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동규(야구)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1999년 [[광주 동성고등학교 야구부|광주상고]]를 졸업하고 [[삼성 라이온즈]]의 2차 5순위 지명을 받은 뒤, [[동국대학교|동국대]](1999학번)를 졸업하고 2003년에 입단했다. 데뷔시즌 1군 기록으로는 9월 3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시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기아]]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첫 타자 [[이재주]]에게 4구를 내주며 시작했지만 지명타자 소멸로 인해 타석에 들어선 [[신용운]] 상대로 투수 앞 번트처리 이후 [[이현곤]]에게 데뷔 첫 삼진을 얻어냈고 [[이종범]]을 3루수 땅볼로 처리하며 1이닝 무실점으로 던진 것과 9월 9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시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1:7로 지고있을 때 8회에 중간계투로 등판, 1이닝 동안 [[이영우]]와 [[김태균]]에게 연속 타자 홈런을 허용하는 등 4피안타 3실점을 기록한 것이 전부였다. 2004년에는 [[중국야구리그]] 소속 팀인 광저우 레오파드에 임대 선수로 입단하여 5승 2패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http://www.hani.co.kr/arti/sports/baseball/53539.html|#]] 이후 2005 시즌 초 주목받지 못하다가 6월 8일 1군에 급하게 콜업되 중간계투로 깜짝 호투를 연달아 펼쳤는데, 첫 11경기 동안 17⅔이닝을 던지면서 자책점은 단 1점, 방어율이 '''0.51'''인 적도 있었다.[[https://news.kbs.co.kr/news/view.do?ncd=1111274|#]] 이 덕분에 선발진에 합류하여 7월 13일에는 [[제주 야구장|제주 오라구장]]에서 열린 [[현대 유니콘스]]를 상대로 6이닝 동안 사사구 없이 6피안타 3탈삼진 1실점(1자책)을 기록하는 눈부신 호투로 데뷔 첫 승을 따내고 만다.[[https://news.joins.com/article/1635573|#]] 심지어 데뷔 두번째 승리로는 데뷔시즌 1군 마지막 등판에서 아픔을 안겨주고 2군행을 안겨줬던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따냈었다.[[https://news.joins.com/article/2071685|#]] 기록은 6이닝 동안 3피안타(1피홈런) 1사사구 4탈삼진 2실점(2자책). 이 후로도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이며 최종 성적은 21경기 출장(선발 8경기)하면서 62⅓이닝 동안 4승 2패 방어율 2.74를 거뒀으며 sWAR 1.76와 ERA+155.2라는 커리어하이급 기록을 남겼다. 이런 활약에 힘입어 [[2005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승선했으나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었다. 사실 2005시즌초 부터 구속이 너무 느려 주목받지 못했는데 2군경기에서 구속기록을 10km나 뻥튀기 시켜[* 당시 2군 구속기록은 2군선수들이 직접해 조작이 가능했다.] 평균 140 중반을 기록해 이걸 본 1군감독 선동열이 깜짝놀래 급하게 콜업하였다. 1군 콜업 뒤 실제 구속이 130 중반대로 느려 더 깜짝 놀랬으나 호투를 이어나가 1군에 살아남았다. 2006시즌에는 선발진에 합류해 34경기 출장(선발 23경기)하면서 138이닝 동안 8승 7패 3홀드 방어율 3.91을 거뒀으며, [[2006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서도 4경기 출장하여 8이닝 동안 1자책점만 기록하며 팀의 2연속 통합우승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소 아쉬운건 2006시즌이 꽤나 투고타저였음에도 20피홈런으로 리그 1위의 기록을 남겼고 ERA+도 작년 시즌보다 안 좋은 92.5에 sWAR도 0.8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다만 이는 탈삼진을 뽑아내는 능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준수한 활약 대비 sWAR이 다소 낮게 기록된 것도 있다.] 2006 코나미컵 아시아 시리즈 예선 첫 경기인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닛폰햄]]전 [[선발 투수|선발]]로 등판하여 5회까지 3피안타만 기록하는 완벽한 투구를 보였고, 6회 선두 타자에게 2루타를 내준 후 마운드를 내려와 임동규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6/11/08/2006110860290.html|선발예고]]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6/11/10/2006111060092.html|경기결과]] [[전병호]]처럼 구속이 빠른 선수는 아니어서, 제구력 위주로 승부한 투수였다. 그러나 당시 그는 군 '''미필'''이었는데, 병역이 그의 발목을 잡게 된다. 2007년에는 나이가 차는 바람에 해외 여행의 허가가 나오지 못한 관계로, [[스프링캠프]]에 참가하지 못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잔류군에 남아서 훈련했지만, 1군 30경기에 등판하여 '''[[이대형]]'''에게 데뷔 첫 홈런을 맞는 [[희생양]]이 되는 등[* 이 홈런으로 인해, 소위 깝수육의 저주로 불리는 '''이대형의 저주에 희생을 당한 1호가 되시겠다.''' 사실 이건 이대형에게 홈런을 맞아서 성적이 안 좋아진 게 아니라 이미 성적이 안 좋아질 정도로 구위가 나빠져서 이대형에게 홈런을 맞은 것이니 저주라고 부르면 안 되겠지만...] 난타를 당하면서 1군과 2군을 오가는 등 시즌 내내 부진하다가 최종 성적 30경기 출장(선발 7경기)하면서 67⅔이닝 동안 1승 2패 방어율 5.59로 부진했다. 결국 2007시즌 후 [[사회복무요원|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경산시청]]에서 [[사회복무요원|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를 마치고 소집해제된 뒤 팀에 복귀하여 전지훈련에 참가했지만, 더 이상 1군에 오르지 못하고 2010 시즌 후 방출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