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페라토르 (문단 편집) ==== [[로마 공화국|공화정]] 초기와 [[포에니 전쟁]] ==== 본디 [[고대 로마]]에서 [[임페리움]]은 통치자의 권한, 즉 [[로마 왕정]] 당시의 왕의 권한을 의미했으며, 법률로 제한되는 범위 내에서 무한한 권한을 지니는 것을 의미했다. 임페리움은 관직별로 정해진 범위 내에서만 주어졌으며, 이 범위는 추상적인 임무 내용일 수도 있고, 일정 범위의 지역 또는 행정구역을 임지(Provincia[* 나중에는 이 말이 [[속주]]라는 뜻이 된다.])로 할 수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조영관]]의 임페리움은 "수도 로마 내부"에서 "공공사업"에 한해서 부여되었다. 즉, 임페리움은 원로원의 승인을 받아 공공사업의 실시, 각종 정책의 설정, 그리고 군대의 지휘 등을 모두 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했다. 임페리움을 수여하는 것은 [[원로원]]의 권한이었다. 로마 공화국의 관직들 중 [[집정관]](Consul)과 [[독재관]](Dictator)은 "로마 공화국의 모든 것"을 임지로 하는 막강한 임페리움을 당연직으로 수여받았다. 집정관이 평상시의 국가원수, 독재관이 비상시 임명되는 국가원수임을 고려하면 사실상 이 정도 수준의 임페리움은 [[국가원수]]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었다. 당연히 대부분의 관직들이 아직 설치되지 않았던 공화정 초창기에는 임페리움은 [[집정관]] 둘과 유사시 집정관을 제치고 선정되는 [[독재관]]에게만 부여되었다. 군사 분야에서 이 임페리움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데, 군대를 임지로 하는 임페리움을 가지고 있는 자만이 복수의 [[레기온|군단]]을 지휘할 수 있었다. 즉, 조영관의 임페리움은 군대를 임지로 하지 않으므로 조영관은 군단을 이끌 수 없었다. 각각의 군단은 군단장(Legatus, 레가투스)이 이끌지만, 통상의 경우 군단장은 군대를 임지로 하는 임페리움을 수여받지 않는다면 다른 군단을 추가로 이끌 수 없었다. 이는 [[문민통제|행정의 우두머리가 군대의 우두머리를 겸하는 것]]을 의미했다. 로마가 초기 도시국가일 시절에는 보통 전쟁을 하더라도 군단을 4개 이상 편성하는 일이 없었다. 따라서 한 해에 뽑힌 두 집정관이 각자 임페리움을 들고 각각 2개 군단을 이끌면 그것으로 로마군 전체가 할당되었다. 그러나 로마가 확장하며 상황이 바뀌었다. 사실 제1차 포에니 전쟁까지만 해도 이전까지의 시스템이 꽤나 잘 굴러갔었다. 집정관 2명이 이끄는 4개 군단 전부를 모두 전선에 내보내야 했기 때문에 그 동안 수도에 남아있는 [[법무관]](Praetor)에게 임시로 임페리움을 수여하여 수도 방위를 맡긴 정도였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한니발]] 전쟁이라고도 부르는 [[제2차 포에니 전쟁]]때 터졌다. 이 때 로마는 본토 이탈리아가 외부 강대국에게 공격받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항하여 매년 20개가 넘는 군단을 편성하고 [[이탈리아 반도]]와 [[이베리아 반도]] 전역(全域)에서 전투를 벌였기 때문에, 현직 집정관 2명만으로는 전선을 제대로 형성할 수 없었다. 따라서 원로원은 법무관에게도 상설 임페리움을 부여하였으나 이걸로도 모자라 결국 전직 집정관(Proconsul)들에게도 임페리움을 수여하여 각 전선에 사령관으로 비치하였다. 심지어 전직 법무관(Propraetor)들 역시 임페리움을 수여받고 전장에 나가기도 하였다. 한니발 전쟁이 끝나고 로마가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잡으며 [[속주]](Provincia) 체제가 갖추어지자, 임페리움은 점차 각지의 [[총독]]들에게 수여되는 "군사 지휘권"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전직 집정관들은 임페리움을 수여받고 각지의 속주로 나가 복수의 군단들을 이끌며 속주를 몇 년간 통치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