한 양산은 불가능했고, 특히 후기형의 관통력은 성형작약탄을 사용했음에도 60m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이 정도로도 셔먼 전차의 측면은 뚫을 수 있었기에 셔먼 전차의 옆구리에 붙을 수만 있다면 확실히 차체에 구멍을 내거나 기능을 정지시킬 수는 있었다. 또한 일제가 패망하고 베트남에 남긴 무기들 중 자돌폭뢰도 있었는데, 이를 프랑스와의 독립전쟁에서 자체 생산해가며 쓰게 된다. 게다가 이것들은 자원한 베테랑 병사들만 쓰게 했는데,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는 자부심에 사기는 높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베트남 전쟁]] 때에도 [[베트콩]]들에 의해 쓰이게 되나, 소련제 [[RPG-2]]나 [[RPG-7]]같은 대전차 화기들이 충분히 보급되었기 때문에 흔히 사용되지는 않았다. 1940년대 당시 일본과 1960년대 베트남의 상황을 비교해 보면 이런 차이가 당연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일단 베트남에서는 자원병들에게만 자돌폭뢰를 지급하는 방침이었던 데다가, 멀쩡히 잘 살던 청장년 남성들을 국가의 잘못된 결정 하나로 외지로 징병시켜서 이런 무기로 목숨까지 버릴 것을 강제한 일본 제국과 달리, 5-60년대 당시 베트남에는 서방 국가들과의 오랜 전란으로 이미 가족과 재산을 몽땅 잃어서 전쟁이 끝난다 하더라도 갈 곳도 마땅치 않은 병사들이 일부 있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