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나일본부설 (문단 편집) ==== 일본서기의 위치 설명 대목 ==== 《[[일본서기]]》에는 임나의 위치를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는데 북쪽이 바다로 막혀있다는 내용이 써져 있어서 임나가 한반도 영토가 아니라 '''[[대마도]]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학자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학설을 주장하는 곳으로는 대표적으로 인하대 연구팀 등이 있다. >六十五年秋七月,任那國遣蘇那曷叱知,令朝貢也。任那者,去筑紫國二千餘里,北阻海以在鷄林之西南. > >65년 가을 7월 임나국이 소나갈길지를 보내 조공하였다. 임나는 축자국[* 후쿠오카로 비정된다.]에서 2000여 리 떨어져 있고, '''북쪽은 바다로 막혀 있으며''' 계림(신라)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 >《[[일본서기]]》, [[스진 덴노]] 65년 알다시피 반도 위로는 [[만주]]의 [[한카 호]]와 [[러시아]] [[바이칼 호]]를 제외하고 바다로 부를 만한 물은 하나도 없다. 게다가 방위를 보면 계림의 서남쪽인데 이 밑은 바다가 맞다. 즉,《[[일본서기]]》에서 말하는 임나가 한반도가 아니라 남해상의 섬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이 일본서기에 명시된 지리적 기록에 부정할 여지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임나일본부설 옹호론자들은 다음 세 가지 설을 들어 이를 변론하였다. * 임나일본부 옹호론자의 변론 * 1. '''일본서기 편찬자의 지리 정보 착각설''' 하나는 단지 '일본서기를 편찬한 후대 사람들이 임나의 위치를 착각했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당연히 일본서기로 하여금 임나일본부 존재 근거로서 논할 자격도 떨어진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 2. '''문장의 해석을 달리하여 '막혀 있다'를 '험하다'로 해석하는 설''' ‘조(阻)'에는 '막히다', '막는다'는 뜻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험하다'는 뜻도 있다. 일본에서는 이를 두고 '임나국은 북쪽의 험한 바다를 지닌 축자에서 2천여 리 떨어져 있으며, 계림의 서남쪽에 위치한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리(里)라는 거리 단위를 현대의 도량형으로 환산하면 어느 정도인가에는 다소 이견이 있다. 다만, 삼국지 정사 위지왜인전에서 [[금관가야|구야한국]]에서 대마도까지 1천여 리, 대마도에서 이키섬까지 1천여 리, 이키섬에서 말로국까지 1천여 리라고 하므로, 바닷길의 1리를 40-50 m 정도로 환산하는 듯하다.[* 실제로, 이들 언급된 섬과 구야한국 (김해나 부산)까지 거리를 3으로 상정하고 최단거리 바닷길을 구글맵에서 찍으면 나머지는 1의 비율로 딱 맞아떨어지는데, 이는 40~50 km이다. 이로 미루어보아, 육지에선 1里를 400 m쯤, 바닷길에선 1里를 40-50 m쯤으로 삼아 계산한 것 같다. 말로국(지금의 카라츠시)에서 이키섬을 거쳐 대마도까지 거리를 재면 약 80 km인데, 1里를 40 m로 간주하면 2천 里가 나온다.] || [[파일:대마도to 부산.png|width=100%]] || || [[파일:대마도to이키섬.png|width=100%]] || || [[파일:스크린샷 2020-07-13 오후 7.20.38.png|width=100%]] || 한편, 위지왜인전에서 언급된 같은 기사에서 대방국을 설명하는 부분에선 구야한국(부산)까지 거리가 7천 리라고 설명했는데, 해안선을 따라 실제로 계산한 거리는 약 700 km이므로 1里는 100 m라는 주장도 있다.[* 같은 기사에 나오는 기사인데, 실제 거리로 계산해보면 값이 서로 다르다.] 1里를 100 m로 상정하면 부산에서 후쿠오카까지 2천 리, 즉 200 km가 맞긴 맞다. 이 경우 바다로 阻는 '막히다'가 아니라 '험한, 거친'으로 읽는다면 그 해석이 통하는데, 거기서 한번 더 비틀어 험한 바다의 주체를 축자국으로 해석하는 방법이다. >六十五年秋七月,任那國遣蘇那曷叱知,令朝貢也。任那者,去筑紫國二千餘里,北阻海以在鷄林之西南. > >65년 가을 7월 임나국이 소나갈길지를 보내 조공하였다. 임나는 '''북쪽에 거친 바다를 끼고 있는 축자국에서 2000여 리 떨어져 있고''', 계림(신라)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가 된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이 문장은 임나일본부의 존재를 긍정하는 대목이 되어 버리며, 이런 해석은 일본 학계에서 인기를 얻는 학설이다. * 3. '''당시의 해안선 등을 감안하여 문장 자체로 오류가 없다는 설''' 다른 한 가지 설은 '임나일본부가 있었던 당시에는 해안선이 지금과 달라서, 북쪽을 바다로 부를 만했다'는 것이다. 일단 4세기 남해에 '고(古) 김해만'이라고 불리던 해협 지형이 있었음 자체는 역사적 사실이다. 지금의 [[부산광역시]] [[강서구(부산)|강서구]] 및 [[김해시]]에 있는 김해평야 대부분은 바다였다. 고 김해만은 10세기 이후에는 점점 쇠퇴했는데, 결정적으로 소멸한 것은 [[1934년]] 낙동강 하구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나서이다. || [[파일:금관가야.png|width=100%]] || 실제로 고고학적 발굴 정황을 통해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온 게 확실한 김해 회현리 패총, 봉황대를 기준으로 하여, 그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오게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면, 현재 김해 시가지 북쪽의 김해시 [[진영읍]], [[대산면(창원)|대산면]] 일대의 너른 분지도 모두 바닷물이 차오른다. 이 당시는 낙동강 하구의 퇴적 상태가 지금보다 훨씬 덜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김해시 대산면, 진영읍 일대의 바다는 생각보다 넓고 깊었다. 이 고대 바다를 '대산만'이라고 부른다. 현대 한반도 남해의 해안선은 소빙하기를 서치면서 바닷물이 얼어붙어 해수면이 낮아진 관계로 생긴 영토가 꽤 있으며, 울산 암각화를 봐도 예전에 그곳이 바다였음을 알수 있다. * '''광의의 '임나'와 협의의 '임나' 문제 및 부분적 지형 서술 긍정설''' 문제는 옛날부터 임나에는 광의(廣義)와 협의(狹義)의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서기에서 임나는 '넓은 의미에서 임나 제국들 전체를 이를 때'에 사용하거나 때로는 '가야의 일부 지역이나 소국들을 지칭하는 용법'으로 함께 쓰이고 있기 때문에 북쪽이 바다로 막혔다는 것을 현재의 지도에 맞추어 해석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즉, 이 기사의 '임나'는 '광의의 임나'로 해석할 경우에는 분명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내용이 되지만 지금의 금관가야만을 지칭하는 '협의의 임나'로서 해석 할 경우에는 단순히 그 북쪽이 바다로 막혀있다는 지형적 사실만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을 뿐이므로 위에서 이 기사로 인해서 임나일본부설이 부정된다는 논리는 '광의의 임나'에만 한정되는 논리일 뿐인 것이 된다. || [[파일:daedongyeojido_imnailbonbu.png|width=100%]] || ||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전근대 한반도의 해안선. || 결국 위의 기사를 일본 일각에서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광의의 임나)의 근거로 사용할 경우, 그 범위가 일본이 기존에 주장했던 임나일본부의 영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 김해만 남쪽 밑에 있는 일개 동남쪽 가장자리로 밀려나 굉장히 협소해진다는 큰 문제점이 발생한다. 고김해만의 위치가 넉넉잡아 오늘날의 양산시, 함안군까지 뻗어 있었다고 해도, '''임나일본부의 위치는 가야 최남단의 매우 작은 일부 지방 또는 [[하중도]]로 한정된다는 것이다.''' 육지에 붙은 바다 한 가운대의 모래톱 같은 땅이나 작은 섬을 두고 임나 또는 임나일본부라고 했다면 더욱 괴이한 일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협의의 임나로 해석할 경우에는 당대 금관가야의 북쪽이 당시에는 바다로 막혀있었다는 지형적 서술을 지형적인 측면에서만 그대로 주장하는게 되므로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기사는 일나일본부설의 존부론과는 애초에 큰 상관이 없는 기사인 것이다.''' 이 기사를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사용하는것도 또는 임나일본부설을 반박하는 근거로 사용하는것도 해당 기사 자체가 애초에 말이 안되는 '광의의 임나'로의 해석과는 별개로 '협의의 임나'로만 해석하여도 단순히 당대의 '협의의 임나' 즉, 금관가야만의 지형과 입지를 담담하게 설명하는 것일 뿐이므로 큰 의미가 없으며 임나일본부설을 굳이 이 기사를 통해 긍정하거나 반박할 이유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외 일본서기의 한반도 관련 기사는 [[일본서기/한반도 관련 기사]]를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